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시대 돌아온 김삼순…통쾌하고 사랑스러운 '삼순이'가 바꾼 것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9.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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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그 시절 삼순이들, 오랜만이야." (글 : 장은진 대중문화평론가)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OTT 시대에 감독판 8부작으로 돌아온 19년 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양다리 걸치다 들켜 당당하게 헤어지자는 나쁜 남자 앞에서 눈물 뚝뚝 흘리다 화장실에서 판다가 되어 울던 삼순이는 요즘 MZ세대들에게는 도통 이해 안 될 이야기지만 그때는 또 왜 그렇게 내 얘기 같았을까.

인트로는 참기 힘든 신파지만 삼순이와 진헌의 사랑 이야기는 손발 오그라드는 장면을 다 걷어낸 김윤철 감독의 편집 때문인지 꽤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2024년 웨이브에서 뉴클래식 프로젝트로 선보인 첫 번째 콘텐츠는 19년이 흘러도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준 브랜드 삼순이의 귀환이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당시 5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의 삼순이란 이름을 가진, 그리고 그 시대 모든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며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추억의 이름이자, 여전히 유효한 레트로 열풍 속 다시보기 버튼을 작동시킨다.
 

삼순이가 보여준 2005년 우리의 풍경, 그땐 그랬지

20년 전 부모의 결혼 강요로 젊은 남녀의 주말은 온통 선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나 싶을 정도로 호텔에서 선을 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삼순이뿐 아니라 다른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결혼하기 싫은 남자. 그 남자들은 꼭 자신과 다른 환경의 여자에게 관심을 두고 서민 체험을 하며 그녀들의 세계를 신기해한다. 세기말을 넘겨 2000년대로 진입했던 당시 트렌디 드라마의 유행은 경제적 생활고를 가진 여주인공과 결핍 있는 부잣집 남자 주인공, 여기에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돈 많은 실장님, 남자 주인공이 애타게 짝사랑하는 서브 여주 4각 관계 구도를 드라마 김삼순도 초반에는 철저히 따른다.

여자는 돈이 필요하고 남자는 거래를 제안하고, 어쩔 수 없이 수락한 계약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사실 삼순이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노처녀도 아니고 별로 뚱뚱하지도 않다. 서른 살에 파리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자기 발전을 이룬 삼순이는 늘 남자에게 차이는 사랑을 했다는 것과 삼순이란 촌스러운 이름 말고는 기죽을 것도 없는 엄청난 고스펙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5년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화끈하고 통쾌면서도 사랑스러운 삼순이의 매력 때문이었다. 사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할 말 다 하면서도 당당했던 여주인공 김삼순은 그 당시 워킹우먼들의 꿈이었다.

90년대 신데렐라와 캔디 드라마의 2000년대 버전인 김삼순은 여주인공의 성장과 자기 발전을 그리며 끝났다는 점에서 연애와 밀당만 주야장천 보여주던 그전 드라마들과 달랐고 <파리의 연인>, <옥탑방 고양이>처럼 자기 주관 뚜렷하고 독립적 성향을 보인 여주인공을 거쳐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서른 살이지만 아줌마 소리를 밥 먹듯 듣는 삼순이 캐릭터는 동네 욕쟁이 할머니 같다가도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김선아의 연기는 지금 봐도 찰떡처럼 찰지고, 풋풋한 현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난다. 삼순이가 자주 쓰는 당시 유행어 미지왕(미친놈, 지가 왕잔 줄 알아)과 자주 등장하는 '얼마면 돼?' 현빈 버전 덕분에 <가을동화> 원빈 소환까지, 추억은 방울방울 솟는다.
 

삼순이가 바꾼 것들 : 절반의 성공을 이룬 드라마 여성 캐릭터

아니, 삼순이는 저렇게 자기 이름이 싫으면 개명하면 되지?!란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우리나라 법률상 개명 정식 허용이 이뤄진 시기가 2005년 11월이다. 드라마가 7월에 끝났으니 그 후로 4개월 뒤 개명이 가능해졌단 말인데 그전에는 이름이 맘에 안 들어도 바꾸지 못했던 시대를 살았단 얘기다.

또한 드라마 속 삼순이 아빠가 빚보증을 잘못 서 집을 날리거나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는 삼순이 언니가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순이는 여전히 혼자가 아닌 태평양을 건널 조각배를 같이 탈 동반자를 구하는 데 진심이다. 혼자 살고 말지, 아이도 낳지 않고 결혼도 선택이 된 지금 2024년의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다른 결혼은 필수라는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가치관이 부담스럽지만 극 중 삼순이는 꿋꿋하게 커리어를 쌓으며 나아간다. 아마도 삼순이는 그 후 우리가 만나게 될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같은 진취적이고 100%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나아가는 진격의 여주인공들의 완성되기 전 성장형 캐릭터의 절반의 게이지를 채운 과도기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오십이 된 삼순이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2024년 삼순이는 어디선가 자신의 베이커리를 내고 잘 살고 있을까? 진헌과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행복했을지 아니면 메기같이 생긴 시어머니의 구박과 등쌀에 재벌가 청담동 며느리 사표 내고 이혼한 뒤 다시 파리로 훌쩍 떠나서 파리지앵과 만나 새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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