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의 똑똑한 생존법, 맥라렌 아투라 [시승기]

영원한 건 없다. 기름 냄새 풍기던 대배기량 스포츠카들의 시대는 진즉 저물었고, 힘들게 생존한 엔진들은 다운사이징과 전기모터라는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 이마저도 십수 년이면 수명이 다 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만큼 내연기관의 미래는 불투명한 게 현실이다.

이는 슈퍼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연기관의 마초적 감성을 어필하던 전통 강자들도 이제는 전기모터의 도움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들이 아직 낭만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맥라렌 아투라 역시 마찬가지다. 모터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내연기관의 터프함과 순수함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슈퍼카의 변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이브리드 슈퍼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아투라는 전형적인 슈퍼카 디자인을 보여준다. 길고 낮은 노즈와 프론트 글래스부터 바짝 누운 '캡 포워드' 스타일 바디, 그리고 차량 한가운데 자리한 운전석 등이 한눈에 봐도 슈퍼카 포스가 풍긴다.

맥라렌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철학을 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차에 있는 요소들이 전부 공기역학적인 기능을 하도록 설계됐다. 헤드램프 밑에 길게 뻗은 라인은 에어 인테이크의 역할을 우선하며, 아가미를 닮은 펜더 벤트는 공기의 흐름을 제어해 리어 인테이크로 공기의 흐름을 유도한다. 차량 전체가 거대한 유기체처럼 보이는 듯하다.

뒤쪽에서 차를 바라보면 차가 아주 매끈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슈퍼폼 알루미늄 공법을 적용해 각 부품의 접합부를 최소화한 덕분이다.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이루어진 후면 상단부는 마치 잘 다려진 셔츠를 보는 듯하다. 시각적으로 깔끔해 보이는 것은 물론, 공기 흐름에 방해되는 이음매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시속 300km가 넘는 슈퍼카인데도 그 흔한 윙조차 달지 않았다. 그만큼 공기 제어에 자신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내는 오롯이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구성이다. 스티어링 휠에 버튼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다. 운전 편의를 위해 다양한 버튼을 몰아넣는 경쟁사들과 비교된다. 대신 주행 관련 버튼을 계기판 주변에 배치해 운전 중 시선을 뺏기지 않도록 했다. 서스펜션 세팅 및 드라이브 모드 변경은 스티어링 휠을 쥔 채 손가락만 뻗으면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플로팅 타입인데, 마치 모터스포츠에서 드라이버에게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태블릿과 같다. 풀 터치 방식이지만 공조 장치와 오디오 등은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UI에도 신경 썼다.

황홀한 자태에 감탄했지만, 막상 시승을 하려니 조금 걱정됐다. 사실 이 차는 스펙만 본다면 그리 자극적이지 않다. 실린더도 6개밖에 없고, 배기량도 3리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기우였다. 사방을 휘몰아치는 우렁찬 배기음과 빛처럼 빠른 변속 속도, 노면을 고스란히 읽는 단단한 서스펜션까지. 아투라는 슈퍼카의 감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전동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출력 인플레이션이 심화됐지만, 585마력을 내는 엔진은 여전히 강력하고 매력 넘친다. 여기에 100마력 전기모터가 더해져 합산출력은 680마력에 달한다. 달리는 순간 6기통, 3리터란 스펙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저 운전자를 압도하는 슈퍼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주행 전반에 걸쳐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도움은 계속된다. 터보랙 같은 엔진 지연 현상을 전기모터가 완벽하게 메꿔주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스로틀 반응속도만 본다면 자연흡기 엔진을 웃돈다. 그저 직진하는 것만으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슈퍼카의 본질 그대로다.

변속 반응도 무척 빠르다. 운전자가 원하는 타이밍에 적절한 단수를 찾아 넣는 센스도 갖췄다. 자동 모드도 충분히 재밌지만, 아투라같은 슈퍼카는 패들 시프터로 철컥철컥 수동조작하는 맛이 더 찰지다. 변속기는 다른 맥라렌처럼 SSG 듀얼 클러치를 쓴다. 차이가 있다면 단수가 하나 높은 8단이다. 후진기어를 과감히 삭제하고 단수를 하나 높인 뒤 전기모터가 후진을 담당하도록 설계했다.

코너에서의 거동도 깔끔하다. 맥라렌 최초로 전자식 리어 디퍼렌셜이 적용됐는데, 노면 상황을 기계식보다 더 부지런하고 똑똑하게 파악하고 대처한다. 토크 분배를 안정적으로 나눠주면서 급격한 고속 코너링에서도 매끈한 라인을 그려준다. 폭발적인 가속력과 강력한 제동, 안정적인 핸들링이 더해지면 운전자의 자신감은 배가된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의 강력한 제동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보이지 않는 힘이 차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낯선 감각이다. 운전자가 원하는 자리에 그대로 멈춰주는 모습에서 마치 차와 한 몸이 된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비결은 회생제동 삭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임에도 과감하게 브레이크 회생제동 기능을 뺐다.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적인 브레이크 성능을 누릴 수 있다. 그렇다고 회생제동이 아예 안되는 건 아니다. 기어 박스가 대신 담당하는 방식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시내 주행에 나섰다. 슈퍼카는 불편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승차감은 놀랍다. 잘 만들어진 고성능 세단을 타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댐퍼의 가동 범위가 좁은 점을 제외하면 일반 도로에서 큰 불편을 느끼기 어렵다. GT 카가 아닌데도 장거리 주행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기에는 세미 버킷 시트도 한몫한다. 운전자의 몸을 잘 잡아주면서 동시에 풀 버킷 시트보다 편안한 착좌감을 만든다.

웬만한 방지턱은 사뿐하게 넘는다. 앞코가 닿을까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다. 앞쪽 지상고를 높여주는 리프트 기능을 사용한다면 가파른 주차장도 무리 없이 진입할 수 있다. 여기에 메모리시트와 360도 어라운드뷰, 애플 카플레이까지 지원하는 등 데일리 운영에 필요한 필수 옵션은 대부분 갖췄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답게 도심에서는 전기차처럼 조용히 다닐 수도 있다. 특히, 야간에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시동을 켜면 일렉트릭 모드가 기본이다. 배터리 크기는 7.4kWh로, 전기로만 약 31km를 달릴 수 있다. 웬만한 도심 주행은 엔진을 한번도 돌리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셈이다. 이때 최고속도는 130km/h다.

일렉트릭 모드로 인해 생긴 단점도 있다. 전기로만 달리는 중 배터리가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면 엔진으로 전환돼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엔진 예열에 시간이 필요한 듯 20~30초간은 공회전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는 가속 페달을 밟아도 엔진은 묵묵부답이다. 전기모터가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를 쥐어짜 반응할 뿐이다. 실린더 보호를 위한 세팅인듯싶은데, 즉각적인 엔진 출력을 원하는 오너에게는 답답할 수 있겠다.

아투라는 아트와 퓨처의 합성이다. 아트는 흔히 아는 예술이고, 퓨처는 전동화 시대를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아트라는 단어에는 예술뿐 아니라 기술 또는 기법이라는 뜻도 숨어있다. 특히 아주 숙련된 기술을 뜻할 때 아트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해석하자면 아투라는 '미래를 보여주는 기술, 또는 전동화를 대처하는 방법 그 자체'를 뜻한다. 이름에서 드러나는 맥라렌의 자신감으로, 아투라를 직접 시승해 보니 슈퍼카의 감성을 전동화 흐름에 잘 녹여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