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참 정직하다. 말로는 뭐든 할 수 있지만, 공이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핑계가 사라진다. 그리고 버치 스미스는 시범경기 개막전부터 그 정직함을 아주 크게 맞았다. 그것도 하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이름값 ‘애런 저지’에게 말이다.

스미스는 양키스전 3회에 두 번째 투수로 올라와 1이닝 동안 안타를 4개 맞고 2실점했다. 출발부터 도밍게스에게 2루타를 맞더니, 다음 타자 저지에게 투런포를 헌납했다. “낮게 던진 커터”라고 포장해도 결과는 똑같다. 저지가 친 공은 담장 밖으로 넘어갔고, 스미스의 시범경기 첫 인상은 ‘맞아 나간다’로 찍혔다.
여기서 사람들이 더 씁쓸하게 웃는 이유는, 스미스가 야구만 못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화에서 딱 한 경기, 그것도 개막전에서 2⅔이닝 던지고 어깨 통증으로 내려갔던 그 투수. 이후 재활이 길어지면서 팀을 떠났고, 떠난 뒤에는 SNS에서 한국 팬들과 설전을 벌이며 “쓰레기 나라에서 잘 지내” 같은 말을 남겼다는 논란이 따라붙었다. 야구로 답해야 할 시점에, 굳이 말로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러니가 더 진해진다. 그 ‘쓰레기 나라’에서 던졌던 2⅔이닝은 그래도 그에게 기회였다. 적어도 외국인 선발로 개막전을 맡겼고, 팀도 부상 소견을 “미세 손상”이라고 설명하며 기다려줬다. 하지만 스미스는 그 시간을 지혜롭게 쓰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KBO 최단기 흑역사 외인’ 같은 꼬리표를 달고 나갔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오래 따라다니는 걸, 그때는 몰랐던 모양이다.

이제 다시 미국 무대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은 더 냉정하다. 스미스는 30대 중후반(36세)이고, “압도적인 구위”로 밀어붙일 수 있는 젊음도 아니다. 시범경기는 초청 선수에게 거의 면접장이나 다름없다. 특히 마이너 계약을 한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첫 등판이니 감각” 같은 말은, 성적표를 바꾸지 못한다.
게다가 스미스의 투구 내용은 깔끔하지 않았다. 홈런 한 방이야 ‘시범경기니까’라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공이 존에 들어오면 맞고, 빠지면 볼이 되면서 카운트가 몰린다는 점이다. 한가운데 들어간 90마일대 포심은 2루타가 되고, 낮게 깔린 커터는 저지의 배트에 걸려 중앙 담장으로 날아간다. 그다음엔 연속 안타까지 맞으며 이닝이 길어진다. 이런 장면은 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경기 못 잡는 투수”의 전형이다.

여기서 더 웃픈 포인트는, 스미스의 상황이 ‘되돌릴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나이가 많고, 커리어는 길지만 최근 흐름은 우상향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불펜으로 버티던 시기도 있었지만, 작년 마이너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기록이 계속 따라온다. 결국 선택지는 간단해진다. “이번에 증명해서 올라가든지, 아니면 내려가든지.” 그 중간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스미스의 이야기가 더 비웃음 섞인 온도로 소비되는 건, 야구 외적인 태도 때문이다. 보통 선수는 부진해도 ‘아쉽다’ ‘다시 해보자’가 붙는다. 그런데 스미스는 한국을 떠나며 굳이 선을 넘었고, 그 한마디가 스스로 방어막을 걷어찼다. 그래서 지금 그의 부진은 단순한 스포츠 뉴스가 아니라, “말은 크게 했는데 공은 작다”는 풍경으로 보인다.
물론 야구는 반전의 스포츠다. 스미스가 다음 등판에서 구위를 끌어올리고, 코스를 낮게 깔아 땅볼을 늘리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그 반전이 생기려면, 최소한 “저지에게 얻어맞는 투수”가 아니라 “저지를 피하는 투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결국 경기력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팬들은 ‘말’보다 ‘공’을 먼저 본다.

결국 오늘의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을 비하하고 떠났던 투수가, 시범경기 첫날부터 저지에게 탈탈 털렸다. 그게 누군가에겐 통쾌한 장면일 수도, 누군가에겐 씁쓸한 교훈일 수도 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야구장은 SNS가 아니다. 야구장은, 한 번 던지면 끝까지 기록으로 남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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