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이 '훈련' 때문에 ''한국 특전사 6명이 희생된'' 최악의 훈련

민주지산 천리행군, 재난이 된 훈련

1998년 4월 1일,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5공수특전여단(구 흑룡부대) 대원 258명은 충북 영동군 민주지산(해발 1,242m)을 향해 천리행군 훈련을 시작했다. 봄철임에도 폭설·비·강풍이 갑자기 몰아닥치며 미증유의 기상 악화에 노출됐다. 행군 도중 체감온도 영하 20~30도, 눈높이 30㎝, 시속 50km 이상 강풍 등 극한 환경에 대원들은 탈진과 저체온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 험난한 상황은 곧 대한민국 군사 훈련 역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로 기록되었다.

대장의 오판과 무리한 훈련 강행

부대원들은 행군 중지 요청을 했으나 당직 대대장은 “특전사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이유로 훈련 강행을 지시했다. 이는 신속한 행군을 통해 위험지역을 빠져나가려 는 판단이었지만, 이미 대원들의 피로와 체력 저하, 젖은 복장으로 인한 빠른 저체온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부대가 정상과 하산로에서 통신두절, 식수·식량 공급 중단, 헬기 접근 불가라는 삼중 난관에 봉착했고, 일부 대원들은 민가에 도착해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임시 학교 대피소에서 응급조치를 했지만 구조는 늦어졌고,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중대장까지 참변을 당했다.

6명의 희생… 대한민국 최악의 저체온 사망사고

사고는 결국 6명의 특전사 대원이 순직하는 비극으로 귀결됐다. 사망자 명단에는 중대장 김광석 대위(학군 30기), 이수봉 중사, 오수남·이광암·한오환·전해경 하사가 포함됐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 대원들은 심폐소생술, 현장 구호에도 불구하고 끝내 생명을 잃었다. 당시 대원 20여 명도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중상을 입었으며, 헬기 구조 실패로 피해 규모가 커졌다. 사망자들의 넋은 이후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책임과 변화, 군수뇌부의 징계

사고 이후, 무리한 훈련을 강행한 대대장과 여단장은 군내 징계를 받았다. 군지휘관들의 안전 불감증과 책임 회피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후 군은 혹한기 훈련 기준을 전면 재점검했다. 동계 장비, 방한복, 고어텍스 등 생존 장비의 대규모 보급이 뒤따르며, 기준 미달 장비만 갖춘 채로 행동을 강요하는 군문화에 변화가 일어났다.

훈련의 의미와 남은 과제

민주지산 참사는 “후방에선 안전, 전장에선 완수”라는 군 문화를 바꿔놓았다. 부대의 명예보다 안전과 생명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이 사고는 훈련 설계와 감시체계, 기상예측, 응급구조 능력 등 전반적인 군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25주기 추모식이 거행될 만큼, 현재도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경각심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