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뒤덮은 '이갈이' 낙서 …범인 잡고보니[사건의재구성]
재판부 "글자 예술성 있다고 보기 어려워…많은 사람에게 불안감 조성"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이갈이'
2022년 10월. 미국인 A 씨(31·남)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변전기 박스에 붉은 래커로 이처럼 쓰고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미처 마르지 않은 래커가 흘러내려 피로 쓴 글씨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서울 용산구가 '이갈이'로 뒤덮였다. 시민들은 변압기 박스, 담벼락, 전봇대에서 형형색색의 '이갈이' 글자를 목격했다.
때때로 별 표시나 '23'이라는 알 수 없는 숫자가 함께 적혀 있기도 했다. A 씨는 이갈이를 뜻하는 의학 용어인 'bruxism'을 쓰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은 일일이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시민들 사이에선 "테러 예고가 아니냐"는 불안감이 떠돌기 시작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자,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A 씨는 신고 접수 후 약 한 달 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그사이 A 씨는 1년간 138회에 걸쳐 서울 용산구 일대에 '이갈이' 낙서를 남겼다.
A 씨는 경찰에 검거된 후 자신의 SNS에 "이갈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질병입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경찰 조사에선 이갈이에 대한 경각심을 심으려고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 박지원 부장판사는 공용물건손상·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지난달 16일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또 "A 씨가 쓴 글자 중 상당수가 예술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A 씨의 낙서를 '작품'이라고 보지 않았다.
재판부는 "A 씨가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상당수의 피해물을 원상회복했고, 이 사건으로 출국이 정지돼 장기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기는 했다"면서도 "범행 자체를 즐긴 것으로 보여 범행 동기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질책했다.
또 "범행 장소를 통행하는 많은 사람에게 불안감을 조성했다"며 "짧은 기간에 많은 범행을 반복해 국내 법질서에 대한 경시가 심각하다"고 판시했다.
shush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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