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변화하는 공간 요리사

건축가는 건축주를 만나고 하나의 집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작업들을 해왔을까? 잘 알려지지 않은, 건축주가 들여다보기 어려웠던 건축가의 내면을 KDDH 건축사사무소 김동희 소장과 함께 솔직하게 들어봤다.

INTRO ESSAY
“2012년, 내 나이 31살 때 어머니가 건축주인 다가구주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러 채의 집을 설계하였다. 그 다가구 주택에는 복층형 투룸으로 된 나의 신혼집도 있었다. 첫 프로젝트에 내가 거주 할 공간이 있는 집이었다. 너무 젊었고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치열했고, 열심이었다. 첫 프로젝트 이후 14년이 지난 지금도 내 집을 짓는 일인 듯 최선을 다하고 영혼을 갈아 넣고 매 순간 심사숙고 한다. 건축가가 클라이언트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고 주택을 설계하는 것은 ‘받은 만큼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내 집을 설계할 때의 마음과 치열함이 덤으로 담겨 있다. 덤이라는 것은 믿고 맡겨 준 클라이언트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건축설계 혹은 주택설계는 마치 내 집을 짓는 것과 같으며 선물과 같다.”
김동희 : 스마트건축사사무소 김건철 소장을 소개하자면 저는 ‘멋있지 않은 사람. 그러면서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건축 외적으로 드러나는 활동이 많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발표하는 작품은 늘 신선하고 존재감이 강하지요. 한편으로는 김건철 소장을 그를 ‘공간 요리사’라고 부르고 싶어요.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분주히 요리하고, 그 결과물인 요리를 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요리사 같은 느낌이거든요. 김 소장이 그리는 집도 건축이라는 재료로 맛(기능)부터 데코레이션(디자인)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낸 파인다이닝 요리 같고요. 눈으로도 직관적으로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맛을 보면 더 감동하는 작품들이지요.
김건철 : 잘 불러주지 않아서 나가지 않았을 뿐입니다(웃음). 농담이고, 사실 기록으로 내 생각이 남겨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사람 생각은 늘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옳지 않아도 미래에는 옳을 수도 있고, 과거에 내가 한 말에 구속되어 변화에 주저하게 되는 것도 경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문장의 형태로 가둬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동희 :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해볼까요? 요즘 건축 경기만큼 주택설계 시장도 쉽지 않다고 하지요.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김건철 : 제가 서 있는 위치가 애매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건축주들은 대부분 대출을 받아야 집을 지을 수 있는 분들이에요. 단독주택도 그렇고, 상가주택도 그렇고요. 한편으로는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엄청 저렴한 집을 짓고 싶은 분들은 아니에요. 자기 자본금에 대출이라는 플러스 알파가 꼭 필요한 분들인데, 요즘은 금융·부동산 환경이 어려우니까요.
김동희 : 그래도 김 소장님 정도면 여러 수상 실적을 비롯해 ‘인정받는’편 아니었나요?
김건철 : 건축계에서 그렇게 인정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감사하게도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상도 받았는데, 건축주분들은 그것을 오히려 진입 장벽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 소개된 건축가인데 설계비가 비싸지 않을까?’, ‘너무 바빠서 우리 집을 제대로 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같은 식으로요.
김동희 : 건축주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김건철 : 부끄럽지만, 예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건축주들이 찾아오는 시기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마케팅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어요. 요즘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2018년쯤부터 작업했던 완공 작품을 모아서 기록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정식 출간까지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작업을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전은 아니고요. 가장 최근 프로젝트까지 작품집에 담고 싶어서 조금 기다린 것도 있습니다.
김동희 : 건축가로서 건축주와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김건철 : 먼저 이야기를 충분히 듣습니다. 설계 의뢰를 받으면 제일 먼저 집을 지을 땅을 반드시 건축주와 함께 가봅니다. 건축주가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집이 지어질 땅은 어떤지 듣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바로 작업하는 대신,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작업 전 생각하는 시간’을 최대한 주려고 노력합니다. 여러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로 귀결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 생각의 시간이 저는 가장 즐겁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통상적으로 6~7개월 내에는 마무리가 되는 편입니다.
김동희 : 2024년 건축가 특강 때 ‘건축의 디테일을 확보하기 위해서 예전에는 여기저기 발로 뛰며 찾아보고 따져보는 작업을 했지만,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아 이제는 도면을 풍부하게 그리고자 한다’라고 하셨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김건철 :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변함은 없습니다. 다만, 조금 다른 대답을 하자면, 작년까지의 화두는 ‘만듦새’였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제 안에서는 어느 정도 무엇을 하더라도 남들에게 욕먹지 않을 만듦새는 확보했다고 생각합니다. 만듦새는 여기에서 점차 더 디벨롭하면 됩니다. 새 화두는 확보된 만듦새 위에 쌓을 ‘쓰임새’입니다. ‘이 건물이 어떻게 기능적으로 더 잘 쓰이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우리가 주택을 설계할 때 다 짓고 나서 건축주가 ‘어떤 부분이 아쉽다’라고 얘기를 하곤 하잖아요. 혹은 우리가 당연히 챙겨야 했는데 놓치는 부분이 생겨 쓰임이 불편해지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더 철저하게 쓰임새에 대해서, 프로그램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 스터디를 더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만듦새와 쓰임새’이 두 가지가 채워지면 더 많은 아이디어로 더 좋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동희 : 디자인 얘기를 해볼까요? 지금까지 프로젝트들을 보면 직선의 요소가 많이 녹아있지 않나 싶습니다. 굳이 직선적 요소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었을까요? 프로젝트들이 모던하게 보이는 데에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김건철 : 저는 ‘모던하다’라는 것에 특별히 더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에요. 조금 방향이 다른 대답이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건축주가 요구하는 것을 거의 100% 수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이외의 건축적 요소는 제가 건축주에게 드리는 선물 같은 것입니다. 그게 당장 발견되는 것이든, 살아보다 발견되는 그림자나 빛이나 바람이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제가 의도했다면 제가 드리는 선물이고, 의도하지 않은 것은 건축주가 스스로 찾은 선물인 것이지요. 직선이나 모던함은 그 과정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동희 : 소장님 프로젝트에는 유독 ‘풍경’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띕니다. 김건철 소장의 건축 철학, 또는 디자인 언어를 이루는 ‘풍경’은 무엇인가요?
김건철 : 다른 분들이 떠올리는 풍경과 제가 생각하는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인터뷰하는 이 장소의 벽도 제게는 풍경이고, 여기에서 레이어가 겹치는 것들도 저한테는 다 풍경으로 느껴져요. 제가 있어 풍경은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제 사고에서 도출된 결과
물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쉽게 말하면 ‘답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로 줄일 수 있겠네요. 시선을 통해 우리는 계속 공간을 체험하잖아요. 체험이 있어 장소라는 게 구분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단순한 벽을 보는 게 고통처럼 느껴집니다. 이쁘게 보이려고 꾸며놓은 막힌 벽을 보는 게 괴롭습니다. 오히려 개구부를 통해 들어오는 풍경 혹은 빛이 저한테는 더 중요합니다. 제가 ‘정성’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결과물들이 풍경이라는 단어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김동희 : 지금의 김건철 소장을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요?
김건철 : 특정하는 건 어렵습니다. 제가 살아온 모든 순간, 겪어온 모든 경험이 제 설계의 근간입니다. 한편, 제가 설계한 예전 프로젝트를 보면 민망하고 ‘왜 저렇게 했을까’ 생각하곤 해요. 그런데 그것들이 다 제 경험이잖아요. 그것들을 보며 다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는 것이 계속 쌓인 것이죠. 그 위에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고요. 어떻게 보면 제 모든 프로젝트는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습작’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김동희 : 무척 솔직하고 과감한 말이네요.
김건철 : 물론, 그 습작을 허투루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 만든 결과물을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만날 분께 더 잘한다, 또 다음에 만날 분께 더 잘한다. 하는 생각으로 집 하나하나를 그립니다.
김동희 : 모든 건축가는 자신만의 칼로 건축이라는 요리를 할텐데, 김건철 소장의 칼은 무엇일까요?
김건철 : 저는 설계할 때 부 속시설과 주요시설의 구 분을 명확하게 합니다. 공간적으로 꼭 분리하기보다 치수적으로 명확하게 해요. 부속시설처럼 필요는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딱 쓸 수만 있을 정도로 타이트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주방이나 거실, 주방, 메인 침실처럼 중요한 시설은 역으로 넓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외부와 더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고요. 이게 시각적으로도 더 넓게 보이는 장점도 있습니다.
김동희 : 김건철 소장, 스마트건축사사무소를 찾아오는 예비 건축주들에게, 무엇을 준비해 오면 좋을지 소개한다면?
김건철 : 공격적으로 말하자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비전문가가 노력해서 알아낸 정보들이 요즘처럼 거짓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어요. 저는 아예 모르고 오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건축주는 아무것도 몰라도 돼’가 아닙니다. 설계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함께 디벨롭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전문가와 함께 공부하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 인터뷰어_ 김동희
구성_ 신기영 | 사진_ 변종석, 건축가 제공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6년 2월호 / Vol. 324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