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일본의 4개 섬 중에 가장 남쪽에 있는 큐슈. 이 중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로 후쿠오카가 유명하다. 큐슈에서 가장 큰 도시인 후쿠오카를 벗어나면 천해의 자연 경관과 온천, 화산 등 국내에서 경험하기 힘든 다양한 환경을 만날 수 있다.
자칼투어 큐슈 GT의 베이스 캠프는 후쿠오카에서 약 2시간 정도 동쪽에 있는 바닷가 온천 도시인 오이타현 벳푸에 마련했다. 시모노세키 국제 터미널을 출발해 앞으로 4일간 벳푸, 오이타, 히타, 미야자키, 아소, 쿠마모토, 츠에타테 등 총 1100km를 주행할 예정이다.
지금이야 GT라고 하면 고성능차의 상징과도 같지만 원래 GT는 로드트립에 기반한 수학여행과 같은 의미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마차 시절부터 귀족이나 왕족은 자신들의 자식들을 해외로 멀리 보내 견문을 쌓게 했다. 말 그대로 견문을 넓히는 장거리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어권에서는 Grand Touring, 유럽에서는 Gran Turismo라고 표기한다. 현대의 GT는 1927년 시작된 밀레 밀리아(1,600km를 주파하는 TDS 랠리)와 타르가 플로리오를 그 기원으로 삼는다.
아침 8시쯤 배는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다. 선 내 안내방송에 따라 지정된 구간으로 차를 옮긴 후 통관과 함께 일본 내 자동차의무보험(우리나라의 책임보험)을 가입해야 반출이 가능하다.
배기량과 차체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만7000엔 정도를 내면(현금만 가능) 잠시 후 한 달짜리 보험 증서와 번호판에 부착하는 보험 스티커를 발급받는다. 이 과정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되며 그사이에 세관 통관을 마칠 수 있다.
현재 외국인이 일본 내 자동차 종합보험을 가입할 방법은 없다. 코로나 이전에는 외국인 전용 보험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현재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일본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대인 100만 엔까지는 책임보험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이나 자차, 자기신체 손해, 대물 등등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추후 자칼투어 큐슈 GT에서는 일본 내 종합보험 가입을 제공할 예정).
아침에 도착한 시모노세키는 매우 한가하다. 야마구치현과 끝자락의 시모노세키는 오래된 항구 도시로 도시 곳곳에 예전의 흔적이 가득하다. 우리는 곧장 히타로 출발하려 했지만 근처의 모지코 레트로에 들러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다.
모지코 레트로에서 히타까지는 약 90km. 첫 날 일정 주행거리 중 거의 절반에 가깝다. 고속도로와 유료도로를 제외하고 유유자적 일본의 국도에서 즐기는 드라이브는 한국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통행방향이 반대라 함께 한 일행들은 걱정했지만 금방 적응된다. 일본에서 운전할 때는 두 가지 사항만 기억하면 된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차의 경우 중앙선은 내 몸과 항상 가깝다는 것을 기억하고 왼쪽 운전석(우리나라) 차는 우회전은 넓게 좌회전은 좁게만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주의할 점은 좌회전(한국의 우회전과 비슷한 개념)인데 일본의 좌회전은 직진 신호(녹색)에서만 가능하다. 빨간불일 때 좌회전은 단속 대상이다.
우리는 히타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히타 외곽의 정식 식당에서 야키소바를 주문했다. 오타코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현대 2대째 운영 중이며, 야키소바와 정식이 유명한 작은 가게다.
히타에서 벳푸로 이어지는 랠리코스 같은 와인딩 구간
점심식사 후 우리는 벳푸를 향해 출발했다. 히타에서 벳푸까지 거리는 대략 80km 정도인데 국도와 산악 와인딩으로 설정한 구글맵에 따르면 주행 시간이 2시간 정도 된다. 우리는 우사시를 거쳐 벳푸로 들어가는 산악 와인딩을 선택했다.
히타로부터 약 20km 쯤 지나 우리는 본격적인 산악도로에 진입했다. 입구에서는 2차선이지만 이내 차선은 하나로 줄어들고 양쪽으로 빽빽한 산림지대에 들어서니 WRC 코스 같은 느낌이 가득했다. 작은 마을과 농가를 지나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민가와 인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나무 냄새와 휘발유 타는 냄새, 높은 rpm을 넘나드는 엔진 소리만 가득하다. 한참 산악 와인들을 오르다 보면 차선이 다시 2개가 된다. 여기부터 정상까지는 비교적 속도를 낼 수 있는 고속 와인딩 구간이며 정상에는 화장실과 작은 주차장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한참 더운 시기라(외기온 43도가 찍힌다) 터보차는 힘이 딸린다. 거기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차를 세우고 확인해 보니 운전석쪽 타이어에 나사가 박혀 있었다. 나름 일본에서의 첫 신고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우사시를 거치는 일정을 포기하고 벳푸에 있는 자칼투어 협약 정비소르는 걸로 결정했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타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나라처럼 보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칼투어 큐슈 GT 협약 정비소
둘째 날 일정은 온천 도시 벳푸를 출발해 유후인, 다이칸보, 아소를 거쳐 쿠마모토의 작은 온천 마을인 츠에타테까지 가는 일정이다. 벳푸에서 유후인까지는 생각보다 먼 거리는 아닌데 일본의 스텔비오 패스라 불리는 밀키웨이를 지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 주 큐슈에 상륙한 태풍의 영향으로 통제된 밀키웨이를 우회해 는 유후인을 거쳐 다이칸보까지 이동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감을 받은 다이칸보
유후인에서 약 1시간 정도 거리인 다이칸보는 바이크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설립자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다이칸보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은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다이칸보에서 아소까지 거리는 약 1시간. 활화산인 아소산이 있는 아소 근처는 산과 산을 이어주는 고속 와인딩 코스가 유명하다. 인기 자동차 게임에도 등장하는 아소의 와인딩 로드는 다른 도로에 비해 노폭이 넓고 속력을 내기 좋다.
넓게 펼쳐진 평원지대를 비롯해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쓸고 지나가 검게 그을린 지대까지 몇 km 단위로 주변 풍경이 바뀐다. 아소산은 활화산이다. 굽이진 와인딩 로드를 따라 정상까지 오르다 보면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운이 좋은 날은 차를 타고 아소산 화산지대까지(입장료 800엔)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코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으며 한 시간 단위로 측정되는 화산활동에 따라 입장이 불가할 때가 많다.
끝없이 펼쳐진 아소산 와인딩 다운힐 구간을 내려오면 아소 신사와 아소역을 만날 수 있다. 한적한 시골 동네인 아소는 생각보다 관광객들이 많은 편인데, 주말과 평일의 차이가 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관광객은 아소 신사를 비롯한 아랫동네에서 관광을 즐기고 자동차나 바이크를 이용하는 관광객은 위쪽으로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온천마을 츠에타테의 전통 료칸에서 하룻밤
아소 주변에는 두 개의 큰 온천 마을이 있다. 깔끔한 관광지 느낌으로 꾸며진 쿠로카와와 전통적인 운치를 품은 츠에타테다. 쿠로카와 온천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곳이며, 일본과 중국, 한국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후쿠오카가 키타큐슈에서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한 지역이라 늘 사람이 많고 붐비는 곳이다.
반면 이번에 선택한 츠에타테는 오래된 느낌이 들지만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다. 대중교통이 있긴 하지만 워낙 산 속이라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배차 간격이 하루에 몇 번 없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일본에서 료칸은 가격이 높은 편이다. 료칸에서 제공되는 가이세키 코스는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는 아니다. 오후 6시 쯤 츠에타테에 도착해 료칸에 짐을 풀고 8시부터 시작되는 저녁 식사를 즐겼다.
저녁 식사로는 미야자키산 소고기와 쿠마모토의 특산품이라 불리는 말고기 회(마사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이 5회 정도 코스로 제공됐다(술과 음료수는 별도). 정갈하고 담백한 것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일본에서 먹은 음식 중에 최상에 속하는 수준이다.
일본식 디저트까지 제공되는 저녁 식사를 느긋하게 즐기고 생각보다 큰 규모의 온천에 몸을 담그니 그간의 여독이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의 전통 료칸은 가격이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료칸도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 료칸은 객실에 화장실과 욕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 침대도 없고 다다미방에 이불을 깔고 자는 방식이라 한국인들이 당황하거나 가격에 비해 별거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최근에 개보수하거나 새롭게 지은 호텔식 료칸은 전통 료칸과 시스템은 똑같고 객실 내부에 침대와 화장실, 욕실을 갖추고 전망이나 인테리어에 신경 쓴 곳이 많다. 편의성을 보면 대규모 리조트에서 볼 수 있는 호텔식 료칸이 좋고 좀 더 전통적인 것을 즐기려면 오래된 느낌 가득한 전통 료칸을 선택하면 된다. 둘째 날의 주행거리는 약 210km 정도.
덧붙여
사실 외국을 돌아다녀 보면 한국만큼 보험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을 보기 힘들다. 국토가 비교적 좁고 촘촘한 도로망으로 이어져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의 자동차 보험 시스템은 전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주유소는 한국의 주유소와 유사하면서도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판매되는 연료는 보통 휘발유(레귤러), 고급 휘발유(하이옥탄), 경유를 기본으로 하고, 저녁 늦게까지 영업하는 곳은 드물다.
일본에서 자동차 여행을 할 때는 매일 주유하는 것이 좋다. 기름값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대부분의 주유소는 외부에 최저 기름값을 표시한다. 이는 할인 카드나 기타 주유 할인 혜택을 최대한 활용했을 때의 가격이다. 때문에 표시된 가격과 실제 주유 가격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할인을 받지 않을 경우 고급 휘발유는 리터당 약 190엔에서 197엔이며, 최대 할인을 받으면 150엔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 한국과 가격 차이는 크지 않지만, 옥탄가가 100 이상으로 기름의 품질은 더 우수하다.
일본에는 에네오스, 이데미츠와 같은 유명 주유소와 한국의 알뜰 주유소와 비슷한 JA 주유소가 있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주유소는 대부분 셀프 주유소가 많다. 에네오스와 같이 일본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주유소는 주유기가 영어로 제공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본어만 지원한다. 일본어 안내가 어려울 경우, 주유소 사무실의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현지 코디네이터, 통역 : KJ 포스트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