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칸영화제 수상작들은 국내에서 소규모로 개봉한 해외 예술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놀라운 흥행 성과를 거두는 중이다. 과연 이 작품들의 무엇이 영화 팬들을 사로잡고 있을까? 작년 <괴물>부터 지금 <퍼펙트 데이즈>까지, 소위 야구 용어로 쉬어 갈 틈 없는 라인업을 자랑하는 칸영화제 수상작들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괴물 – 76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괴물>의 흥행 예감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영화제에서 표구하기 가장 널널한 야외상영관 상영임에도 전석이 매진될 만큼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일본의 대표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은 어른들은 몰랐던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밀도 있는 시선으로 보여준다.
서사 구조는 흡사 <라쇼몽>을 보는 느낌이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인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 아이들의 담임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그리고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인 두 아이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하나타)까지, 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의 시선으로 자신만의 진실을 펼쳐내는데, 때때로 놀라움과 반전을 동시에 선사한다.
영화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고민할 문제를 계속해서 던진다. 교권 추락, 학교 폭력, 아동 학대까지, 한국에서도 일어나는 사회문제를 의미 있게 돌아볼 수 있다. “과연 누가 괴물인가”라는 제목의 물음처럼, 사회문제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영화의 온도가 엔딩의 여운을 배가한다. 영화의 촘촘한 밀도와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질문에 칸은 각본상을 건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작년 11월 29일에 개봉해 해를 건너 올해 초에도 잔잔한 흥행 바람을 일으킨 <괴물>은 현재까지 5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브로커>를 제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국내 최고 흥행 기록이다. <괴물>의 이 같은 반응이 향후 개봉한 칸영화제 수상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추락의 해부 – 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2023년 칸의 선택 <추락의 해부>가 올해 1월 국내에서 드디어 선을 보였다. 개봉 전부터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주요 부문 수상과 노미네이트를 거치며 영화팬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던 이 작품. 국내에서도 해외 예술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다.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추락사를 둘러싼 아내와 아들의 목격담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남편의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건넨다. 과연 이것이 사고사일까 사건일까? 사건이라면 자살일까? 살해당한 것일까? 남편의 죽음 전부터 잦은 불화를 겪었던 아내가 유력한 용의자가 되면서 이야기는 고조되고, 어린 시절 사고로 앞이 보이지 않는 아들만이 엄마의 무죄 유무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로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
<추락의 해부>는 제목 그대로 사건의 실체를 꼼꼼하고 리얼하게 들여다본다. 사실 영화 자체의 소재는 그리 새롭지 않다. 의문사를 둘러싼 여러 인물과 갈등,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 등 동종 장르 영화의 비슷한 패턴을 따라간다. 하지만 작품의 구성력만큼은 급이 다르다. 흡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와 긴장감 넘치는 법정 공방들은 왜 칸이 이 작품에 큰 박수를 보냈는지 알 수 있다. 그와 동시에 하나의 사건으로 와해되고, 회복하는 가족들을 통해 이 영화가 그토록 해부하고 싶었던 것은 ‘사건’이 아닌 ‘사람’이었음을 되짚어보게 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 7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작년 칸영화제에서 충격과 공포를 자아냈던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지난 6월 5일 개봉했다. 칸의 2등상 격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독일군 장교 루돌프 회스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다. 영화는 회스 가족의 대화와 식사, 기타 여러 모습들을 평화롭게 담아낸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것이 없다. 문제는 이들 가족의 행복이 공유되는 곳이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이라는 것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개봉 전부터 사운드가 매우 중요한 영화라고 입소문이 자자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회스 가족의 평화로운 하루와 대비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비명, 총 소리 등이 계속해서 보는 이를 자극하며, 상상의 공포를 배가한다. 여기에 회스 가족의 일상을 관찰 카메라로 담은 듯한 연출도 인상적이다. 이 연출은 그들이 이렇게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담장 밖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학살당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영화는 악은 의외로 평범한 표정을 짓는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보는 이의 죄책감을 계속해서 건드린다. <언더 더 스킨> 이후 10년 만에 연출한 조나단 글레이저의 야심과 진심을 동시에 보여준 <존 오브 인터레스트>. 지난 6월 5일 개봉 이후 현재 20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작은 영화의 힘을 매섭게 보여주는 중이다.
퍼펙트 데이즈 – 76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야쿠쇼 코지) 수상

이 영화를 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조금은 색다르지 않을까 싶다. 제목부터 일상 찬가를 외치는 <퍼펙트 데이즈>는 매우 단순한 내용의 영화다. 영화는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히라야마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햇살을 만끽하고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열심히 화장실을 청소한 뒤 한적한 숲에서 점심을 먹고, 퇴근 후 근처 가게에서 술 한 잔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그의 일상. 하지만 영화에 빠져들수록 그의 하루가 매번 똑같지는 않음을 깨닫는다. 생각지 못한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소동도 일어난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시간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모든 순간이 드라마틱 하고 소중하다. 그 감격의 의미를 영화는 조용하고도 사려 깊게 전한다.
<퍼펙트 데이즈>는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의 빔 벤더스 감독이 일본에서 만든 영화다. 당초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단편영화로 출발했으나, 지금의 도쿄를 담고자 하는 감독의 마음 덕분에 장편으로 확장되었다. 주인공 히라야마 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영화 속 아침햇살처럼 눈부시다.
영화는 특이하게 히라야마의 사연을 구구절절 풀어놓지 않는다. 극중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나름의 굴곡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 못 할 사연 속에서도 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며 이 순간의 기쁨을 누리는 그의 표정만으로도 인물을 향한 궁금증이 다 풀어질 듯하다. 웃음과 눈물을 오가며 어제에 대한 반성과 다가올 내일에 대한 벅찬 감격을 이야기하는 야쿠쇼 코지의 열연에 층층이 쌓여가는 ‘하루’의 위대함은 더욱 커져간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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