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 A6, A7, 종이 규격의 물병이 바꾸는 미래 - 메모보틀
‘메모보틀’의 물병 모양은 특이해요. 둥글거나 정방형 형태로 균형 잡힌 모양이 아니라, 직사각형 모양의 수통처럼 생겼어요. 그런데 그 직사각형 모양의 물병 크기가 낯설지 않고 눈에 익어요.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용지 크기로 디자인했거든요. 라인업의 이름도 용지 크기를 뜻하는 A5, A6, A7이에요. 참고로 A4는 297 x 210mm 크기이고, A에 붙은 숫자가 커질수록 크기가 반씩 줄어들어요.
그렇다면 왜 물병 디자인을 원형이 아니라 종이 모양의 직사각형으로 했을까요? 사람들이 물병을 휴대할 때 가방에 물병을 넣어 다니는 것에 착안했기 때문이에요. 가방 안에 책이나 공책을 넣듯이 물병도 차곡차곡 넣을 수 있도록 유도한 거죠. 제품 자체가 아니라 제품을 휴대하는 맥락을 고려한 디자인이에요. 이렇게 하니 물병을 가방에 넣었을 때 가방 모양이 툭 튀어나올 일도 없어요. 가방에 주로 넣고 다니는 공책, 책, 서류 등과 위화감도 없어지고요.
그런데 메모보틀의 이러한 차별적 디자인은 시작에 불과해요. 다회용 물병을 지속적으로 쓰도록 여러 장치들을 마련했죠. 메모보틀이 일회용 컵 소비를 줄이면서 어떻게 지구의 미래를 바꾸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메모보틀 미리보기
• 가방 휴대에 최적화된 물병의 탄생
• 갖고 싶은 물병의 완성, ‘물병 꾸미기’
• ‘영원히 No 할인’ 정책을 고수하는 진짜 이유
• 넛지의 정석, 이 3가지를 지켜주세요
한 때 한국을 강타했던 물병이 있었어요. 2014년, 심플한 디자인에 내용물을 예쁘게 보여주는 투명한 물병인 ‘마이 보틀(My bottle)’이에요. 마이 보틀은 도쿄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투데이즈 스페셜(Today’s Special)’이 일본 리버스(Riverse) 사에 의뢰해 만들었어요. 마이 보틀의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아마 SNS에서 이 물병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었을 거예요.
마이 보틀은 500ml짜리 물병인데요. ‘트라이탄’이라는 소재로 만들었어요. 트라이탄은 젖병에 쓰이는 소재로 영하 40도부터 영상 100도까지 견딜 수 있죠. 그러니 뜨거운 물을 부어도 환경호르몬 걱정 없이 쓸 수 있어요.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일회용 물병을 대체할 친환경 제품으로 포지셔닝해 삽시간에 그 인기가 번져 나갔어요.
마이 보틀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요. 한국에서 구매 대행 가격이 7만원을 넘기기도 했어요. 일본 현지 정가가 1,500엔(약 1만5천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무려 400%의 웃돈이 붙은 셈이에요. 당시 마이 보틀은 도쿄 지유가오카와 시부야에 위치한 투데이트 스페셜 매장과 공식 온라인 웹사이트에서만 판매했는데, 인기가 치솟자 품절되기 일쑤였어요. 나중에는 사재기가 극심해지자 1인당 2개까지 밖에 구매할 수 없도록 상한선이 생기기도 했고요.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고, 오리지널의 수량에 제한이 생기니 카피캣들이 발 빠르게 등장했어요. 물병 디자인은 물론 마이 보틀의 폰트와 이름까지 비슷한 ‘식스 보틀(Six bottle)’, ‘잇 보틀(It bottle)’ 등이 대거 생겨났죠. 식스 보틀은 카페 브랜드인 ‘망고 식스’에서, 잇 보틀은 용기 브랜드인 ‘락앤락’에서 출시한 제품이었어요.
카피캣으로 등장한 제품 중 일부는 투데이즈 스페셜의 마이 보틀을 제조한 리버스 사에 제조를 의뢰해 소재 스펙까지 아예 똑같이 만들기도 했어요. 심지어 마이 보틀과 동일한 제조사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기도 했죠. 이런 카피 제품들에 대한 비난이 있었지만, 마이 보틀, 그리고 마이 보틀을 닮은 투명 물병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망은 한 동안 지속됐어요.
그렇다면 마이 보틀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친환경적인 사용성, 넓은 범위의 온도를 견디는 내열성 등 여러 장점이 있지만, 인기의 비결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해요. 다회용 물병은 마이 보틀 이전에도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트라이탄도 이미 2007년에 개발된 소재거든요. 결국 마이 보틀의 가장 큰 무기는 ‘예쁜 비주얼’이었어요. 당시 SNS를 타고 너도 나도 나만의 예쁜 마이 보틀을 자랑하기에 바빴어요. 입소문이 아니라 ‘눈소문’이 난 거죠.
그런데 유행하는 많은 아이템들이 그렇듯 마이 보틀의 인기는 채 오래 가지 못했어요. 여전히 투데이즈 스페셜에서는 스테디셀러로 마이 보틀을 판매하고는 있지만, 예전 같은 인기는 사그라 들었어요. 2014년 당시 마이 보틀을 구매했던 사람들 중에서 지금까지 마이 보틀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고요.
SNS에서 자랑하는 트렌드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제품 자체의 사용성이 좋았다면 여전히 일상에서 마이 보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독보적이고 지속적인 다회용 물병이 되기에는 비주얼만으로는 부족했던거죠. 대체재들도 많이 생겨났고, 무엇보다 매번 물병을 챙겨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은 여느 다회용 물병들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요.
가방 휴대에 최적화된 물병의 탄생
투데이즈 스페셜의 마이 보틀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014년, 지구 반대편 호주 멜버른에서는 새로운 디자인의 물병이 등장했어요. 투명하고 깨끗한 비주얼은 기본, ‘물을 편리하게 들고 다니세요(Carry water conveniently)’라는 슬로건을 달고 등장한 ‘메모보틀(Memobottle)’이에요. 이 물병은 한 때의 광풍적인 인기보다는 출시 이후 꾸준히 진화하며 사랑 받고 있어요. 첫 제품이 출시된지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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