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국제고, ‘한국’ 틀 벗어던졌기에 우승할 수 있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2024. 9. 1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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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장부승의 海外事情]
대한민국 떠들썩하게 한
교토국제고 ‘불편한 진실’
고시엔 우승기 받아든 교토국제고 주장 후지모토. /연합뉴스

지난달 교토국제고의 일본 고시엔(甲子園) 우승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사실 몇 년 전까지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소규모 고교 야구부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이라니,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쪽 언론 보도를 보니 뭔가 이상했다. 교토국제고의 우승이 ‘한국인의 승리’라는 것이다. 어느 라디오 진행자는 흥분했는지 “한국의 혼이 이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에서 그것을 “한국인의 승리”로 보는 시각은 없다. 일본에서 교토국제고의 우승은 교토의 자랑이다. 고시엔 구장에 응원 온 2800명 응원단도 대부분 교토 주민과 학생이었다.

의외로 재일 한국인들 중에도 교토국제고를 한국 학교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는데, 교토국제고는 법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일본 학교이다. 20년 전부터 일본 문부성 인가하에 문부성 지정 학습지도요령에 따라 교육을 실시하며 일본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160명 정도 되는 학생도 대부분 일본인이며, 야구부는 61명 거의 전원이 일본인이다.

사실 한국 고교 야구도 거의 잊힌 마당에 한국인들이 일본 고교 야구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영 어색하다. 아마도 진짜 이유는 한국어 교가가 방송을 타고 그 가사에 ‘동해’라는 말이 들어갔기 때문 아닐까?

‘불편한 진실’을 말하자면 고시엔에서 ‘동해’가 울려 퍼졌다 해서 일본인들이 ‘일본해’를 ‘동해’로 바꿀 확률은 제로다. 일본인 중에 ‘동해 표기’를 지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기실 일본 지도에는 이미 ‘동해’가 있다. 아이치현을 비롯해 태평양에 면한 4현을 묶어서 한자로 ‘東海(동해)’라고 쓰고 ‘도카이’라고 읽는다. 이미 ‘동해’가 있는데 그 반대쪽에 또 ‘동해’라고 표기할까?

‘동해’가 들어간 한국어 교가에 대한 불편함은 교토국제고 내부로부터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우승을 이끈 고마키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수년 전부터 교가 변경을 건의해 왔으나 학교 측이 이를 묵살해 왔다”고 강도 높게 공개 비판했다. 고마키 감독은 교토국제고가 일본어, 영어, 한국어 교육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만큼 교가도 3국어를 섞어 새로 짓자고 요구하고 있다. 교토국제고의 스카우터인 이와부치 교사 역시 고마키 감독을 지지하면서 시대 변화에 맞게 K팝 형식으로 교가를 완전히 새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교토국제고교 학생들이 지난달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간토다이이치고교와의 결승전에서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2-1로 승리를 거두고 한국어 교가를 부르고 있다. /뉴스1

동해 명칭이 들어간 한국어 교가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느꼈을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 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 학생들 상당수가 교가의 의미를 모른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가사를 잘 몰라서 입만 뻥긋뻥긋한다고 한다. 일본 다수 매체의 보도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야구부원들 대부분이 야구가 좋아서 교토국제고에 온 것이지 특별히 한국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야구부원 61명 중 유일한 한국 국적자인 가네모토 유고(金本祐伍)군조차 교토국제고 입학 전까지 자신이 한국 국적이라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한국의 혼’이 교토국제고 우승의 원동력이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진실은 정반대이다. 교토국제고의 우승은 교토국제고가 ‘한국’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던지고 일본 사회 안으로 뛰어들어 경쟁과 집중이라는 모토하에 철저히 승리만을 위한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스카우팅 전략은 다른 학교와 다르다. 교토국제고와 준결승에서 붙었던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는 선발 전력 20명 중 15명이 아오모리 출신이다. 결승에서 만난 간토제일고는 18명이 수도권 출신이다. 반면 교토국제고 선발 전력 중 교토 출신은 5명에 불과하며 오사카까지 합쳐도 9명밖에 안 된다. 홋카이도가 3명이나 되고 심지어 후쿠오카 출신도 1명 있다. 즉, 교토국제고는 지연, 학연에 구애받지 않고 전국에서 인재를 모아 경쟁시킨다.

훈련 방식도 교토국제고는 다르다. 좁은 운동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비에 집중한다. 특히 투수와 야수는 분업 체계를 세워 코치를 별도로 두고 있다. 포지션별로 개별 선수의 개인적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며, 개인 훈련 시간을 무려 밤 10시 반까지 허용한다. 기숙사 전담 코치를 별도로 두고 훈련 시간 이외에 생활지도까지 책임져 준다. 오로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여 개인 역량 극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경쟁과 집중의 결과, 몇 년 전부터 교토국제고 출신 프로 선수가 급증했다. 2019년 이후 교토국제가 배출한 프로 선수가 무려 8명이다. 간토제일과 아오모리 야마다가 각각 2명에 불과한 것을 보면 현격한 차이다. 이미 전국의 중학교 야구 선수들에게 교토국제고는 프로 진출의 통로로 여겨지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야구 인재가 모여들 것이다.

25년 전 야구부 창설 초기 교토국제고는 무려 34 대 0, 콜드패라는 수모를 당했다. 당시 선수는 대부분 재일교포나 한국인이었다. 그랬던 팀이 지연, 혈연, 학연을 뛰어넘어 경쟁과 집중이라는 기조 아래 일본인을 대거 끌어들이자 전국 대회에서 우승했다.

교토국제고의 성공이 주는 진정한 교훈은 ‘동해’가 들어간 한국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민족 중심주의가 아니다. 진실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민족을 뛰어넘어 문호를 개방하고 경쟁을 유도하여 역량을 집중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미래의 새로운 ‘한국의 혼’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고시엔 우승 확정 후 얼싸안는 니시무라 투수와 오쿠이 포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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