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고 싶다면 견뎌!" 어느 장수밴드가 말하는 고비 극복법

김정덕 기자 2024. 10. 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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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와이드 인터뷰
20주년 맞은 킹스턴루디스카
중남미 국가들이 인정한 실력
그럼에도 행사 없인 생존불가
버티고 정비하면서 고비 넘겨

밴드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척박, 빈곤, 해체…. 설 무대도 좁고, 혹여 공연을 하더라도 N분의 1로 수익을 쪼개야 하니 당연한 말일지 모른다. 유명하면 모를까 '무명 밴드'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K-팝의 세계화를 운운하는 지금, 어쩌면 역설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가치는 깊다. 그들은 "반복적인 위기를 이겨낸 비법은 견딤과 정비였다"고 말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사진=킹스턴 루디스카 제공]

킹스턴 루디스카는 2004년에 결성한 밴드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8월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KT&G 상상마당 홍대 라이브홀에서 기념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멤버는 리더인 최철욱(트롬본ㆍ보컬)씨를 비롯해 김정근(트럼펫), 서재하(기타), 성낙원(색소폰), 슈가석율(보컬ㆍ퍼커션), 임채선(건반), 피인혁(베이스), 황요나(드럼) 등 총 8명이다.

이 밴드는 그동안 스카(Ska)라는 장르의 음악을 해왔다. 그래서 밴드 이름도 킹스턴 루디스카라고 지었다. 풀어보면 '정통 킹스턴(자메이카 수도) 스카를 추구하는 악동들'이란 의미다. 루디는 'rude'에서 따온 건데, '무례하다'는 뜻도 있지만 현지 뮤지션들 사이에선 '악동' 정도로 쓰인다.

[※참고: 스카는 1950년대 자메이카에서 탄생한 음악이다. 자메이카는 지리적으로는 미국과 가깝고, 역사적으로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인 동시에 흑인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 리듬과 서양음악이 뒤섞인 음악이 발전했는데, 여기에 미국의 재즈가 더해지면서 탄생한 음악이 스카다.]

우리나라에서 '밴드'를 하는 건 쉽지 않다. 금전적 문제도 있지만, 설 무대가 많지 않다는 건 풀기 어려운 문제다. 더군다나 '스카'라는 장르는 생소한 측면이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킹스턴 루디스카는 어떻게 20년간 밴드를 유지해온 걸까. 리더 최철욱씨에게 먼저 물었다.

✚ 20주년을 축하합니다.
보컬ㆍ트롬본 최철욱(이하 최) : "감사합니다."

✚ 한가지 장르의 음악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 : "그렇죠. 사실 20년을 지나오면서 밴드 내부에서도 이 길을 고집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많았어요. 장르를 고집한다는 건 스스로 시장을 좁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다행히 스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습니다만, 한계는 분명히 있죠."

예술가가 특정 장르를 고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장르에 활동 범위를 묶으면 대중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대신 추구하는 예술의 깊이가 달라지고, 충성도 높은 마니아를 얻을 순 있지만 고행의 보상치곤 좀 약하다.

✚ 사실 자메이카 음악이라 하면 일반적으론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유행했던 레게가 떠오릅니다. 스카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특별한 매력이 있나요?
색소폰 성낙원(이하 성) : "역사적으로 보면 스카가 먼저 생겼고, 이후 스카를 하던 이들이 레게로 옮겨갔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 스카라는 음악이 상당히 다양한 음악에 영향을 미쳤어요. 어쩌면 그게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킹스턴 루디스카의 콘서트.[사진=킹스턴 루디스카 제공]

✚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줬나요?
성 : "예를 들어보죠. 자메이카에서 레게 음악이 시작되면서 지금의 디제이(DJ) 문화도 함께 시작됐어요. 당시 음악을 좋아하던 이들은 동네 공터에 스피커와 턴테이블을 놓고 음악을 크게 틀곤 했는데, 그게 디제이의 시작입니다. 스카는 바로 그 레게 음악에 영향을 줬죠. 스카는 록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영국의 록그룹 비틀스가 1968년에 발표한 곡인 '오블라디 오블라다(Obladi Oblada)' 역시 스카예요."

✚ 여러 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스카에 빠진 건가요?
보컬ㆍ퍼커션 슈가석율(이하 슈) : "다양한 대중음악의 뿌리를 찾다 보니까 스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후 푹 빠졌죠."

✚ 또다른 매력이 있나요?
성 : "다양한 영향을 줬다는 건 그만큼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융화가 잘돼요. 록 페스티벌이나 힙합 페스티벌에도 잘 어울려요. 게다가 일단 신납니다. 그러니까 공연을 하면서도 정말 신나요. 리듬도 단순하고 반복적이에요. 어렵지 않죠. 중독될 수밖에요."

✚ 그래서 정통 스카를 추구하는 건가요?
슈 :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외국인이 판소리를 배운다면 그 판소리에 우리의 한恨을 얼마나 녹일 수 있을까요. 쉽지 않죠.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애초에 스카라는 음악에 흑인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것처럼 킹스턴 루디스카의 스카에도 우리만의 희로애락이 있었으면 해요."

킹스턴 루디스카 멤버들은 음악의 원류를 뒤쫓다가 결국 스카를 만났고, 그 매력에 푹 빠진 지 20년이 흘렀다. 그 기간은 헛되지 않았다. 지난 2018년과 2019년엔 쿠바와 멕시코 등 스카를 이해하는 국가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해외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비도 적지 않았다.

✚ 지난 20년간 킹스턴 루디스카에 고비는 없었나요?
슈 : "장르 음악을 고집하는 데 따른 내적 갈등이 있었죠. 물론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우린 그걸 발전적인 숙제로 받아들였으니까요. 진짜 고비는 외부에 있었어요."

✚ 어떤 고비인가요?
성 : "홍대 클럽 같은 곳에서 자주 공연을 하면 사람들은 수입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주 수입원은 행사예요. 인기의 유무를 떠나 가수들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죠. 근데 툭하면 지역 행사가 사라지니 점점 힘에 부칩니다.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 등 전염병이 돌았어요. 잊을 만하면 참사도 터졌죠. 그럴 때면 어김없이 행사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 전염병이나 참사는 심리적 문제와 결부돼 있어요. 행사를 예정대로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기분 좋은 행사가 될 것 같지도 않고요.
최 : "무조건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상으로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무슨 뜻인가요?
최 : "노력 여하에 따라 일상의 회복 속도는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발 빠른 방역 조치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고, 사회가 재난을 잘 극복할 수 있게끔 갈등을 줄일 수도 있죠. 시스템을 잘 만들어 인재人災의 가능성을 줄일 수도 있고요. 그러면 저희도 일상을 빨리 회복할 수 있겠죠. 그런 걸 정부가 잘 해주면 좋겠어요."

✚ 일상 회복 전까지는 어떻게 견뎠나요?
최 : "누군가는 대학으로 출강(악기 연주)을 나갔고, 누군가는 개인 교습을 다녔어요. 어떤 멤버는 택시 운전을 했습니다. 멤버끼리 서로 부담이 되기보단 도움을 주기 위해 애썼어요. 어쩌면 반복적인 고비를 맞으면서 터득한 지혜라고 할 수도 있겠죠."
성 : "고비를 넘기는 과정을 마냥 '견뎠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다시 돌아올 일상을 위해 정비하는 과정이기도 했으니까요."

✚ 어떤 정비를 했나요?
성 : "평소엔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던 연습을 더 열심히 하는 거죠. 곡도 다시 만들고요. SNS나 유튜브 계정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100% 활용을 하고 있진 못하고 있지만, 변화와 트렌드를 읽는 꽤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거군요.
최ㆍ슈ㆍ성 : "듣고 보니 그렇네요. 어쩌면 그게 킹스턴 루디스카의 지난 20년을 지탱하게 해준 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카의 경쾌한 리듬처럼 말이죠."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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