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2025년 1월부터 동성혼 법적 효력 “이제 시작…개정 필요 법률 50여 개”
한국이 동성부부의 결혼할 권리를 부정하는 동안 동성결혼을 포용하는 국가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24년 10월 기준 39개국이 동성혼을 인정한다. 2001년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유럽과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동성끼리의 결합을 혼인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많아졌다. 아프리카에서는 200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세아니아에서는 2013년 뉴질랜드, 2017년 오스트레일리아가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최근 아시아 대륙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국제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인 2019년 5월17일 대만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한 나라가 됐다. 동성 동반자도 혼인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법률 개정안이 입법원(의회)에서 통과됐다. 네팔은 아직 민법을 개정하지는 않았으나 네팔 대법원이 2023년 6월28일 네팔 정부를 상대로 동성커플의 결혼을 구청에서 등록(인정)하도록 하는 임시 조처를 시행하도록 명령했다.
아시아 대륙에도 변화의 물결
아시아에서 가장 최근에 동성결혼을 인정한 나라는 타이다. 2024년 3월27일 타이 하원의회를 통과한 민상법 개정안(이하 혼인평등법)은 여성과 남성의 결합으로 제한했던 결혼을 ‘두 개인’의 결합으로 용어를 바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혼인이 가능하도록 한 법안이다. 이 법안이 2024년 6월18일 타이 상원의회를 통과하고 2024년 9월24일 왕실 관보에 게재되면서 타이는 2025년 1월22일부터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가능하다. 동남아시아로 범위를 좁히면 타이는 동남아시아에서 동성혼을 법제화한 첫 나라다.
이런 기념비적 진전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2000년부터 타이에서 성소수자 인권과 건강 증진 활동을 해온 ‘타이무지개하늘협회’(Rainbow Sky Association of Thailand)의 라삐뿐 쫌마름 이사회 자문위원을 한국 혼인평등 캠페인 조직 ‘모두의 결혼’을 통해 연락해 2024년 10월6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타이 마히돌대학 공중보건학부 전임교수이기도 한 라삐뿐 위원은 “혼인평등법이 통과됐지만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며 “혼인평등법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타이무지개하늘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엘지비티큐아이에이+(‘LGBTQIA+’, 다양한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말)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 단체다. 비 온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는 힘든 시기를 겪은 뒤 찾아오는 행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성소수자 운동도 이와 같다. 그래서 단체명에 ‘무지개하늘’을 넣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여부 검사와 예방 활동, 트랜스젠더를 위한 호르몬 치료 지원뿐만 아니라, 성별인정법안(신체 외관상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출생시 지정성별 및 그에 따른 호칭 대신 자신이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을 신분증, 여권, 기타 공문서에 기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과 같이 성소수자 차별을 끝내기 위한 법률 제정 운동을 하고 있다. 타이에서 2015년 제정된 성평등법(성별 또는 성별과 다른 외모를 이유로 한 차별을 ‘부당한 성차별’로 정의하고 ‘부당한성차별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위원회가 정부와 민간단체 및 관련자를 상대로 성차별 시정을 명령하도록 한 법)이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고, 타이에서 성소수자 포용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게 교육과정 개정 촉구 운동도 한다.”
―타이에서 혼인평등법 제정 논의는 언제 시작됐나.
“탁신 친나왓 총리 재임기인 2001년부터 (정치권에서) 동성혼 인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타이 사회는 동성혼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 (타이의) 한 상원의원은 “동성애자들은 사랑이 뭔지도 모르기 때문에 결혼을 허용하면 다음날 이혼할 것”이라고 말하며 동성혼을 강하게 거부했다. 그 뒤로 대중 운동에서 동성혼이 논의되지 않다가 2012년 한 게이(남성 동성애자) 커플이 치앙마이주에 혼인신고를 했다. 이 신고가 불수리 되자 이 게이 커플은 타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타이 하원 상임위원회 중 한 곳인) 법무·사법·인권위원회(이하 상임위)에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민상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의견을 같은 해 전달했다. 하지만 상임위는 민상법을 개정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타이 시민 90% ‘성소수자’ 가족으로 수용
―그다음엔 어떻게 됐나.
“이듬해인 2013년 상임위는 내각 법무부와 함께 민상법 개정 대신 20살 이상의 동성커플에게 상속, 제한된 범위에서의 양육할 권리 등을 일부 보장하는 ‘시민 파트너십 법안’을 제안했는데, 일부 인권단체는 이 법이 동성부부에게 법적 부부의 권리를 완전히 보장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이후 2018년 민상법 개정 논의가 재개됐고, 한 독립 활동가가 2021년 11월 민상법 개정 청원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1만 명의 서명만으로도 시민이 만든 법안이 의회에 직접 제출될 수 있었는데, 청원 시작 뒤 하룻밤 사이에 16만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런 노력이 모이고 모여 동성혼이 가능하도록 한 민상법 개정안이 지난 20여 년의 논의 끝에 결국 의회를 통과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떤가.
“다음 설문조사가 참고될 수 있겠다. 타이 국립개발행정연구원(타이 유일의 공립 고등교육기관)이 15살 이상 응답자 1310명을 대상으로 2022년 6월8~1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0.6%가 성소수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성소수자를 친구 또는 직장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92.8%로 나타났다. 아울러 (비록 혼인평등법은 아니었지만)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시민 파트너십 법안에 79.6%가 찬성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왕실모독죄가 있는 나라에서 혼인평등법이 통과됐다.
“왕실모독죄는 타이가 과거 절대군주제에서 민주적 입헌군주제로 정치체제가 바뀐 이후 타이 시민들에게 있어 오랫동안 애국심 또는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타이 사람들은 왕실모독죄를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성혼 법제화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성혼 법제화가 왕실모독죄와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이전에 타이 국왕이었던 라마 9세의 첫딸이자 현 라마 10세의 누나인 우본랏타나 공주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채널에서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고 성소수자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자녀를 이해하고 사랑할 것을 요구한 적이 있다.”
누구나 원하는 성별 기재 가능해야
―혼인평등법이 2025년에 시행된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혼인평등법이 끝이 아니다. 진정한 혼인평등 실현을 위해 아직 개정해야 할 법이 많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개정이 필요한 법률이 50개 정도 된다. 또 성별인정법(출생시 지정성별 및 그에 따른 호칭 대신 자신이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을 신분증, 여권, 기타 공문서에 기재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 혼인평등법이 시행되더라도 트랜스젠더들은 출생시 지정성별에 따라 ‘미스터’(Mr.), ‘미스’(Miss) 등의 호칭으로 표기돼 결혼해야 한다. 이는 개인의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이다. 우리는 모두가 혼인증명서에 자신이 원하는 성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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