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맨해튼 한복판에 나타난 ‘영희’...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체험장 가보니
5가지 게임 체험하고 K푸드도 구경...커져가는 K콘텐츠의 힘
“영희, 영희다!”
지난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 번화가 한 중심에 있는 ‘맨해튼 몰’에 조성된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 체험 매장에 발을 들인 매트 하틀리씨는 입구에 서 있는 2m 높이의 거대한 인형을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희는 드라마 속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다 움직이는 참가자를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는 공포의 인형의 이름이다. ‘오징어 게임’의 팬이라는 친구 3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하틀리 씨는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며 “어떤 게임들을 체험하게 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스트리밍 공룡인 미국 넷플릭스는 오는 12월 26일 ‘오징어 게임 시즌2′의 공개를 앞두고 이날부터 뉴욕에서 게임 체험을 중심으로 한 대형 몰입형 체험 매장 운영을 시작했다. 최저 29달러에서 59달러까지 다양한 게임 체험 티켓은 하루에 1500명 한정으로 판매된다. 이날 티켓 판매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첫 주의 경우 일부 소수의 이른 시간대를 제외하곤 대부분 매진 상태였다. 매장 입구의 스태프는 “표를 안 사고 들어온 고객들도 많아 남은 자리가 없다고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넷플릭스가 이 같은 대형 체험 공간을 구성한 작품은 최고 인기작인 ‘기묘한 이야기’, ‘브리저튼’, ‘종이의 집’ 그리고 오징어 게임 네 작품이 전부다. 오징어 게임 체험 매장 프로젝트를 총괄한 조쉬 사이먼 넷플릭스 소비자 제품 담당 부사장은 체험장 오픈 하루 전인 지난 10일 특파원단과 만나 “지난해 1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었던 체험 공간이 큰 인기를 얻었었다”며 “그래서 이번엔 규모를 훨씬 키운 체험 공간을 10월 뉴욕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먼저 공개하고, 12월 호주 시드니, 그리고 내년 초 서울에서도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5가지 게임 체험…팬들 즐거운 비명
티켓을 구매한 고객들은 약 1시간 동안 오징어 게임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됐던 게임 5종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안내를 받아 체험 공간으로 입장하면, 자신의 번호가 적인 초록색 팔찌를 하나씩 받게 된다. 팔찌에 있는 바코드를 찍어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등록한 후 이동하면, 3층짜리 벙커침대가 마련된 안내 공간에서 드라마 속 ‘핑크 솔져’들이 참가자들을 맞이한다. 그들은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름이 없고, 숫자로 불린다”며 삼엄한 분위기를 한껏 조성하기도 했다.
첫 번째 게임은 ‘걸음 기억하기’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처럼 유리 다리를 만들고, 밟아도 되는 유리를 표시해주고 이를 기억해서 건너게 하는 게임이다. 걸음이 틀렸을 경우 드라마처럼 유리가 깨지고 추락하지는 않지만, 징검다리가 빨간색으로 물들며 게임에 탈락하게 된다. 독일에서 뉴욕으로 여행을 왔다가 이벤트를 발견해 참여해 부모님, 동생과 함께 참여했다는 리누스 볼텐(11)은 “시작하자마자 탈락해서 아쉽다”며 “생각보다 걸음이 헷갈렸는데, 다음 게임에선 꼭 이기고 싶다”고 했다. 그의 엄마인 제니 볼텐은 “아들이 나이가 어려 오징어 게임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그 후에 나온 오징어 게임 예능을 보고 푹 빠져들었다”고 했다.
다음 게임 ‘구슬 치기’에선 참가자들의 즐거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한 명씩 돌아가며 구슬을 원형 테이블 위에 그려져 있는 모양 안으로 튕겨 넣어야 하는 게임인데, 대부분 구슬이 제멋대로 굴러갔기 때문이다. 게임에 앞서 현장 스태프는 한 팀 24명의 참가자들에게 드라마 속 달고나 게임에 나온 세모·동그라미·우산 등 모양을 고르라고 했다. 영국에서 온 마이크 크리스티씨는 “당연히 달고나 게임에서 가장 쉬웠던 세모를 선택했는데, 실제로 보니 가장 어려운 우산 모양이 제일 크게 프린트 되어 구슬을 튕겨 넣기 쉽게 만들어져 있었다”며 “드라마를 잘 알고 있는 팬들의 재미를 위해 변형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 예능에서 소개됐던 ‘군함’ 게임은 지뢰찾기 처럼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의 좌표를 추측해 공격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이후 이어진 네번째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거대한 영희가 영어로 ‘그린 라이트’를 외치자 참가자들이 우르르 달려나갔고, ‘레드 라이트’를 외친 후 움직임을 보인 참가자들은 하나씩 호명되며 탈락했다. 마지막 게임에선 이전 게임에서 누적 1위를 한 참가자와 무작위로 선택된 참가자가 상자에 부착된 레버를 돌린다. 상자 속 영희를 튀어나오게 한 참가자가 탈락하고, 생존자가 최종 1위가 되는 것이다.
◇게임만이 아니야…무료 체험 공간도
조쉬 사이먼 부사장은 “이번 매장에선 한국적인 특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게임 티켓을 안사도 누구나 한국 먹거리와 기념품을 살 수 있는 ‘야시장’ 공간을 처음으로 구성해봤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들어온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더 많은 한국 문화에 노출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매장 입구의 영희를 지나치면 미국 대형 한인마트 체인 ‘H마트’와 협업해 즉석 오징어짬뽕·초코파이와 같은 한국 먹거리를 파는 매대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그 뒤로 인형·마그넷·티셔츠 등 오징어게임 기념품을 매대가 보였다.
매대 사이로 드라마 속 ‘딱지맨’으로 분장한 연기자들이 돌아다니며 관람객과 딱지 게임을 진행하는 모습도 보였다. ‘딱지맨’ 연기자인 차르 나카시마씨는 “사람이 몰릴때는 두명의 딱지맨이 현장을 누빌 것”이라고 했다. 현장의 참가자들과 스태프들은 ‘영희’를 한국 발음 그대로 기억하듯, 딱지도 별다른 번역 없이 ‘딱지(Ddakji)’라고 자연스럽게 불렀다.
사이먼 부사장은 “오징어 게임의 본고장인 한국에선 신세계, 비비고 등과 함께 더 다양한 체험을 선보이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조희진 한국관광공사 미주지역센터장은 “마침 며칠 전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나왔고, 한국 전통 게임을 소재로 둔 드라마가 맨해튼 중심에서 이렇게 인기를 얻는 것을 보니 고무적”이라며 “드라마, 문학 등 콘텐츠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된 외국인들이 실제로 한국을 찾을 수 있도록 앞으로 사업을 더 많이 펼쳐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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