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빌려줬어요. 그냥 친구가 힘들다니까, 어쩌다 그런 상황이 생겼다니까 '그래,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싶었거든요.
저한테 그 친구는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고, 나름 마음을 터놓은 적도 많았어서 의심이란 건 하지도 않았어요. 뭣보다 그때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뿌듯함이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려주겠다는 날짜가 몇 번이나 지나가고 나서야 마음에 조그만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정작 그 친구는 별일 없다는 듯 생활하고 있었고, 연락도 제가 먼저 하지 않으면 오지 않더라고요. 처음엔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계속 반복되니까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돈보다 마음이 상해버린 순간들
사실 돈을 빌려준 금액보다 더 큰 상처는, 제가 믿었던 사람이 나를 그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는 마음이었어요. '잠깐만 기다려줘'라든가 '내가 꼭 갚을게' 같은 말이라도 해줬다면 덜 섭섭했을 텐데, 묵묵부답이 지속되니까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지더라고요.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이게 나한테 돌아오는 방식인가?' 싶어서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시렸어요.
그 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돈 문제를 조심하게 됐어요. 마치 자동으로 경계심이 생긴달까, 누가 힘들다고 해도 솔직히 마음 한편으론 '괜찮겠지?'라는 의심이 먼저 올라오게 되더라고요.
단호해야 하는 순간은 꼭 오더라고요
그 사람이 나쁜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 어려움 안에서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직접 겪으면서 알게 됐어요. 그냥 착하게만 살았을 땐 몰랐던 현실적인 감정이랄까. 무조건 이해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다는 걸요.
그때 그 친구에게 단호하게 “이건 아니야”라고 말했을 때, 제 마음도 갈라지긴 했지만 이상하게 후련한 기분도 들었어요. 대화에서 상대방의 반응이 차갑긴 했지만 이상할 만큼 담담한 제 모습을 보고, 저도 조금은 변했구나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