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국산 중형 하이브리드 세단 견적을 내다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쓸 만한 옵션 좀 넣으면 4천만 원을 우습게 돌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다 건너에서는 볼보 기술을 갈아 넣은 2천만 원대 하이브리드 세단이 판을 치고 있다. 지리자동차의 '프리페이스 L'이 그 주인공이다.

프리페이스 L의 뼈대는 볼보와 지리가 합작한 CMA 플랫폼이다. 볼보 XC40에 들어가는 바로 그 플랫폼이라 차체 강성이나 안전성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 중국산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보면 기본기 면에서 딱히 흠잡을 구석이 없다는 뜻이다.
더 기가 막힌 건 딜러십에 붙은 가격표다. 시작 가격이 한화로 고작 2,300만 원 수준이며, 넣을 수 있는 옵션을 다 때려 박아도 2,700만 원이면 뒤집어쓴다. 껍데기만 조금 바꾼 채 수백만 원씩 찻값을 올리는 국내 상황과는 비교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파워트레인 스펙을 보면 입이 더 벌어진다. 1.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에 전기 모터, 그리고 하이브리드 전용 3단 DHT 변속기를 기가 막히게 조합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5초 만에 끊어버리니 도로 위에서 답답할 일도 없다.
핵심은 주유소 갈 일을 잊게 만드는 미친 연비다. 복합연비가 23.7km/L 수준이라 50리터 연료탱크를 꽉 채우면 중간에 기름 넣을 일 없이 1,000km를 거뜬히 주파한다. 전기 모터가 시도 때도 없이 개입하는 막히는 도심에서는 기름 냄새만 맡고도 달리는 기분일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낡은 공식도 이 차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차체 길이는 4,825mm, 휠베이스는 2,800mm로 쏘나타나 K5와 나란히 세워도 꿀리지 않는 덩치를 자랑한다. 2열에 성인 남성이 타도 무릎 공간이 넉넉해 패밀리카로 쓰기에 차고 넘친다.
실내로 들어가면 한술 더 뜬다. 13.2인치 대화면에 퀄컴 스냅드래곤 8155 칩셋을 박아 넣어 버벅거림 없이 최신 스마트폰처럼 작동한다. 여기에 하만 인피니티 12-스피커와 레벨 2 자율주행 보조까지 싹 다 챙겼으니, 2천만 원대 세단 치고는 지나치게 사치스럽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자동차 시장의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국산 하이브리드 세단을 제값 주고 사려면 3천만 원 중후반대는 줘야 간신히 탈 만한 차가 나온다. 경쟁자 없는 독과점 시장의 달콤함에 취해 너무 쉽게 장사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당장 프리페이스 L을 국내 매장에서 살 수는 없다. 익숙한 인포테인먼트나 동네마다 널린 서비스 센터를 생각하면 여전히 국산차가 속 편한 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압도적인 가성비 모델이 버젓이 해외를 누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소비자들의 속을 쓰리게 만든다.

프리페이스 L의 등장은 단순한 신차 출시를 넘어선 일종의 묵직한 경고장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안방 시장에서 몸집만 키워온 제조사들이 언제까지 배짱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진짜 글로벌 위기가 닥치기 전에 소비자를 납득시킬 만한 합리적인 가격표를 꺼내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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