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제조업의 몰락, 패밀리오피스의 성장

#1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게임 덕분에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조 단위의 현금을 보유 중인 A 게임사. 이 회사는 몇 년 전 서울 성수동의 부동산을 사들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던 A 게임사는 성장의 기반을 쌓았던 판교 사옥을 뒤로 하고 서울 강남 일대의 고급 오피스로 본사를 이전했다. 이유는 단 하나, A+급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판교도 좋은 지역이긴 하지만 서울 강남은 인재 등급이 한단계 더 올라간다”며 “요즘 양질의 인재들은 서울 밖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A급 인재의 지역 하한선을 삼성이 위치한 용인 기흥으로 잡았는데 이것도 옛날 얘기”라며 “서울 집중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 수도권에 대규모 지식산업센터를 공급하며 사세를 급격히 키운 B 시행사. 이 회사 오너에게는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있었다. 자신의 사업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회사로 출근시켰지만 1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사업 특성상 지방 출장도 잦았고 업계 종사자들의 성향도 거칠고 험한 탓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결국 백기를 든 그녀는 커피숍 사업으로 방향을 180도 틀었다. 시행업에 비하면 훨씬 세련되고 부드러워 보이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덕분에 서울 인근에 다수의 대형 커피숍을 여는 등 사업은 순항 중이다.

#3 경남 창원에 위치한 C 제조사. 이곳의 창업자는 요즘 고민이 깊다. 아들이 세 명이나 되지만 아무도 가업 이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서울과 해외로 유학을 보냈는데 창원으로 내려오라고 하면 아연질색이다. 이들이 아버지에게 펼치는 주장은 똑같다. “힘든 제조업 이제 그만 정리하고, 그 돈으로 차라리 금융업이나 투자업을 하자”는 것이다. 창업자는 자신이 평생을 쏟아 부은 이 공장을 팔자는 생각에 몸서리를 치지만 한편에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업황 탓에 아들들의 제안이 솔깃해지기도 한다.

MZ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도통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고 SNS 대화에만 열중한다.” “조금만 고생스러워도 금방 포기하고 편한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노린다.” 수년째 듣는 얘기이지만 이 같은 트랜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해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잡기 마련이다. 흐름을 뒤엎을 수는 없다.

이 같은 뉴노멀은 생각지도 못한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패밀리오피스의 급증이다.

이미 일진머티리얼즈와 카버코리아, 한샘, 컴포즈커피, 오스템임플란트를 매각한 오너 일가가 패밀리오피스를 차린 뒤 적극적인 투자활동을 펼치고 있다. 패밀리오피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이민주 회장도 여전히 건재하다. 이들의 두각은 PE라는 새로운 엑시트(투자금 회수) 수단이 생긴 덕분이다. 향후 MZ세대들이 경영권을 넘겨받으면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MZ들의 제조업 이탈 덕분에 자본시장의 오랜 숙원이었던 민간 LP(출자자) 비중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VC와 PE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LP는 정책자금과 은행권의 비중이 절반에 달했다. 수익성과 별개로 산업 육성 차원에서 꾸준히 자금을 공급해준 덕분에 VC와 PE시장의 성장을 이끌긴 했지만 천편일률적인 펀드 기간과 구조 탓에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처럼 민간 LP의 비중을 끌어올리는 게 오랜 숙제였는데, 최근 패밀리 오피스의 부각으로 해결책이 나타난 셈이다. 제조업의 몰락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부정적인 면만 바라볼게 아니다.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큰 틀에서 우리가 몰랐던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이상균 IB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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