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스타리아가 국내 대형 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지금, 예상치 못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바로 중국 BYD의 전기 밴 ‘D1’과 폭스바겐의 차세대 전기 밴 ‘ID.버즈 카고’가 글로벌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상륙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12월 현재, 전기차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상용 전기 밴 시장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특히 유럽과 중국 시장에서는 이미 전기 밴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국내에서도 정부의 친환경차 보조금 정책과 기업들의 ESG 경영 강화로 전기 상용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폭스바겐 ID.버즈 카고, 유럽 시장 평정

폭스바겐의 ID.버즈 카고는 2025년 하반기 유럽 시장에서 출시된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2만 대 이상의 사전 계약을 달성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 차량은 클래식한 폭스바겐 버스의 디자인 DNA를 계승하면서도 최첨단 전기차 기술을 탑재해 “레트로 퓨처리즘”의 완벽한 조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D.버즈 카고의 가장 큰 강점은 압도적인 적재 공간이다. 최대 3.9m³의 화물 공간은 스타리아의 4,287L(약 4.3m³)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전기차 특유의 플랫 플로어 설계로 공간 활용성이 훨씬 뛰어나다. 여기에 82kWh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최대 425km를 주행할 수 있어, 도심 배송은 물론 중거리 물류까지 커버할 수 있다.
폭스바겐은 이 모델에 상용차에 어울리지 않는 혁신 기술들을 대거 투입했다. 차선 유지 보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 등 12가지 첨단 안전 사양이 기본으로 제공되며, 15인치 대형 터치스크린과 AR 헤드업 디스플레이까지 갖췄다. 특히 차량 내부에서 직접 화물 배송 경로를 최적화하고,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해 배터리 소모를 최소화하는 AI 기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물류 업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BYD D1, 가성비로 승부수
중국 전기차 대표 주자 BYD는 D1 모델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유럽 시장 기준 3만 5천 유로(약 5,200만 원)부터 시작하는 가격은 폭스바겐 ID.버즈 카고보다 40% 이상 저렴하면서도 기본 성능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D1은 BYD의 독자 기술인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해 안전성과 내구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60.48kWh 배터리로 1회 충전 시 최대 380km를 주행할 수 있으며, 급속 충전 시 30분 만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특히 BYD는 배터리 8년 또는 50만km 무상 보증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상용차 시장에서 내구성 우려를 완전히 잠재웠다.
BYD D1의 또 다른 강점은 운영 비용이다. 현대차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스타리아 디젤 모델의 연간 연료비가 약 350만 원인 반면, 전기 밴의 경우 전기 요금으로 환산 시 연간 100만 원 이하로 70% 이상 절감된다. 여기에 정부 보조금까지 받으면 초기 구매 가격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상용 전기차 구매 시 최대 1만 유로(약 1,5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어, D1의 실제 구매 가격은 2만 5천 유로(약 3,700만 원) 수준까지 내려간다.
스타리아, 대응 전략은?
현대차도 이러한 위기를 인식하고 전기 상용차 라인업 강화에 나섰다. 2025년 11월 현대차는 스타리아 기반 전기 밴 ‘e-스타리아’의 개발을 공식 발표했으며, 2026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e-스타리아는 77.4kWh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최대 400km 주행을 목표로 개발 중이며, 350kW 초고속 충전 시스템을 지원해 18분 만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술을 적용해 실내 공간을 극대화하고, V2L(Vehicle to Load) 기능으로 외부 전원 공급도 가능하게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대응이 다소 늦었다는 평가다. 이미 폭스바겐과 BYD는 시장 선점에 성공했으며, 특히 유럽 시장에서는 브랜드 인지도와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다. 한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전기 밴 시장은 선점 효과가 매우 큰 시장”이라며 “현대차가 기술력으로는 충분히 경쟁할 수 있지만, 가격과 출시 시기 면에서 이미 한 발 늦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변화하는 상용차 시장

전 세계 상용 전기차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전기 밴 판매량은 전년 대비 68% 증가한 85만 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30년에는 전체 밴 시장의 45%를 전기 밴이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환경 규제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들이 실제 운영 비용 절감 효과를 체감하면서 자발적으로 전기 밴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물류 기업 DHL은 2025년 말까지 유럽 지역 배송 차량의 80%를 전기차로 교체한다고 발표했으며, 아마존도 2030년까지 10만 대의 전기 배송 밴을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2026년부터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 내연기관 상용차의 운행을 제한하는 ‘저공해차 의무 운행 구역’을 지정할 예정이다. 이는 곧 물류·배송업체들이 필연적으로 전기 밴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 스타리아는 지난 4년간 국내 대형 밴 시장에서 평균 65%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지켜왔다. 하지만 전기 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지배력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폭스바겐과 BYD라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도 더욱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 밴 시장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향후 2~3년이 시장 판도를 결정짓는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타리아의 아성이 무너질지, 아니면 전기차 시대에도 왕좌를 지킬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