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이명박 때 실패한 '디지털교과서'
교육부장관, 이번엔 AI디지털교과서 추진
학교는 교육 기본 가치도 무너진 상태
교사도 부모도 '디지털의존성' 걱정하는데
사라진 3D프린트 기기
새로운 지식, 미래 먹거리, 첨단 기술 같은 것들로 학교를 새 단장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그 중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사라졌다. 몇 년 전에 4차 산업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며 학교마다 들여놓은 3D프린트 기기는 지금 학교에서 거의 사라졌다. 암 유발 물질을 내뿜는다는 뉴스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거 몇 대 놓으면서 외쳤던 구호들은 지금 생각하면 민망할 정도다.
3D프린트기나 드론 교육 계획서에는 창의성,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한다는 내용,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 등 매력적인 말들은 다 찾아볼 수 있었다. 진짜 그랬을까. 학교에 3D프린트기나 드론을 몇 대 들여놓으면 아이들의 창의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고 4차 산업 사회의 역군으로 자랄 수 있는 걸까.
그런저런 의문에, 난 창의성에 대한 여러 책을 뒤적거려 보았다. 창의성을 기르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많은 연구자들은 다른 얘길 하고 있었다. 실패하고 실수해도 다시 도전하고 시도해볼 수 있도록 격려하는 문화적 토양, 아이디어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민주적인 의사소통 환경. 창의성을 기르는 건, 첨단의 무엇이나 과학적 도구 이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토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시 학교 상황은 그런 토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는 학교장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분위기였다. 학교장이 이걸 하자고 밀어붙이면 교사들은 군말 없이 따라야 했고, 갑질도 횡횡했으며, 잡무에 쫓겨 아이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여유를 찾기 힘들었다. 비민주적 학교 질서 아래서 민주적인 교실 운영을 강요받던 아이러니.
문화는 연쇄적이다. 학교장 앞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쉽지 않고, 교장이 요구하는 행사를 교실 아이들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사의 창의성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창의성이 자랄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을까.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3D프린트뿐이었을까. 현재 교육부 장관이 이명박 정권 시절 교육부 장관을 할 때, 대표적으로 실패했던 ‘디지털 교과서’ 역시 엉성한 구호는 다 갖다 붙인 사업이었다.
교육부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AIDT와 그 문제점
비슷한 일은 반복된다. 며칠 전, 유튜브를 넘기다가 교육위원회 현안질의 영상이 뜬 걸 보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교육부 장관의 질의응답 영상이었다. 2025년부터 학교 현장에 도입될 거라는 AIDT(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교육부가 2023년 6월 8일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2025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2028년까지 초등 3학년 이상 주요 교과로 확대 보급할 계획이며, 도입 3년 후엔 서책 교과서를 완전 대체하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 교육 현장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인 것 같다. 잘 모르거나, 우려하거나.

교육부의 로드맵대로 AI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하게 된다면, 교사-학생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은 맞춤형 콘텐츠를 학습하느라 태블릿 화면을 더 오래 보고 있어야 한다. 얼마나 맞춤형으로 고도의 AI가 학습을 도와줄지 몰라도 교사와 학생이 소통할 때 일어나는 유익을 다 상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얼마 전, 연수에서 사용하고 있는 AIDT에 대한 보도가 나왔는데, 아직까진 AI가 적용된 부분도 미미하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디지털 기기에 과다노출로 인한 '디지털 기기 의존성 심화'를 우려한다. 최근 스웨덴과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학교 수업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을 지양하고, 다시 종이와 연필로 수업하는 정책이 실행되고 있다. 몇 년 동안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 현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해력도 계속 저하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는데, 이 원인으로, 늘어난 디지털 기기 사용 때문이라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AIDT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히려 아이들의 사고 기회를 빼앗고, 자기주도적인 문제해결을 방해할 거라는 우려도 있다.
그 외에도, 현재의 인터넷 인프라가 각자 태블릿을 활용하는 걸 다 감당할 수 있을지, 1인당 1대의 태블릿의 보급이 내년에 다 이루어질지, 태블릿 오류나 고장, 앱 설치 등 태블릿 관리 시 교사의 업무가 가중되는 문제도 우려된다.
디지털 교과서가 서책 교과서를 활용한 수업보다 얼마나 교육 효과가 큰지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충분한 연구와 시범 운영 후에 미비점을 보완하고 현장에 본격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을 추진하는 교육부의 다른 태도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인 7월 18일, 서울교대에서 초등학교 교사의 학교 업무 관련 직무 스트레스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초등교사들은 ‘내가 행한 교육활동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데 대해 스트레스가 있다’(4.58점)항목에 가장 높은 응답을 했다. 이어서, ‘문제 행동이 심한 학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4.43점)가 다음으로 높은 응답이었다. 1년 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사들이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교육부 장관을 향한 현안질의는, 교육부가 시급한 문제에 대해 교육 현장과 얼마나 괴리된 시각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교사의 교권과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정서행동 위기 학생에 대한 분리 제도가 작년 생활지도 고시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인력, 공간, 예산의 부족으로 80% 이상 학생 분리가 안 되고 있다. 주변 학교들을 보면, 그나마 취지에 공감하는 관리자들에 따라 교감‧교장실, 교무실 등에서 분리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스템이 아니라, 관리자의 마인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법제화를 통해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실행 가능하다. 이에 대해 교육부 장관은 이런 취지로 답변했다. 학교마다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여 분리하는 사례가 있는데, 시범적으로 실시해보고 현장에서 좋은 사례가 나오면 그걸 확산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좋은 사례는커녕, 예산, 인력, 공간이 없어서 실행도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I 디지털 교과서를 추진하는 방식과 얼마나 다른가. AIDT 사업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서 단기간에 도입하려고 밀어붙이고 있다. 충분한 논의와 시범 운영을 거쳐 실시하자는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말이다. 반면, 학생 분리 제도는 교권과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제화와 시스템 구축이 당장 필요하다고 현장에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학교가 알아서 해보고 나중에 좋은 사례가 나오면 확산하자는 식이다. 교육부가 수업 현장의 회복보다 새로운 성과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기본을 세우고 회복하는 혁신이 필요한 때
교육부는 AIDT 교사 연수비로 3,818억 원 예산을 배정했고, 사업에 필요한 올해 예산만 1.2조 원에 달한다.(2029년까지 드는 예산은 6조 9천131억 원이다.) 반면, 교권보호 예산은 작년보다 50억 원 삭감한 139억 원을 책정했다.
학교 개혁의 많은 부분이 외부의 새로운 것들로 학교를 채우는 것에 집중되어 왔다. 성과를 자랑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학습 도구를 개발하는 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의 교육 개혁은, 기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권이나 수업권 침해 없이 수업을 할 수 있는 것, 아동학대로 몰릴 걱정 없이 교사가 아이들 생활 지도를 할 수 있는 법적 토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지원. 수업 자체가 제대로 안 되고, 교사는 아프고 쓰러져 가는데, AI가, 태블릿이 학생을 지적‧정서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건 코미디에 가까운 생각이다.
교육부가 AIDT 도입에 쏟는 예산과 역량의 일부만이라도, 교권과 교실의 회복에 쏟았다면,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가 된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교육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토대 위에 아무리 좋은 교육 도구를 세운들, 모래 위의 집일뿐이다.
교육부 장관님, 숙고해주세요. 뭣이 중한지.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