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들의 만류에도 재혼해서 아들 셋 다 떠났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여배우

1980년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배우 금보라.

김수용 감독의 눈에 띄어 ‘물보라’로 데뷔한 그녀는 데뷔작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받으며 ‘영부인을 꿈꿨던 배우’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전성기 속에서도 뜻하지 않은 시련은 찾아왔다.

1986년, 한 잡지의 허위 보도로 인해 낙태 루머와 동거설에 휘말리며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해당 언론인은 명예훼손으로 구속됐다.

결국 금보라는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긴 공백기를 맞는다.

1989년, 금보라는 연세대 응원단장 출신의 미남 사업가 오재희와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다.

육아와 가사에 집중하면서도 드라마에 간간이 복귀했지만, 결혼 생활은 점점 균열을 보였다.

전 남편의 사업 실패, 성격 차이, 경제적 부담. 결국 13년 만인 2002년, 이혼을 택한다.

“아이 운동회에서 ‘아빠와 달리기’ 경기가 있었어요. 아들이 함께 뛸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펐죠.”

당시 금보라는 이혼 후 혼자 세 아들을 키우며 ‘이혼녀’라는 낙인과 싸워야 했다.

녀가 선택한 이혼은,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자 아이들을 위한 ‘최선’이기도 했다.

2005년, 금보라는 지금의 남편 김성택을 만나 인생의 후반전을 다시 시작한다.

처음 만남은 와인을 둘러싼 소소한 인연에서 시작됐고, 성격대로 솔직했던 금보라는 첫 키스도, 프러포즈도 자신이 먼저 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고 기분이 좋아서 그랬어요. ‘우리 뽀뽀 한 번 하죠. 돈 드는 것도 아닌데’라고 했죠.”

남편 김성택 역시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이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공허함과 외로움에 천천히 기대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을 뒤늦게 올렸다.

그러나 새출발이 마냥 따뜻했던 건 아니다.

세 아들은 금보라의 재혼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한동안 연락도 하지 않았다.

“결혼은 꿈도 꾸지 마”라며 단호한 메시지를 보냈고, 재혼 이후 몇 년간은 아무 소식도 없었다.

심지어 막내는 운동선수를 꿈꿨지만 금보라의 반대 끝에 아버지를 선택해 떠났다.

그녀는 말한다.

“그땐 나도 많이 부족했고, 아이들도 어렸다.시간이 흘러서야 서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재는 오히려 장성한 아들들이 서로에게 “엄마에게 연락 자주 해라”는 말을 한다.

금보라는 여전히 자녀들을 향해 미안함과 애틋함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지금 금보라는 남편 김성택, 전 남편 사이의 세 아들, 그리고 김성택의 두 딸과 함께 여섯 식구의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엄마’라는 호칭이 아직 어색한 딸들, 그 시절 미워했던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는 아들들.

쉽지 않은 가족 관계 속에서도 금보라는 말한다.

“재혼은 초혼보다 훨씬 어렵지만, 확실한 믿음만 있다면 해볼 만한 도전이에요. 누구나 두 번째 인생엔 조금 더 따뜻해질 권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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