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의혹, 결국 비용 문제…공천 싸게 하려고 여론조사 남용"
오랫동안 선거여론조사 자문을 해 온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3일 “작은 선거구에서 당내 경선을 하는 과정에선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거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며 “감방에 가는 문제가 생긴 것도 다 그 급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당이 중대한 결정(공천)을 내려야 되는데 어떻게든 값싸게 하려다 보니 생긴 문제 아닐까”라며 “결국 비용 문제”라고 했다. 다만 공표 조사들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그에게 명씨의 정체성부터 물었다. 명씨 스스론 선거전문가를 자처하지만, 정치권에선 정치 브로커로 불려서다.
Q : 둘의 차이는 뭔가.
A : “남들이 선거 전문가라고 부르든 스스로 폴스터(pollster·여론조사 전문가) 또는 마케터라고 부르든 결정적 차이는 표를 파느냐 마느냐 같다. 유권자 명단을 가지고 거래를 시도하면 브로커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전략 위주로, 조사자료를 활용해 조언하고 자문하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Q : 경계가 애매할 수도 있겠다.
A : “지역마다 향우회나 조기축구회, 등산회 등 수첩을 모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정치 브로커는 그 이름들 앞에 (정당 기호인) 1번, 2번이 적혀있다. 그게 정확한 게 굉장히 중요하다.”
Q : 여론조작은 어떻게 하나.
A : “몇 가지 방식이 있다. 2012년 서울 관악을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측 비서관 2명이 구속됐는데, ‘번호 따오기’를 했다. 사무실에다 190대인가 전화기를 두고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어디서든 받을 수 있게 착신전환을 해두었다. 두 번째 방식은 여론조사 때 성·지역·연령별 할당 표집하는데 20·30대 젊은 남녀는 (할당분을 채우지 못하고) 비게 마련이다. 60대 할아버지라도 20대 청년이라고 답하도록 하는 식이다.”
Q : 최근 논란이 되는 방식은 다르다.
A : “전화번호 섞기로, 통신사가 조사업체에 제공한 가상번호나 업체의 무작위추출방식(RDD) 등으로 마련된 번호(리스트)에 1번, 2번이 적힌 번호를 붙여서 조사하는 것이다. 이들에겐 미리 전화 받으라고 지령까지 내릴 수 있다.”
Q : 언론에 공표되는 조사들은 어떤가.
A : “지금 문제가 되는 건 (공표용 조사가 아닌) 당내에서 공천용 전략·기획조사, 후보가 되려는 이들의 조사, 그리고 두 당의 후보단일화 조사 등이다. (공표용) 번듯한 조사들은 (문제 있는 방식으로) 안 한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Q : 명씨가 지역언론사 ‘시사경남’를 통해 조사했던 게 논란이 되면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A : “법조문을 만들어도 이상한 업체가 끼어 들어오는 걸 막을 순 없다. 세련되게 하려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후처벌을 강화하는 거엔 찬성인데 사전적으로 해봤자 ‘열 사람 한 도둑 못 잡는다’는 생각이다.”
우리 정치에서 여론조사가 공천 과정에 들어온 건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관여한 1996년 15대 총선 때부터로 알려졌다. 경선에 도입된 건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때다.
Q : 여론조사의 위상이 특별하다.
A :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책임정치가 부재한 것이다. 밀실야합이란 비판을 받겠지만 그래도 책임 있는 사람이 공천을 책임지고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젠 밀실에서 어떻게 전화조사할지 결정한다. 시민의 뜻, 유권자의 뜻을 따른다고 하지만 정당 내 그런 중요 결정을 내릴 배짱이나 능력·역량, 책임의식이 없는 거다.”
Q : 여론조사가 투표 기능까지 한다.
A : “민의를 반영하는 싸구려 방식이다. 제대로 하려면 당원대회를 열어야 한다. 미국의 코커스처럼 당원들이 모여서 투표하면 된다. 너무 당원들만 모여 본선경쟁력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면 개방형 국민참여경선, 오픈프라이머리를 해도 된다. 정치가 고비용 구조로 가는 건 곤란하지만, 유권자의 관여·참여성이 낮아지고 전화 한 통 받고 정당원으로 기여했다고 느끼는 건 맞지 않는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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