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조원 규모 미래 먹거리 수소 열전…그룹 오너들, 선점 진두지휘
수소 시대 성큼
현대자동차그룹은 9월 ‘CEO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10년간 120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중장기 핵심사업의 한 축은 에너지 분야인데, 에너지 중에서도 수소사업에 집중키로 했다. 현대차는 1998년 수소 관련 연구·개발(R&D) 전담 조직을 신설하며 일찌감치 수소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최근 한화임팩트 투자부문 대표이사 사장을 겸직한다고 밝혔다. 한화임팩트는 수소·바이오 등 신사업 분야의 투자형 지주회사다. 지난해 100% 수소로만 작동하는 수소터빈 가동에 성공하기도 했다. 김 부회장이 과거 태양광 사업을 진두지휘한 것처럼 그룹의 수소사업을 직접 지휘하겠다는 의지다.
정부와 기업이 화석연료를 대체할 미래 에너지로 수소를 낙점한 건 탄소 배출이 없는 대표적인 청정에너지인 데다 물 등 지구상에서 가장 흔해 ‘에너지 불균형’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나 배터리보다 열효율이 높아 수소 생태계가 갖춰지면 석탄·석유·가스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 자동차 연료는 물론 전기 생산, 각 가정의 냉·난방 연료 등 모든 것이 수소로 바뀌는 것이다. 한종희 한국에너지공대 수소에너지연구소장은 “(수소 생태계가 갖춰지면) 산업 모든 단계에 걸쳐 서서히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석탄·석유·가스가 수소로 대체될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은 현재 물 전기분해 등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수소 생산 기술과 수소 저장·충전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연간 약 3만t의 액화수소를 생산하고 있는 SK는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역량을 기반으로 수소 생산·저장·운송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확대 중이다. 한화는 석유화학공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부생수소)를 활용한 발전소를 건설해 연간 40만㎿h(메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2000년 싼타페 수소차를 공개한 이후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수소차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8월까지 승용 수소차인 ‘넥쏘’를 전 세계에서 약 3만9000대를 판매했다. 수소버스인 ‘일렉시티 FCEV’ 역시 9월 기준 전 세계 판매량이 1032대에 이른다. 현대차의 수소 승용·상용차의 글로벌 누적 판매량과 시장 점유율은 모두 세계 1위다(중국 제외).
외국 기업 중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에쓰오일과 손잡고 국내에서 수소 생산을 추진 중이다. 아람코는 석유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청정에너지 전환을 앞당기기 위해 수소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지자체는 기업의 수소 관련 R&D 시설 유치나 수소 플랜트 확보에 나섰다. 9월 수소도시로 선정된 울진군은 400억원(국비 50%, 지방비 50%)의 예산을 투입해 2029년까지 수소생산시설(수소국가산단)을 준공할 계획이다. 울진군은 수소생산시설에서 만든 수소를 수소충전소에 보급해 수소버스·승용차에 공급하고, 수소연료전지를 설치해 농공단지에 입주한 기업에 전기와 열을 공급할 계획이다. 2019년 ‘수소 특구’로 지정된 울산시는 수소 인프라 확대에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현대로템이 제작한 ‘수소트램’ 시험 운행을 시작하기도 했다.
사우디 아람코, 한국서 수소 생산 추진
현재 한국 기업의 수소 관련 기술력은 세계 정상급이라는 평가다. 다만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소는 생산은 물론 저장과 유통과 같은 인프라 시설이 갖춰줘야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은 수소를 저장하고, 유통할 기술이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수소를 생산해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당장 수소차만 해도 충전소 보급 속도가 더디다 보니 판매량이 줄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4421대, 2021년 6195대, 2022년 7391대로 증가세를 보이던 수소차 신규등록 대수는 지난해 3930대로 급격히 하락했다. 현재 운영 중인 수소차 충전소는 서울 10곳 등 179곳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자원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원화돼 있는 수소산업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야 한다. 수소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 부처의 사업 방향이 같아 겹치는 사업도 적지 않다”며 “과기부는 원천기술에서 응용까지, 산업부는 응용된 기술 중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뭔지 파악하고 연구하는 방식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린수소(탄소 배출 없이 생산한 수소)만 고집하는 것도 배제해야 한다. 수소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 정도에 따라 그린수소·그레이수소(부생수소 등)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등급에 상관없이 생산 파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소의 등급을 구별할 때가 아니라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 경제성을 높여야 시장을 키워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수소유통정보시스템(하잉)에 따르면 17일 기준 수소 판매가격은 1㎏에 평균 9986원이다. 약 6㎏의 수소탱크를 가진 넥쏘를 완충하려면 6만원가량이 들어 휘발유차와 큰 차이가 없다. 이슬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수소 판매가격을 낮춰야 시장이 형성돼 민간 기업이 이끌어가는 수소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며 “상용차 중심의 모빌리티 보급 및 보조금 지급 등 대량 생산과 소비를 위한 전략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재홍 한국수소연합 회장은 16일 개막한 그린비즈니스위크(GBW) 개막총회에서 “전문기업 인력 양성과 수소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레이·블루·그린수소=수소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은 수소를 그레이, 탄소를 배출하지만 탄소를 포집·활용하면 블루,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청정 수소는 그린수소로 구분한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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