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의 밥상 - ‘우짜’ 맛 알고 싶으면 세 번은 먹어라 [전국 인사이드]
짜장 맛이 나는 우동일까, 우동 맛이 나는 짜장일까. 식당 사장은 ‘세 번은 먹어봐야’ 진미를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단골손님들만 은밀하게 찾는 해장 음식이었고,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통영 사람들만 즐겼다던 그 음식, 바로 ‘우짜’다.
우짜는 짐작하겠지만 우동짜장을 줄인 말이다. 우동에다가 짜장소스를 부어놓은 음식이다. 고명으로는 단무지·어묵·파·고춧가루·통깨·김가루가 올라간다. 쉬이 그 맛을 가늠할 수 없어서 외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외지로 떠난 통영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이다. 명절 때면 고향에 돌아와 우짜를 후루룩후루룩 먹고 배를 뜨끈하게 채워야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식당 사장님 말로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오는 단골손님들이 많다고 하니 그 맛은 가히 중독적이리라.
원조 집인 ‘할매우짜’는 서호시장 골목에 있다. 항구를 낀 서호시장을 걸으면 배릿한 바다 냄새가 난다. 수족관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 직접 손질한 물고기를 바닥에 내놓고 파는 상인들도 보인다. 그 틈에 우짜 집이 끼어 있다. 가게에 들어가 망설일 것도 없이 우짜를 주문한다. 사장님은 뜨끈한 우동을 한 손에 들고 커다란 밥솥의 뚜껑을 연다. 그 안에서 짜장소스를 한 국자 떠서 올린다. 짜장소스는 기성품이냐고 물으니 무슨 소리냐는 듯 “직접 만드는 게 더 싸요”라고 말한다.
식탁 위에 올라온 우짜를 보자니 우동면 위로 짜장소스와 각종 고명이 소복이 쌓여 있다. 순간 이걸 섞는 게 맞는지 아리송하다. 그 찰나에 사장님은 초보 손님에게 “잘 섞어서 국물과 함께 드셔보세요”라고 말한다. 면을 휘휘 저을수록 국물 색이 탁해진다. 면에도 소스가 배더니, 생김새가 우동에서 국물 자작한 짜장으로 변모한다. 이때쯤이면 이건 짜장면 맛이겠거니 판단이 서는데 면을 한 젓가락 먹어보면 곧바로 오판임을 알게 된다. 디포리 육수의 깊은 맛을 깔고 시작하는데, 익히 아는 일본식 우동 맛이라기보다는 국수에 가깝다. 이 육수의 맛이 부모님의 너른 품이라면 존재감을 마구 드러내려고 하는 녀석은 짜장소스다. 짜장소스의 달고 짠맛이 육수와 어우러져 혀 깊숙한 곳을 당기게 한다. 그 구미를 당기는 감칠맛이 수위를 넘으려 할 때 고춧가루의 칼칼함이 이를 잡아준다. 그릇을 비워갈수록 얼큰한 뒷맛이 많이 남는 편이다. 가히 해장 음식이라고 할 만하다. 면 식감도 재미난데, 우동처럼 통통한 면이 아니다. 차라리 짜장면 면 굵기에 가까운 편이다. 요즘은 쫄깃한 식감을 선호하지만 우짜는 정반대다. 씹으면 면이 툭툭 끊긴다. 옛맛을 고수하는 듯하다. 대신 시간을 두고 먹으면 면이 국물을 흡수하면서 첫맛과 끝맛이 달라진다.
할매우짜 3대 사장 이미숙씨(60)는 새벽 6시에 출근해 밴댕이 육수를 1시간30분 동안 우려낸다. 우짜 맛을 좌우하는 요소도 바로 이 밴댕이 육수일 테다. 1·2대 사장은 새벽 4시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때는 낚시꾼들과 인근 나이트클럽에서 마감 시간까지 유흥을 즐긴 이들이 아침을 여는 해장 음식으로 우짜를 먹곤 했다고. 그때만 해도 간판도 없어서 ‘거지 우동’으로 통했다. 싼값에 따뜻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때 그 기억에 지금도 우짜 가격을 쉽게 못 올리고 있다. 5500원에 판다.
이미숙씨는 스무 살에 이 가게를 알게 됐다. 1대 사장 석분도씨가 만들어주는 우동 국물이 입에 맞았다. 텁텁하지 않고 깔끔해서 좋았다. 이씨는 1·2대 사장을 ‘엄마’라 부를 정도로 가게를 자주 드나들었다. 우짜라는 별미가 있는 것은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단골 10년 차 때 그 국물의 비법을 전수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친정엄마가 아프면서 식당을 차릴 엄두는 못 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2년에야 이씨는 비법을 전수받게 됐다. 그의 나이 마흔여덟 살 때다.
할매우짜는 간판 그대로 할매의 우짜 맛을 고수한다. 맛을 개량한다든지, 다른 메뉴를 늘릴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이씨는 옛맛 그대로 변하지 않도록 하는 걸로 족한다. 마치 라디오방송 같은 것이다. 잠깐 잊고 지내다가 문득 기억이 나서 주파수를 맞추면 반가운 시그널 음악과 목소리가 변함없이 흐르듯이, 우짜의 맛도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이 음식은 적어도 세 번은 먹어봐야 훗날 그 맛을 추억할 수 있다. 이씨는 먼 발걸음을 하는 관광객들에게는 “괜히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묘한 우짜의 맛을 느끼려면, 별수 있겠는가? 통영으로 갈밖에. 과연 이 음식은 짜장 맛이 나는 우동일까, 우동 맛이 나는 짜장일까.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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