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국제테니스명예의전당(International Tennis Hall of Fame) 헌액 소식은 솔직히 말해 “뉴스”라기보다 일종의 확인 절차에 가깝다. 너무나 당연해서, 혹시라도 누락됐다면 그 자체가 사건이 됐을 법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2022년 은퇴, 5년 경과라는 형식적인 조건이 충족되자마자 후보 첫 해에 바로 통과, 2026년 8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에서 헌액식을 치른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페더러 정도면 이 정도 예우는 받아야지’라는 공감대가 전 세계 테니스 팬 사이에 이미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테니스명예의전당 선수 부문 헌액 조건은 엄격하다. 최소 은퇴 후 5년, 그리고 투표인단 75%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실제 득표율은 공개되지 않지만, 페더러라면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거의 이견 없이 받아들여진다. 남자 단식 최초의 메이저 20회 우승, 4대 메이저를 모두 제패한 커리어 그랜드슬램, 통산 103개 투어 단식 타이틀, 310주 세계 랭킹 1위(그중 237주는 ‘연속 1위’)라는 숫자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수식어이지만, 이번 헌액 소식을 들으며 다시 떠올려도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페더러의 행보가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남긴 숫자와 그 숫자를 대하는 본인의 태도 사이의 간극이다. “메이저를 그렇게 많이 우승하리라고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목표는 한 번이라도 메이저에서 우승해 보는 것이었다”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라 진심에 가까워 보인다.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록을 위해 경기한 것이 아니라, 테니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코트에서 뛰었다”고 강조한 대목은, 통계표만 보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페더러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준다. 그는 결국 “기록의 선수”이면서 동시에 “스타일의 선수”였다.

2003년 윔블던 첫 우승은 ‘포스트 샘프러스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피트 샘프라스가 떠난 뒤 잠시 공백처럼 보이던 남자 단식 무대는 페더러가 등장한 순간 완전히 새 얼굴을 얻었다. 잔디코트에서의 이질적인 여유, 베이스라인에서의 유려한 포핸드, 한 손 백핸드로 그려내는 슬라이스와 탑스핀, 서브앤발리와 라이징 볼을 섞어 쓰는 경기 운영. 요즘 테니스에서는 보기 드문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정석을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구현한 선수가 바로 페더러였다. 기록으로만 보면 뒤늦게 그를 추월한 노바크 조코비치, 클레이코트에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보인 라파엘 나달이 ‘역대 최고’ 논쟁에서 더 많이 거론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의 머릿속에서 ‘테니스 황제’라는 호칭은 여전히 페더러의 몫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잘 친 선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아름답게 친 선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페더러의 커리어는 숫자만 늘어놓아도 하나의 연대기가 된다. 윔블던 8회, 호주오픈 6회, US오픈 5회, 프랑스오픈 1회. 이 네 줄의 문장 안에는 잔디를 지배하던 젊은 시절, 하드코트에서 전성기를 이어가던 중후반, 클레이코트 ‘황제’ 나달을 뚫고 마침내 롤랑가로스 트로피를 들어 올리던 2009년의 봄이 다 들어 있다. 2004년 2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이어진 237주 연속 세계 1위, 그리고 통산 310주 세계 1위 기록은 투어 일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무게를 실감할 수밖에 없는 경이적인 숫자다. 시즌 내내 코트를 옮겨 다니며 서로 다른 표면과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ATP 투어에서, 4년 반 넘는 시간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는 것은 ‘지배’라는 말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페더러를 이야기할 때, 단지 “조코비치와 나달에게 메이저 우승 수에서 밀린 3위”라고 요약해버리는 건 그 자체로 무례에 가깝다. 그가 여전히 ‘명예의 전당 헌액’이라는 뉴스에서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이유는, 기록을 넘어선 상징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윔블던 센터코트에서 전통적인 흰색 의상을 가장 잘 소화한 선수였고, 롤랑가로스의 붉은 클레이 위에서도 몸짓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선수였다. 코트 안에서 보여준 스포츠맨십, 상대의 명장면에도 미소를 띠며 박수를 보내던 태도, 심판과의 언쟁에서도 선을 넘지 않는 언어.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페더러다움’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재미있는 건, 본인 스스로는 이런 이미지를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그는 늘 “완벽해 보이는 순간에도 속으로는 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2017년 호주오픈에서 부상 복귀 후 나달을 꺾고 우승했을 때, 시상식에서 눈물을 쏟아낸 장면은 ‘황제’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졌던 인간적인 면을 엔딩크레딧처럼 보여줬다. 그가 명예의 전당 헌액 소감에서 “테니스의 역사와 선배들이 남긴 모범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왔다. 그 흐름 속에서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록보다 관계, 숫자보다 스포츠 전체의 역사 속에서 자기 위치를 바라보는 태도는, 은퇴 이후 그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 메달도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복식 금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단식 은메달은 그가 ‘투어의 황제’를 넘어 국가대표로서도 책임을 다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08년 복식 금메달은 스탄 바브린카와 함께 만들어낸 스위스 테니스의 역사적인 장면으로, 베이징의 폭염 속에서도 페더러가 보여준 파이팅과 환호는 단식에서 보여주던 절제된 감정과는 또 다른 결을 담고 있었다. “메이저 하나만 우승해도 꿈이겠다”고 말하던 소년이, 메이저 20회 우승, 올림픽 금·은메달, 데이비스컵 우승, 그리고 명예의 전당 헌액까지 모두 경험한 뒤에도 “결국 테니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코트에 있었다”고 말하는 모습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이번 명예의 전당 헌액이 갖는 의미는 조금 더 넓게 보아야 한다. 조코비치와 나달이 여전히 ‘GOAT(역대 최고 선수)’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지금, 페더러의 이름은 다소 뒤로 물러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은 단순한 기록 순위를 매기는 박물관이 아니다. 시대를 정의한 선수, 한 종목의 문화를 바꾼 선수, 팬과 동료의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선수를 기리는 공간이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페더러만큼 명예의 전당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이름도 드물다. 잔디 위의 슬라이스 한 방, 베이스라인에서 안쪽으로 파고들어오는 인사이드 아웃 포핸드, 중요한 타이브레이크에서 날카롭게 꽂히던 와이드 서브. 이 모든 장면이 ‘테니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페더러는 단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인물이 아니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로저 페더러 재단을 통해 교육, 스포츠 지원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브랜드와의 협업, 이벤트 매치, 테니스 관련 행사 참여 등을 통해 여전히 이 종목의 얼굴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해 차세대 육성 캠페인과 클리닉을 진행한 것 역시, ‘은퇴한 레전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아이콘’으로서 페더러의 위상을 재확인시켜준 장면이었다.
결국 국제테니스명예의전당이 이번에 확정한 것은, 숫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한 선수의 존재감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다. 윔블던 센터코트, 롤랑가로스 필립 샤트리에는 물론이고 전 세계 수많은 코트에서, 누구보다 우아하게, 누구보다 치열하게 라켓을 휘둘렀던 한 사람이 이제 ‘역사’라는 이름의 전당에 정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팬들에게는 이렇게 정리될 것이다. “메이저 최다 우승자는 조코비치가 맞을지 모르지만, 테니스의 얼굴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대답은 페더러다.” 이 헌액은, 그 직관적인 답을 제도적으로 확인해 준 절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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