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체 핵무장 논의 멈추면 안돼…美핵우산 신뢰성 의문 [매경포럼]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3. 11. 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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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개발‧무력 시위 지속에
美 확장억제로 韓 보호 강조
내년 트럼프 출마등 변수많아
유사시 美 안보공약 이행 의문
자체 핵무장 노력 포기말아야
기념 촬영하는 신원식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서울=연합뉴스)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13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제55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요즘 북한의 잇단 무력 시위를 보면서 ‘비현실적’ 상상을 해본다. 이른바 ‘서울 불바다’ 위기가 고조됐던 1994년으로 돌아가 북한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것이다. 최근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주장한 ‘대북 선제적 대응 조치’와 유사한 맥락이다. 하지만 북한 보복으로 서울이 진짜 불바다가 될 우려 때문에 쉽지 않다. 북핵 싹을 일찍 자르지 못해 계속되는 국력 소모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그동안 제네바합의나 6자회담에 안주한 동안 북한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6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다. 북한은 7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탄두, 핵물질, 투발수단 등 거의 모든 핵 관련 기술을 갖췄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길 꺼리지만 실제 핵능력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06년 10월 첫 핵실험 직후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이 사실상 세계 9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고 한 것은 핵개발 잠재력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재 핵무기 사용 원칙과 조건까지 규정해놓는 등 자신만만하다.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가 정한 핵무기 사용 조건 중 하나는 ‘(북한 상대로) 핵무기나 비핵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한 경우’ 등인데 임박 여부 판단은 다분히 자의적이다. 또 북한 지휘 체계가 위험에 처하면 핵타격이 자동으로 즉시 단행된다고 규정했다. 전쟁 주도권을 위해 핵무력을 우선 동원한다는 발언도 수차례 나왔다. 얼마 전 출간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는 책 제목처럼 북한은 언제든 실재화할 수 있는 핵능력을 갖췄다. 저자 정욱식은 ‘새로운’ 북한에 대해 “미국과 평화관계 기대를 접고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을 밀어붙인다”며 “중국과 러시아는 세력균형 관점에서 이젠 북핵을 용인한다”고 진단한다.

북한의 잦은 무력 도발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후 국내외 석학들과 정치인들이 핵 보유 및 불가로 나뉘어 갑론을박 한 가운데 미국의 신뢰있는 핵우산 확대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해 미국 핵 운용 정보를 공유하고 전략핵잠수함 등 핵 자산의 주기적 전개를 통해 확장억제를 강화키로 한 것이다. 지난 13일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는 모든 무기체례를 동원해 북핵 대응력을 극대화하고 미 조기경보위성으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미 정부의 SM-6 요격 미사일 한국 판매 승인 소식도 나왔다. 한미 공조 성과들이지만 ‘이벤트’ 정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북한이 곧 정찰위성 발사 등 무력 증강에 진심인 상황에서 유사시 미국의 공약 이행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김정은, 한미연합연습 기해 해군 시찰ㆍ순항미사일 발사 참관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ㆍ을지프리덤실드)를 기해 해군 함대를 시찰하고 전략무기 발사훈련을 참관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해군 동해함대 근위 제2수상함전대를 시찰했다”고 21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같은날 “경비함 해병들의 전략순항미싸일(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1994년 서울 불바다 얘기가 한창일 때 우크라이나는 거꾸로 핵무기 폐기를 결정했다. 1994년 12월 미국, 러시아, 영국과 주권과 영토, 안전에 관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관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하자 미국은 비난만 할 뿐 무력 지원은 없었다. 부다페스트 각서 위반이라는 비난에 키이우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스티븐 파이퍼는 “우리는 안보를 ‘보증(assurance)’한다고 했지 ‘보장(guarantee)’한 것은 아니다”라며 발뺌 했다. 1990년대 국내에서 핵무장론이 제기되자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필코 북한 핵개발을 저지할 테니 한국은 독자적인 행동을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어긋난 결과를 다들 알고 있다.

1961년 미국이 프랑스 핵개발에 반대하자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라고 물은 것도 미국 핵우산에 대한 신뢰 문제 때문이었다. 드골은 “어느 국가도 남의 나라를 도와줄 수 있지만 다른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해주지는 못 한다”라며 핵개발에 나서 10년 만에 성공했다. 최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독재자를 타도하고 자유국가 수립을 약속했지만 혼란만 야기한 채 몰래 빠져나온 게 미국이다.

우리는 지금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2개 전선을 동시 지원하는데 힘겨워하는 점을 목도하고 있다. 향후 한반도를 포함한 2~3개 전선이 동시에 펼쳐질 때 지금의 거창한 공약이 그대로 지켜지긴 힘들 수 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 등 한국에 대한 미국 보호막은 얇아질 것이다. 지난 2일 서울시 주최 안보포럼에서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감안하면 남북한 간 확전 시 미국이 과연 핵무기로 북한을 보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안보 상황이 크게 악화된다면 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고려하고, 미국 묵인 하에 핵개발 추진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미국, 일본과 우호적인 현 상황은 이들의 협조를 얻어 국방력을 업그레이드 할 호기다. 예컨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일본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이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조건은 둘 중 하나다. 핵무기 발사로 NPT 체제가 훼손되거나 미국이 대외 확장억제를 철회할 때다. 트럼프 집권으로 확장억제가 축소되고 한국 방위비 분담이 커진다면 이를 앞세워 핵무장을 요구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외부 반대에 지레 겁부터 먹고 핵 논의를 멈춰선 안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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