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핵가족화 시대, 돌봄비용 준비는 보험이 효율적!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돌봐야 하고, 결국 누군가의 돌봄을 받게 된다. 돌봄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우리 가정과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나아가 사회 전체의 건강함을 위한 밑거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초개인화, 초핵가족화가 되면서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숨어있는 재정 시한폭탄, 노인돌봄비용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치매 등 노인성 질병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고령자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지출이 연평균 16%씩 증가하면서 장기요양보험이 국민연금, 건강보험에 이은 ‘재정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장기요양보험 급여비 총지급액은 7조 403억원으로 전년 동기(6조 928억원) 대비 15.6% 증가했으며, 하반기에는 약 14조 5,000억원으로 2021년(12조 5,756억원)보다 약 2조원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추세라면 약 40년 뒤인 2060년 장기요양보험의 연간 지출액이 통상 GDP의 2%대 초·중반 수준인 국방비와 맞먹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국가의 장기요양보험의 예산을 ‘재정 블랙홀’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직면하게 될 미래의 나를 위한 돌봄은 과연 누가 준비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보험료율은 소득의 1%에 해당한다. 적은 금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인돌봄 문제에 당면한 이들을 제외한 일반 국민에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사회보험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료와 합쳐서 원천징수 하다 보니 매달 납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다.
돌봄비용, 누가 준비해야 하나
자녀가 알아서 돌봐준다면 그래서 덕분에 내 미래의 돌봄력이 준비된다면 아무리 국가의 노인돌봄 예산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쏟아져 나와도 걱정할 것이 없긴 하겠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예전에는 부모나 조부모가 아이들을 돌봐주고 부모가 고령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사이클이 원활하게 굴러갔다면, 이제는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등 다양한 가정 내 형편으로 인해 더 이상 이 사이클은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얼마 전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하여 ‘자녀가 미래의 자신을 돌봐줄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45~69세 1,000명) 설문 결과, 자녀가 본인을 돌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21.9%에 그쳤고, 자녀의 돌봄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그보다도 적은 17.2%에 불과했다. 응답자 10명 중 약 8명은 자녀가 돌봐주지 않을 것이고 돌봐주는 것 자체도 싫다고 응답한 것이다. 부모 돌봄을 위해 자녀의 사회·경제적 활동 등의 희생과 포기를 달가워할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이젠 고령자가 된 우리를 돌봐줄 주체는 가족이 아닌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될 것이다.
자녀가 돌봄비용을 제공해 주면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우리의 극진한 돌봄이 있었기에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어느 종보다도 긴 돌봄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출처 《트렌드 코리아 2024》, 김난도 등), 자녀들의 인생에서 분명 부모인 우리의 지분은 일정 부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우리의 부모에게 차고 넘치는 돌봄비용을 드리기 힘든 현실을 볼 때 말문은 저절로 닫히고 만다.
돌봄비용 준비 전략
장기요양보험 수급자 수는 도입 첫해인 2008년(21만명) 대비 2021년 기준 91만 명으로 336%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전체 노인 인구수의 10.9%에 불과한 수치이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지 못하는 등 여러 이유로 장기요양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100% 자부담으로 간병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2021년 기준 월평균 간병비는 약 310만원이나 된다. 2021년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이 333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젊었을 때 벌었던 1년 연봉을 아픈 나를 위한 1년 돌봄비용으로 죄다 써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으로 노후준비가 부족하여 개인연금에 가입하고, 건강보험으로 치료비가 해결되지 않아 민영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돌봄비용 역시 정부예산으로는 100% 감당할 수 없다는 뻔한 전망을 생각할 때 경제력이 뒷받침해 주는 인생의 전반기 때 미리 세팅해 놓아야 함을 부정할 수 없다.
매달 정기적인 적립을 통해 준비해도 좋겠지만 돌봄비용이 필요하기 직전까지 있어야 할 규모의 적립금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또한 돌봄비용이 다 만들어지기 전인데 안타깝게도 비용의 집행이 필요하게 되면 참으로 난감하게 될 것이다. 이에 비해 보험상품으로 준비하는 것은 여러 수고와 가성비 측면을 고려할 때 좋은 점이 많다. 돌봄이 필요해지는 순간, 그동안의 적립 횟수나 적립 금액과 상관없이 미리 약정된 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혜택에 합당한 사업비는 보험 계약자로서 내야 하겠지만)
게다가 최근 보험상품의 경우에는 요양 등급 판정 시 전문 트레이너가 방문해 재활 운동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평상시 건강관리와 일반 치료지원, 요양보호사·간병인 매칭, 헬스홈케어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장기 요양 1~5등급을 받을 경우 목돈의 진단금을 받을 뿐 아니라, 요양원이나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본인부담금을 일정 부분까지 실손 보장하는 서비스까지도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돌봄비용의 영역은 일정 금액을 직접 적립하기보다는 일찌감치 괜찮은 보험에 가입해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미래의 나를 돌보기 위한 결심
아무리 미래 우리의 모습을 그린다 해도 지금 당장 누리는 즐거움에 더 끌리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미래의 나를 위한 돌봄비용을 준비하거나 보험에 가입하기 보다는 지금의 나를 위해 더 쓰고 싶은 것이 우리 모습 아니겠는가.
이에 미국 뉴욕대의 사회심리학자 허시필드 교수는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피실험자들에게 10년 뒤 자기 모습을 생각하도록 한 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가상현실의 방 안에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늙은 미래 모습을 들여다보도록 했고 다른 한 집단은 거울에서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게 했다. 이때 사용했던 늙은 모습은 피실험자들의 사진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변조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방에서 나온 피실험자들에게 각각 1천 달러를 주면서 당장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실험실 방에서 자신의 늙은 미래 모습을 본 이들의 상당수는 그 돈으로 노후를 위해 저축하겠다고 답변했다. 반면 거울로 현재 모습만 봤던 그룹 중 저축하겠다는 이들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으로 생생하게 바라본 늙은 나를 위해 보다 많은 돈을 저축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미래의 나를 선명하게 바라볼 때, 기꺼이 현재의 내 통장잔고의 일부분을 미래의 나를 위한 돌봄비용으로 투자할 수 있다. 결국 미래의 나를 바라보겠다는 결심을 얼마나 다부지게 하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 후반전의 질이 달라지게 된다.
돌봄은 그저 남의 일이 아니다. 세상이 알아서 챙겨줄 만한 일도 아니다. 이것은 바로 나의 문제이다. 우리는 모두 돌봄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이다. 언젠가는 가장 돌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 내가 될 텐데 그런 순간에도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미래의 나에게 투자하는 것이 어떨까. 육체가 소진한 그때의 나를 어루만져 줄 사람은 바로 나이다.
글 박유나 재무심리 전문가
※ 머니플러스 2024년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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