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론' 직접 거론한 삼성…인적 쇄신·대형 투자 나서나(재종합)

김정남 2024. 10. 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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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현 삼성 부회장, 사상 첫 실적 부진 메시지
"도전정신 재무장…기술 근원 경쟁력 복원할 것"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느슨한 조직에 긴장감
연말 인사 예상보다 커질듯…대형 투자 가능성도

[이데일리 김정남 김소연 기자] “송구스럽다.”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이 실적 부진에 고개를 숙였다. 올해 3분기 실적이 나오자나자 이례적으로 메시지를 내고 ‘삼성 위기론’을 직접 거론한 뒤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따라 연말 반도체 부문 인사는 ‘대대적인 쇄신’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졌다.

전영현, 사상 첫 실적 관련 메시지

전 부회장은 8일 3분기 실적 발표 직후 메시지를 내고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며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엄중한 상황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시장 기대치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영업이익 전망치를 10조7717억원으로 추정했다. 특히 반도체 부진이 타격을 입혔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수뇌부가 실적 발표와 관련해 별도 메시지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주가 하락, 기술 경쟁력 우려 등 시장에 퍼지고 있는 삼성 위기론을 조기에 불식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는 평가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는 5만원대로 떨어지며 52주 최저가를 기록하는 등 부침을 겪고 있다. ‘대표이사’가 아닌 전 부회장이 직접 입장을 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삼성 위기론의 발원지가 반도체라는 점을 인정하고 위기 타개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이사인 한종희 DX부문장 부회장은 ‘반성문’에서 빠졌다.

전 부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기술 경쟁력이다. 그는 “무엇보다 기술의 근원 경쟁력을 복원하겠다”며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이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라고 했다. 그는 “단기적인 해결책 보다는 근원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며 “더 나아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 완벽한 품질 경쟁력만이 재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부회장은 이와 함께 과거보다 느슨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조직문화의 재건을 강조했다. 전 부회장은 “한 번 세운 목표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 달성해내고야 마는 우리 고유의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며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한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해 개선하도록 하겠다”며 “치열하게 도전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반드시 새로운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전 부회장이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에 대한 책임을 절감하고 위기 극복을 위해 온 몸을 던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했다.

연말 인사 폭 예상보다 더 커질듯

현실적으로 삼성전자는 4분기 실적도 반등을 장담하기 어렵다. 수익성이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 HBM3E의 엔비디아 퀄 테스트 연내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SK하이닉스가 최근 HBM3E 12단 제품 양산을 본격화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6세대 HBM4에서 판 뒤집기를 벼르고 있지만, 이는 빨라야 내년 하반기다. 게다가 적자의 늪에 빠진 파운드리 사업은 대만 TSMC에 밀려 좀처럼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에 못 미치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한 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다만 시장은 전 부회장이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했다는 점에 더 주목하는 기류다. 삼성 반도체의 저력을 감안하면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제품 중 삼성전자가 지금 다소 뒤처진 분야는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삼성을 상징하는 문화였던 집요함과 맹렬함을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 부회장이 지난 5월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후 공개적으로 낸 메시지를 보면, 모두 이같은 조직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 반도체가 추후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초대형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연말 예정돼 있는 인사는 예년보다 판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안팎은 이미 연말 인사와 관련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전 부회장이 근원 경쟁력을 강조한 만큼 연구개발(R&D)을 중심으로 투자 확대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특히 메모리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 입장에서 반드시 키워야 하는 파운드리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반도체업계 고위인사는 “삼성 파운드리가 그동안 가능한 여력 안에서 최대한 투자하긴 했지만 TSMC와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랐다”며 “파운드리를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려면 결국 투자를 훨씬 늘려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파운드리는 지금은 계륵일 수 있지만 추후 몇 년간 적자를 보더라도 가져가야 할 사업”이라며 “국가적으로 봐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정체돼 있던 초대형 인수합병(M&A)이 이뤄질 수 있다는 예상 역시 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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