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음으로 ‘오너’ 책임 물었다…삼표 회장 기소

장현은 2023. 4. 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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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지난해 2월 1일 당시 경기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사고 현장에서 구조당국이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는 모습. 소방청 제공,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 1년2개월여 만에 기업의 소유주(오너)가 기소되는 첫 사례가 나왔다. 중대재해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 규정을 피하기 위해 기업 오너들이 ‘월급 사장’이나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내세우는 문제가 지적되어 온 가운데, 검찰이 이같은 형식적 직함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최종적 권한 행사’ 여부를 기소 원칙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대재해법 오너 기소’ 첫 사례는 지난해 1월29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틀 만에 노동자 3명이 토사에 매몰돼 사망한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채석장’ 사건이다. 의정부지검 형사4부는 지난달 31일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종신 대표이사 등 임직원 6명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정 회장이 아닌 이 대표이사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바 있는데, 검찰은 중대재해법 위반 당사자를 이 대표이사가 아닌 정 회장으로 새롭게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중대재해법으로 기소된 11건은 모두 ‘대표이사’가 기소된 사건으로, ‘오너’가 기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정부지검은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에 대해 “안전보건 업무에 관한 실질적·최종적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면 ‘직함에 관계없이’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정 회장이 △사고현장 채석작업 방식을 ‘직접’ 결정한 점 △사고현장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점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에 안전보건 업무 등에 관한 ‘구체적 지시’를 내린 점 등을 근거로 ‘실질적·최종적 권한을 행사했다’고 봤다.

실제 정 회장은 양주 채석장 사업 관련 보고뿐만 아니라 안전 업무에 대해서도 월례보고 등 정기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가 안전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직접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제 삼표그룹 매출의 절반가량이 채석과 관련된 분야에서 나오는 만큼 정 회장은 양주 사무소 채석량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 회장이 거의 대부분 보고를 받고 지시까지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이 구체적으로 임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했다는 점, 안전보건 업무를 포함한 주요 경영상 결정을 정 회장이 했다는 부분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소가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사람을 경영책임자로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영국 변호사(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는 “의정부지검이 낸 자료를 보면, 중대재해법 입법 취지를 강조하면서 ‘경영책임자’의 정의에 대한 해석의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했다”며 “기소율이 5%도 안되고 법원 선고도 늦어지면서 기업의 긴장감이 사라진 상황이었는데,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의미있는 기소”라고 말했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삼표산업 말고도 대표이사들을 기소한 11건 가운데 ㅇ사의 경우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표이사를 기소한 사례로 검찰이 중대재해법 입법 취지에 맞춰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건 발생 1년2개월 만에 기소가 이뤄지는 등 산적한 중대재해 사건 수사와 기소, 재판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부 기업들이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선임하는 등의 방식으로 중대재해법 처벌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대재해법 무력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노동부는 지난 1월 “기업이 유해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등 사전적 예방 노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시이오(CEO·최고경영자) 처벌을 면하는 부분에 집중된 것 같다”고 짚기도 했다.

다만 삼표산업은 특수한 사례로, 기업 오너가 기소되는 사례가 추가로 나오거나 일반화될 지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 교수는 “향후 다른 중대재해법 사건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판단이 쌓여야 하지만 아직은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별로 구체적으로 판단해서 대표이사가 다 했다고 하면 경영책임자가 되는 것이므로, 이 사례가 일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단순히 사업 돌아가는 정도만 보고받고 했으면 경영책임자라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현은 신민정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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