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차장이 부서 막내” “위로금 3억 줄테니 나가라”…늙어가는 대기업 특단 조치 꺼낸다 [방영덕의 디테일]
한 대기업 임원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입니다. 인사 시즌 직후에 바뀐 문구다보니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군가는 살려짐에 안도하는 동안 누군가는 한숨을 지을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늦어지는 승진에, 모셔야 할 간부가 또 한 명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사 적체가 심한 기업에서는 40대 차·부장들이 조직의 막내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50대가 조직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고요. 20대 팔팔한 신입 직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고령화 쇼크’. 인구 고령화가 기업의 인력 고령화로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내로라하는 대기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조직이 고령화될수록 변화에 대한 저항감은 크기 마련입니다. 혁신을 이루기가 쉽지 않죠. 국내 산업을 지탱하는 주요 기업들이 고령화 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 결과 40대 이상 직원은 늘고 ‘젊은 피’인 20대 직원은 눈에 띄게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에는 삼성전자에 20대 인력이 가장 많았습니다. 당시 19만명이 넘는 직원 중 29세 이하가 10만6162명(55.7%)으로 절반을 넘었습니다(그랬던 시절이 있다니!).
이어 30대가 6만1989명(32.5%)으로, 삼성전자 직원 10명 중 9명은 20∼30대였습니다. 40대 이상은 2만2313명으로 11.7%에 그쳤지요.
하지만 2015년을 정점으로 20대 직원 수는 ▲2017년 17만 1877명 ▲2019년 12만4442명 ▲2021년 8만8911명 ▲2023년 7만2525명으로 가파르게 줄었습니다.
덩달아 20대 직원 비중도 ▲2017년 53.6% ▲2019년 43.3% ▲2021년 33.7% ▲2023년 27.1%로 빠르게 낮아졌습니다.
20대 인력이 지속해서 감소하는 동안 30대와 40대 이상 직원은 증가했습니다.
2010년에 2만명대에 그쳤던 40대 이상 직원은 ▲2018년 5만2839명 ▲2020년 6만1878명 ▲2022년 7만5552명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40대 이상이 8만1461명이 되면서 처음으로 20대 이하 직원 수를 앞지르기까지 했습니다.
인력의 고령화는 직급별 인력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2017년까지는 일반 직원이 80%대였고 임원을 포함한 간부급은 10%대에 머물렀습니다만, 2021년부터 간부급 비중이 30%를 넘어서더니 지난해 간부급이 35%, 일반 직원은 65%로 집계됐습니다. 직원 3명 중 1명꼴로 간부급 직원인 셈입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순위 500대 기업 중 최근 3년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출한 123개사의 임직원 현황을 분석해봤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해당 기업군의 전체 임직원 141만7401명 중 20대 이하 직원은 30만6731명으로 2021년에 비해 1만5844명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전체 임직원 수는 3만8000명 늘었는데 20대 이하 직원만 급감한 겁니다.
그러다보니 50세 이상의 비중은 22%를 차지한 반면 20대 비중은 21.6%로, 50대 이상의 비중이 20대 직원 비중을 역전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기존에 20대 직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IT·전기전자 업종과 유통·통신 등 서비스 업종에서 20대 이하 직원이 감소하고, 50대 이상은 증가하는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IT·전기전자 업종의 20대 이하 직원 비율은 2021년 34.2%에서 지난해 28.9%로 하락한 반면, 50세 이상은 16.6%에서 19.8%로 늘었습니다.
이차전지 업종에서도 20대 이하 직원이 2021년 40.0%에서 지난해 34.2%로 5.8%포인트 감소한 것과 달리 50대 이상 비율은 6%에서 7%로 증가했습니다.
유통업의 경우 30대 미만 비율이 2021년 15.1%에서 지난해 12.5%로 줄었고, 같은 기간 통신업에서는 50세 이상 비율이 8.2%에서 11%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리더스인덱스 조사 결과 국내 500대 기업의 2023년 신규 채용 인원은 16만5961명이었습니다. 2022년(21만717명)보다 21.2% 줄어든 규모입니다.
조사 대상 기업의 63%인 81곳은 지난해 신규 채용을 줄인 반면, 늘린 곳은 37%인 43곳에 그쳤습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경기 불황과 IT인프라 고도화 등으로 신규 채용 규모는 매년 감소세”라며 “대신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40대 이상 고연차 직원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고연차 직원들 사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자’란 분위기를 간과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와 달리 50대 직원들은 여전히 각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자녀들의 경제적 독립이 늦어지는 등의 이유에섭니다.
회사 안이 정글이라면 회사 밖은 그야말로 전쟁통입니다. 100세 시대니, 인생 3모작 시대니, 늘어난 기대수명 속 따박따박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하는 것이죠.
리더스인덱스 조사 기업 중 퇴직 인원을 공개한 88곳의 지난해 퇴직률은 6.3%에 불과했는데요. 이는 2022년(7.8%)보다 1.5%포인트 낮아진 수치입니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2010년 전 세계 직원에게 지급한 인건비는 13조5000억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인건비는 38조원으로 13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매출 대비 인건비 지출 비율을 따져봤을 때 2010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14.7%)였죠.
가뜩이나 저조한 실적 때문에 비상경영이 한창인 기업들로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연말까지 해외 계열사를 중심으로 최대 30% 인력 감축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인건비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입니다. SK온의 경우 2021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을 실기하기로 했습니다.
유통업계에서도 조직 슬림화를 통한 비용 효율화 작업이 한창입니다. 지난 3월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첫 희망퇴직을 실시했고요. 같은 그룹 내 G마켓 역시 오는 11일까지 사상 첫 희망퇴직을 받습니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이미 전사 인력 구조조정을 비롯해 임원들의 급여를 20% 삭감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습니다.
구조조정이 쉽지 만은 않습니다. 회사에서 버티려고 하는 직원들을 강제적으로 내보낼수 없다보니, 파격적인 퇴직 위로금을 내건 기업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이 대표적입니다.
이 회사는 최근 만 50세 이상 직원들 중 퇴직을 할 경우 기본 퇴직금 외에 1인당 최대 3억원의 위로금을 주기로 하면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SK텔레콤의 자체 퇴직 프로그램인 ‘넥스트 커리어’ 일환인데요. 만 50세 이상부터 참여할 수 있는 퇴직 프로그램 희망자가 예상보다 많지 않자 SK텔레콤은 기존에 주던 5000만원 퇴직위로금을 최대 3억원으로 인상하기로 노사가 합의를 했지요.
재계 관계자는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서든데스(돌연사)’ 경고가 기업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며 “빠르고 확실히 변화하기 위해 일단 인건비 부담을 덜고자 하는 기업들이 하반기 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한 곳에 더 머무르려는 직원들과 한 곳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기업들 사이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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