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상품성으로 대박 냈지만 강력범죄 휘말리며 갑자기 안 팔렸던 국산 고급세단
선대의 인기는 1992년 등장한 '뉴 그랜저'가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이번에도 미쓰비시와의 공동 개발을 탄생한 2세대 모델은 전작과 달리 부드러운 곡선을 주로 사용해 투박함을 덜어내면서도 동시에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을 연출했습니다. 또 차체를 더욱 키워 동급 최고 수준인 5m에 육박하는 전장을 확보해 여전히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랑했죠. 늘씬하게 뻗은 측면은 트렌드에 따라 두꺼운 몰딩 대신 얇은 크롬띠를 둘렀고 단아한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을 더해 단정하게 마무리했습니다.
후면부는 직전 모델과 유사한 구성의 일자형 리어램프로 한눈에 봐도 그랜저의 신형 모델임을 알 수 있게 했고 후면 정중앙에 그랜저 레터링을 넣는 전통도 이 모델부터 시작됐죠. 어렸을 때 기아의 대형 버스 그랜버드의 뒷모습이 이 차랑 너무 닮아서 처음에는 같은 회사에서 만든 차인 줄 알았어요. 공교롭게 이름도 비슷하고요.
늘어난 차체로 넉넉해진 실내는 달라진 외모에 발맞춰 완벽하게 달라졌습니다. 운전기사를 위한 공간임을 나타내듯 투박한 생김새였던 이전 모델에 비해 부드러운 가죽과 강렬한 장미목 우드그레인으로 호화롭게 꾸며졌어요. 아날로그 시계와 앞좌석 열선 및 전동시트 등 새로운 고급 사양이 더해졌고 풀오토 에어컨은 별도의 정보창을 갖춰 고급스럽게 마무리했어요. 조수석 및 측면 에어백을 갖춰 승객 안전도 여느 수입차 못지않게 갖췄죠.
또 발로 밟는 족동식 주차 브레이크가 고급 트림의 옵션으로 제공됐는데 당시 대부분의 운전자에게 생소한 방식이었고 사이드를 채운 채 출발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죠.
뒷좌석은 전동 리클라이닝과 별도 냉난방이 가능한 공조장치, 냉장고, 열선 시트까지 갖췄고 나중에는 4인치 AV시스템과 뒷좌석 TV 등이 추가되면서 플래그십 세단에 걸맞는 최고 수준의 편의성을 자랑했습니다.
조수석 등받이를 개방해 상석에 앉은 승객이 발을 쭉 펼 수 있게 한 것도 당시 플래그십 세단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디테일이죠. 널찍한 트렁크는 중요한 분들의 소중한 짐을 채워 넣기에 충분했습니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2.0L, V6 2.5L, 3.0L 엔진에 마찬가지로 5단 수동 및 4단 자동 변속기가 매칭됐습니다. 여전히 배기량별로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면서 위계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조직 문화와도 잘 맞도록 구성했죠. 또 택시 고급화 정책에 발맞춘 LPG 모델이 함께 출시되어 개인 및 모범 택시로도 상당수 판매됐죠.
승차감은 일명 '물침대'로 일컬어지는 한국식 좋은 승차감의 전형이었는데 자세 제어장치 'TCS'와 전자제어 서스펜션에서 한술 더 떠 초음파 센서로 노면을 파악해 감쇄력을 미리 조절하는 첨단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까지 탑재해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을 개선하는 등 요즘 고급차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첨단 고급 사양이 대거 투입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한편 94년에는 대우가 '혼다'의 물건을 들여와 전륜구동 대형 세단 '아카디아'를 출시했는데 무려 3,200cc 엔진을 탑재해 국산 고급차 배기량 전쟁의 서막을 올렸고 그랜저가 곧바로 3,500cc 트림을 신설하면서 레전드를 갈아치워 버렸습니다. 당대 넣을 수 있는 각종 고급 사양을 빠짐없이 채워 넣은 이 모델은 이후 96년 '다이너스티'에 엔진을 넘기기 전까지 아카디아의 담당 일진으로 활약했죠.
1세대의 브랜드 파워를 성공적으로 이어받은 2세대 '뉴 그랜저'는 단종 직전까지 총 16만 5천 대라는, 무려 2배에 육박하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새로운 고객의 유입과 더불어 전작을 만족스럽게 타던 오너들이 이 모델을 다시 선택하면서 꾸준한 수요가 이어졌고, 플래그십 세단의 연타석 홈런으로 거둬들인 막대한 수익은 이후 독자적으로 차량 및 파워트레인을 개발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급차가 흔치 않던 시절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의 범인들이 '그랜저 타는 사람을 노렸다'는 발언을 하거나 신혼부부 총기사건, 조폭이 타는 차 등 각종 강력범죄에 이 차가 휘말리면서 그랜저 브랜드가 먹칠을 당했고, 실제 판매량에 악영향을 주기도 했죠.
이 때문에 혹자는 현대차가 그랜저 브랜드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도 했는데요. 뉴 그랜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다이너스티'라는 이름으로 출시하면서 최고의 차였던 그랜저를 격하시켰고, 이후 후속형 모델에도 아예 새로운 차명을 붙이면서 얼떨결에 서열 3위로 내려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플래그십으로서의 위엄을 의도적으로 희석시킨 모양새였어요.
한편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는 '데보네어'의 3세대 모델로 판매됐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 사이 기아가 마쯔다와 협업해 다이너스티를 능가하는 대형차를 준비한다는 소식과 한술 더 떠 안중에도 없던 쌍용이 독일 벤츠와 협업해 한국형 S클래스를 만든다는 뜬구름 같은 소문이 들려왔고, 한국의 '삼세판'을 들먹이며 꼬셨는지 또 한 번 미쓰비시와 손을 잡고 이에 맞서 후속 모델을 함께 개발했죠.
미쓰비시는 실패한 간판을 바꿔 달기 위해, 현대는 더 강렬한 이미지를 위해 각각 이름을 변경해 출시했고 일본에선 '프라우디아'로, 아시다시피 한국에서는 '에쿠스'라는 이름으로 판매됐어요. 원래라면 신형 그랜저나 다이너스티로 등장해야 했을 모델에 새로운 이름이 붙게 되면서 현대차에게는 쏘나타와 다이너스티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메울 새로운 고급차가 필요했고, 그렇게 등장한 모델이 바로 고급 중형차 '마르샤'였습니다.
다만 이 마르샤는 쏘나타를 고급스럽게 포장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아 이렇다 할 인기를 끌진 못했죠. 하지만 중형과 대형 사이 이 차급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던 현대는 심기일전에 마르샤의 후속으로 투입할 새 모델을 준비했고, 실패한 마르샤의 이름을 또 한 번 이어가느니 얼떨결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그랜저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결정, 이 프로젝트 'XG'에 붙이게 되면서 그랜저는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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