검정고무신·구름빵 원작자 괴롭힌 ‘저작권 분쟁’ 계속되는 이유는

이현승 기자 2023. 3. 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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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원작자 이우영 작가, 극단적 선택
캐릭터 저작권 넘긴 출판사에 소송 당해
표준계약서 도입 전 맺은 ‘저작권 위임’ 계약에 발목
“플랫폼이 2차 저작물 사용권 갖는 경우 많아져”
만화업계에선 구두계약이 흔했습니다. 2000년이 넘어서야 계약서가 도입되기 시작해서...무지했습니다. 사람을 믿었던 이우영 작가 멘탈이 완전이 깨졌습니다.
故 이우영 작가 동생이자 만화 검정고무신을 함께 그린 이우진 작가

1992~2006년 잡지에서 연재된 국산만화 ‘검정고무신’ 원작자 이우영 작가가 11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들은 그가 만화 저작권과 관련한 소송으로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2007~2010년 검정고무신 사업권 계약을 맺은 출판사 형설앤 측으로부터 “협의 없이 다른 곳에 만화를 그렸다”며 2019년 2억8000만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당한 뒤 심적으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만화 원작자가 출판사, 대행사 등 제3자에게 저작권을 넘기는 계약을 한 뒤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04년 출간된 만화 구름빵 원작자도 계약을 맺은 출판사에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전문가들은 만화업계에 표준계약서가 도입된 지 10년이 채 안돼 공정한 계약 관행이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원작자의 법률, 사업 경험·지식 부족을 노리고 출판사, 대행사가 매절(買切·저작권을 통째로 넘기는 것)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한 장면. /대교 제공

◇ 표준계약서 도입 전 맺은 ‘저작권 위임’ 계약이 비극 발단

만화 검정고무신은 이영일 작가가 글을 쓰고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그림을 그린 만화다. 세 명의 저작권자가 공동으로 권리를 행사하던 시스템에 균열이 생긴 것은 만화잡지 소년챔프 연재가 끝난 2007년 무렵이다.

사업화 방안을 고민하던 원작자들에게 형설앤이 접촉했고 캐릭터 사업 등을 해보자면서 2010년까지 여러차례 사업권 계약을 맺었다. 형설앤은 “원작자와의 사업권 계약에 따라 파생 저작물 및 그에 따른 모든 이차적 사업권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았다”는 입장이다.

이우진 작가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계약 당시 형설앤 대표가 ‘당신은 창작을 해라, 우리는 사업만 하겠다’고 했고 계약서 내용에는 우리 형제와 수익을 배분한다는 조항이 들어있으니 당연히 어떤 사업을 하기 전에 우리에게 알릴 거라 생각했지만 뒤늦게 남한테 듣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뒤늦게 이우영·우진 작가 측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형설앤 측은 되려 만화 속 캐릭터를 개인 창작·출판 활동에 활용했다며 고소를 했다.

계약 당시 검정고무신의 대히트로 이우영·우진 작가가 형설앤과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만화업계에선 저작권 매절 계약이 흔했고 작품 흥행 여부에 상관없이 만화가가 을(乙)이 돼 엉성한 구두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표준계약서를 도입한 건 2014년이다.

형설앤 측은 “오히려 작가 측이 변호사를 선임해 정당하게 계약을 체결한 검정고무신 라이센싱 사업자들에게 내용증명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사업을 방해한 것”이라며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사업화를 진행하는 회사들이 제품이 출시할 때마다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는 계약을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 저작권 침해 양상 교묘해져... “무조건 갑을 프레임으로 봐선 안돼”

법률 전문가들은 만화 원작자에 대한 저작권 침해 양상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화업계 종사자를 돕는 헬프데스크 자문을 하고 있는 김필성 법무법인 가로수 변호사는 “매절 계약은 많이 사라졌지만 2~3년 전부터 플랫폼, 에이전시와의 계약 문제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만화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성공하는 사례가 늘면서 플랫폼이나 만화가를 대리하는 에이전시가 2차 저작물 사용 권리를 가져가는 계약을 맺거나 2차 저작물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계약서 조항에 넣는 경우가 생겼다.

만화가가 계약서를 잘 읽어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창작자일 뿐 사업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플랫폼이나 대행사 측이 “만화를 전세계에 수출하고 2차 생산하려면 저작권이 족쇄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설득하면 대체로 수긍한다고 한다.

이렇게 계약을 맺었다면 나중에 권리를 주장하더라도 법원에선 이미 체결된 게약에 대해선 보수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구제받는 경우가 드물다.

2월 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되어 있는 만화책. / 연합뉴스

다만 플랫폼과 에이전시와 원작자 간 저작권 계약을 무조건 갑을 관계 프레임으로 봐선 안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저작권을 공동 소유함으로서 홍보·마케팅을 활발히 해 작품 흥행을 돕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 위원장인 김경숙 상명대 지적재산권전공 교수는 “콘텐츠의 잔여 권리가 남아있게 되면 전세계에 유통할 때 국가마다 법 제도가 달라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정부에서 지원하는 법률 자문을 이용하면서 원작자가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끝까지 가져갈지, 매절하고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을 요구할 지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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