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현의 피치아웃] '광속구' 잃은 A등급 불펜의 딜레마... KIA의 '윈나우' 실패가 남긴 악성 재고와 차가운 현실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의 온도는 성적순이 아니다. 때로는 철저한 '가성비'와 '미래 가치'가 그 온도를 결정한다.
불과 1년 전, 리그를 뒤흔들었던 '빅딜'의 주인공이 맞이한 겨울이 이토록 혹독할 줄 누가 알았을까. KIA 타이거즈의 조상우 이야기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KIA

지난 겨울, KIA는 그야말로 승부수를 던졌다.
불펜 마당쇠 장현식의 이적 공백을 지우고 대권 도전을 위해 키움에 2026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와 4라운드 지명권, 그리고 현금 10억 원을 얹어주는 출혈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조상우라는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 그리고 '우승 청부사'로서의 기대치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 화려했던 승부수는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디펜딩 챔피언의 8위 추락, 그리고 시장의 냉대 속에 남겨진 '미계약자' 조상우의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기록만 놓고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72경기 60이닝, 6승 6패 28홀드, 평균자책점 3.90. 팀 내 홀드 1위라는 타이틀은 겉보기에 나쁘지 않다.

그러나 프런트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기준은 '누적 스탯'이 아닌 '세부 지표'와 '추세'다.
냉정히 말해 지금의 조상우는 우리가 알던 그 '언터처블' 파이어볼러가 아니다.

가장 뼈아픈 건 구속 저하다. 전광판에 150km/h를 심심치 않게 찍던 광속구는 이제 평균 145km/h 언저리로 내려앉았다.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지 못하니 기복이 심해졌다. 4월과 6월에는 철벽같았지만, 5월(ERA 7.82)과 7월(ERA 14.21)에는 배팅볼 투수나 다름없었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0.84라는 수치는 그가 더 이상 리그를 지배하는 'S급' 불펜이 아님을 냉혹하게 증명한다.

여기에 'A등급'이라는 훈장은 오히려 족쇄가 됐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구속이 떨어진 불펜 투수를 영입하기 위해 보호선수 20인 외 유망주 1명과 전년도 연봉의 200%(8억 원)를 보상해야 한다는 건 타 구단 입장에서 '자살골'이나 다름없다.
보상선수 없이 데려가려 해도 12억 원을 내야 한다. 가뜩이나 불펜 자원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가성비가 떨어지는 매물에 거액을 베팅할 '호구' 구단은 없다.
협상 테이블의 갑(甲)은 명백히 원소속팀 KIA다.
상황은 묘하다.
박찬호(두산), 최형우(삼성), 한승택(KT) 등 내부 FA들이 줄줄이 이탈하며 KIA의 곳간에는 25억 원 안팎의 보상금이 쌓였다. 실탄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KIA는 서두르지 않는다. 이미 '윈나우' 전략이 실패로 돌아간 마당에, 계륵이 되어버린 불펜 자원에게 '오버페이'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홍건희 등 대체 자원이 시장에 있다지만 조상우만 못하고, 내부 유망주 곽도규의 복귀는 기약이 없다.
결국 KIA도 조상우가 필요하긴 하다. 단, '합리적인 가격'일 때만 그렇다.
조상우에게 이번 FA는 '대박'을 터뜨리는 축제가 아니라, 프로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처절한 전장이다.
KIA는 냉정하게 시장의 온도가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고, 조상우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1R 지명권+10억'이라는 거대한 기회비용을 치르고 데려온 투수가, 이제는 처분하기도 안기도 애매한 딜레마가 되어 돌아왔다.

화려했던 광속구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조상우와 KIA가 작성하게 될 계약서에는 과연 어떤 숫자가 찍히게 될까?
확실한 건, 그 숫자가 1년 전의 기대치보다는 현저히 낮을 것이라는 점이다.
'윈나우'를 외치며 호기롭게 광주로 내려왔던 조상우의 겨울이 유난히 시리고 길게 느껴지는 이유다.
글/구성: 민상현 전문기자, 김PD
#조상우의 통산 투구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