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황금기 6년 남아…마음속 책 3권 쓰는 일 몰두할것"
노벨賞 받은후 첫번째 행보
"지난 한주 특별한 감동으로
삶의 고요 달라지지 않을 것"
국내 취재진 몰려 인산인해
NHK 등 해외언론 관심폭발
"노벨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에는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 그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려고만 했다.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다.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의 호명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한 한강 작가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책 속에서 독자를 만나고 싶다"며 "수상 이후 제 개인적 삶의 고요에 대해 걱정해주신 분들도 있었는데, 세심히 살펴주신 마음들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는 소식에 이날 포니정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국내 언론사 기자 수백 명을 비롯해 일본 NHK 등 해외 언론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취재진과 마주치지 않고 포니정홀과 연결된 내실을 통해 입장했다. 검은 재킷에 검은 바지, 새치가 다소 늘어나 수수한 모습으로 등장해 동(銅)으로 양각된 포니정 혁신상 트로피를 가슴에 품었다.
한강 작가는 "담담한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이다.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크다"며 입을 뗐다.
1970년 11월생으로 현재 만 53세인 한강 작가는 "한 달 뒤 54세가 된다. 작가들의 황금기가 50~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며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3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3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말이다"라고 말해 청중의 잔잔한 웃음을 자아냈다.
한강 작가는 1994년 1월 소설 '붉은 닻'으로 소설의 첫발을 뗐다. 그는 "올해는 글을 써온 지 30년이 되는 해"라며 "그 시간은, 나름 성실히 살아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30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고도 강조해 그간 느꼈던 '글쓰기의 고통'을 내비쳤다.
이어 "30년간 책들과 연결돼주신 소중한 문학 독자들께, 어려움 속에서 문학 출판을 이어가고 계시는 출판계 종사자와 서점인들께, 동료와 선후배 작가들께 감사를 전한다"면서 "저를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이날 한강 작가가 수상한 포니정 혁신상은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피아니스트 조성진, 황동혁 영화감독, 박항서 축구감독, 김하종 안나의 집 대표 등이 수상한 최고 권위의 상으로, 현대자동차 설립자인 고(故) 정세영 HDC그룹(옛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애칭인 '포니 정(PONY 鄭)'에서 이름을 따 2006년 제정된 상이다. 일생을 걸고 몸담은 분야의 지평(地平)을 확장해 '인류의 가치'를 실현한 인물을 매해 1인 선정해 수여되며, 상금은 2억원이다. 매일경제신문은 HDC그룹과 함께 포니정 혁신상을 주관해왔다.
정몽규 포니정재단 이사장은 "언어와 소재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매번 새로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감정의 진폭을 불러일으키는 한강 작가의 문학적 혁신과 도전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손현덕 매일경제신문 대표는 "한강 작가의 글쓰기의 출발은 '인간에 대한 질문'인 것 같다"며 "한자 '질(質)'을 보면 참 묘한데, 두 자루 도끼(斤)로 조개(貝)를 깨는 거다. 이 조개는, 인간이 꼭꼭 감추고 싶어하는 내면세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내면을 얼마나 깨기 힘들면 도끼가 두 자루가 있겠나. 그걸 깨려면 고통이 수반되지만, 작가는 30년간 고통 속에서 그 질문을 던진 것"이라며 상찬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축사를 맡은 강지희 문학평론가(한신대 교수)는 "한강의 소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과 고통과 어둠의 시간을 천천히 건너가는데, 그 후에 서서히 번져 오는 맑은 빛이 늘 자리해 있다"고 한강 작가의 소설을 재정의하며 "슬픔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잔잔하게 스며 있는 가볍고 부드러운 것임을 한강 작가는 늘 속삭여왔다"고 말했다.
[김유태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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