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피즘에 맞서려면 남북관계 '평화'부터

[이해영의 이성과 우상]

어느때보다 강해진 대미의존도

그렇다면 이제 시선을 우리 안으로 돌려보자. 한국 대외경제의 구조와 경향에 관한 얘기다.

한국의 2024년 경상수지흑자는 990억 달러다. 특히 2021년 이후 수출이 견조한 흑자기조를 견인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꽤 흥미로운 뚜렷한 경향성이 관찰되고 있다.

지난 20년 이상의 추이를 살피건대 한국 성장동력의 원천이었던 대중국 흑자기조가 2021년 이후 적자로 전환되고, 같은 기간 대미 흑자가 수출증가세를 견인하고 있다. 마찬가지 대 동남아 흑자도 2021년 이후 감소추세이고, 대 EU, 일본역시 큰 변화가 없는 데도 말입니다. 이는 같은기간 대미 상품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즉 저 유명한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해체되고, ‘안미경미(安美經美, 안보는 미국, 경제도 미국)‘현상이 안착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기간 한국의 서비스수지는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한국의 해외 직접투자와 증권투자 역시 대중국, 대동남아는 감소하고 있음에도 오로지 대미 직접투자와 증권투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미 증권투자도 많이 늘었다

또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같은 기간 한국의 경상수지에서 이른바 ’본원소득수지‘ 즉 해외투자로 인한 투자소득이 미국과 동남아를 상대로 증가하는데, 특히 대미 투자수지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는 거의 대부분이 미국에 집중되어 있고, 같은 기간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외국인의 대한국 투자보다 3배가량 더 많다. 쉽게 말해 그만큼 국내자금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의미다.

이를 10년 전인 2015년과 2024년의 경상수지 내역을 분석해 보자면, 현재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를 주도하는 상품수지는 10년 전과 비교해 오히려 -17% 감소했고, 서비스수지 적자는 -62% 확대됐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경상수지흑자는 오히려 -5.8% 감소한 것이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경향은 위에서 말한 본원소득, 즉 투자소득이 같은 기간 44.5억 달러에서 266억 달러로 498% 증가한 점이다. 국가별 경상수지를 볼 때, 대중국은 464억달러에서 -293억달러로 적자전환된 반면, 대미는 334억달러에서 878억달러로 162% 증가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2020년대 이후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기조는 압도적으로 대미 수출, 그것도 상품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그 상품수출은 반도체와 자동차등 2개 품목에 거의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 투자(직접, 증권) 모두 미국에 역시 집중되어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트럼피즘에 취약한 한국이 벗어날 길은

트럼프의 통상안보 연계 전략은 바로 이 시기에 출현했다. 즉 현시점 한국경제의 대미의존이 가장 심화되어 있을 때 트럼프의 통상안보 연계전략이 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 만큼 한국경제가 트럼피즘에 고도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분석과 해석에 근거해서 ’통상-안보‘ 연계 혹은 융합 전략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에 대해 논의해 보자.

①관세는 트럼프 전략의 1단계일 뿐이라는 점은 앞의 글에서 충분히 강조했다. 1단계에서 한국은 벌써 러시아산보다 최대 7배 비싼 미국의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을 늘리겠다, 그리고 관세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미국내 현지생산을 늘리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트럼피즘은 적어도 한국에 관한한 ‘성공적인’ 출발을 한 셈이 된다. 트럼프로선 ‘싸우지도 않고 이긴’ 것이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발을 빼겠다고 하니, EU로선 말로는 ‘30일 휴전’을 외치지만 실상은 ‘속전’ 즉 전쟁의 계속을 말한다. EU의 나토 회원국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유럽 ‘재무장’이다. 트럼프 캠프에선 미 대선 훨씬 이전부터 구상해온 개념이 앞에서 말한 ‘나토휴면화’, 혹은 달리 말해 유럽안보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트럼프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레버리지로 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 가는 중이다. EU의 방위비 증액은 트럼피즘의 핵심 목표중 하나이니 말이다. 또 이를 위해 EU로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종전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 이제 트럼프 정부는 기존 봉신국(vassal states)에 대한 ’동맹궁핍화‘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더욱 극대화하고자 할 것이다. 수평적이지 않은 동맹은 언제나 약자에게 불리할 뿐이다.

남북 2국가 적대적 구조를 평화구조로 바꿔야

②한국은 트럼프의 ’통상-안보‘ 믹스전략에 매우 취약하다. 이는 주로 남북관계 때문인데,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대될수록 한국이 지불해야할 안보비용은 높아진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최우선 전략과제는 안보비용 즉 미국이 요구할 ‘보호세’를 낮추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통상-안보 믹스를 상쇄하기 위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는 반면,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의 안보리스크를 적정수준 이상으로 관리해야 그 리스크의 시장가격이 올라간다. 상호 길항관계인 것이다. 우리로선 남북관계를 2 ‘국가간’ 평화공존으로 가져가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선택옵션이다. 이를 통해 2국가간 ’적대성의 구조‘를 적어도 해소하거나 궁극적으로 해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여기저기 들려오는 북미간 라프로슈망(rapprochement, 화해접근)에 우리도 편승할 수 있어야 한다.

③남북관계가 ’통상-안보‘ 믹스전략에 첫 번째 구조적 취약성이라고 한다면, 최근 무역과 투자의 대미의존도 급상승은 두 번째 구조적 취약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대미흑자기조는 미국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트럼프정부의 관세 카드만으로 우리는 이미 심리적 공황상태다. 협상공학으로 보더라도 이미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다. 차기정부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응방안이 나올 때까지는, 어쩌면 노딜(no deal)이 배드딜(bad deal)보다 나을지 모른다.

미국이 전수입품에 10~20% 보편관세 부과시 대미 수출이 최대 약 450억 달러 감소한다는 전망치가 나와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자동차, 반도체 등 소수 주력상품의 대미 상품수지에 의해 견인되고 있기 때문에 그 피해는 아주 직접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역시 관세만을 바라봐서는 안된다. 마찬가지 ’지정치경제적‘인 복합적 대응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

대중· 대러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한다

먼저, 남북관계의 선제적 ’정상화‘ 이니셔티브를 통한 지정적학 리스크의 하향관리에 나서야 한다. 둘째, 무역다변화가 시급하다. 20년 가까이 한국경제 성장의 수원지역할을 해온 중국에 대해 한국은 이제 적자국이다. 그리고 반이성적인 혐중(Sinophobia 嫌中)에 여론이 휘돌리고 있다. 참으로 백해무익한 흐름이다. 신속히 대중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셋째, 향후에 있을 미-러 관계 정상화의 열린 공간을 타고 대러 관계를 신속히 복원함으로써 석유 및 천연가스등 에너지수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 한러 관계 복원에 관해 러시아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 집권을 염두에 두고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일본의 ‘더블바인드(double bind)’ 즉 양다리외교에 주목해야 한다.

넷째, 트럼프 등장이후 ’동맹‘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동맹이 이익의 관점에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혈맹 등 지금 한국의 동맹개념은 조선조의 봉건적 ’재조지은‘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 ‘감상주의적’ 동맹론은 우리 국익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미국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한미동맹 개념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도 다극질서에 걸맞게 동맹개념을 긴급히 재해석해야 한다. 이는 트럼프의 ’중국주적론‘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산 무기 수입 역시 협상자원화해야 한다.

지도부의 역량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장기적 국가전략을 담대하게 밀고 나갈 그런 한국의 국가 지도부와 훈련된 인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이 자원들은 지정학적, 지경학적 전략옵션을 새롭게 융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새로운 세계질서의 눈높이에 맞는 현실감각과 ’뱃심’을 갖추어야 한다.


※ 이해영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 마부룩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이후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신대 부총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1세기한국정치학회 이사, 국제지역학회 부회장을 지냈고, 현재 (사)한국안보통상학회 회장, 시민단체인 <국가國歌만들기시민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서양 정치사상과 국제 정치경제 전공자로서 마키아벨리, 그람시, 슈미트, 하버마스 등의 사상을 강의하며, 국제통상, 한미 관계도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오리엔탈리즘과 지정학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그람시와 하버마스: 시민사회, 생활세계 그리고 정치』(독문)를 썼다.

지은 책으로 『임정, 거절당한 정부』 『안익태 케이스』, 『낯선 식민지, 한미 FTA』,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독일통합 10년의 정치경제학』,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등이 있으며 『한미 FTA, 하나의 협정 엇갈린 ‘진실’』 『1980년대 혁명의 시대』 등에 공저자 및 편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