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밴드 오아시스 공연 티켓값이 쏘아올린 ‘다이내믹 프라이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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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대표곡으로 전 세계 브릿팝 팬들을 설레게 했던 영국 밴드 오아시스가 15년 만의 복귀와 함께 팬들을 성나게 만들었다. 원인은 오랜만의 복귀와 함께 열기로 한 콘서트의 티켓 값. 주말 아침부터 알람을 맞춰놓고 티켓 예약 사이트에 접속한 전 세계 오아시스 팬들은 당초 알려진 148.5파운드(약 26만원)의 2~3배 수준인 355.2파운드까지 오른 티켓 값에 깜짝 놀랐다.
성난 팬심이 들끓자 결국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까지 나서서 규제를 예고했고, 유럽연합(EU)도 가격 급등의 근본 원인인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유동 가격제)’에 대한 조사 계획을 밝혔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무엇이길래 티켓 가격을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최근 오아시스 고가 티켓을 계기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다이내믹 프라이싱에 대해 WEEKLY BIZ가 다섯 가지 질문을 통해 정리했다.
◇1.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무엇인가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가격을 유동적으로 바꾸는 가격 전략을 말한다. 판매자는 수요와 공급을 고려해 가격을 정해 준비한 제품을 가능한 한 모두 팔고, 그러면서도 가능한 한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 소비자도 해당 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 시점엔 평소 가격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한국 소비자에게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가장 익숙한 공간은 수산 시장이다. 상인들은 생선의 조업량은 물론이고 제철 여부, 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많은지, 시장 문 닫을 시간이 임박했는지 등을 고려해 생선 가격을 결정하고 이를 ‘시가’라는 가격표를 내걸어 판매한다. 이것이 곧 다이내믹 프라이싱인 셈이다. 비 오는 날이나 심야에는 더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는 대리운전 비용이나 우버(대표적인 승차 공유 서비스) 택시 비용도 일종의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가장 두드러지는 다이내믹 프라이싱 적용 사례는 호텔이나 항공기 예약할 때 경험하게 된다. 해당 업계는 비수기가 비교적 명확히 정해져 있어서 가격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아마존이나 쿠팡 등 이커머스 업계도 다이내믹 프라이싱 기법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상품 가격을 조정한다.
◇2. 최근의 변화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최근 급격히 적용처를 늘려가고 있다. 실시간 공급과 수요를 예측할 수 있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가격 자체를 실시간으로 바꿔 보여주는 전자 가격표까지 등장하면서다. 일본 대형 가전 유통 업체인 노지마는 2019년 모든 매장의 상품 표시 장치를 원격 조정이 가능한 디지털 액정으로 교체하고 다이내믹 프라이싱 전략을 도입했다. 매출·재고 상황, 경쟁사 가격 등을 분석해 액정에 표시되는 가격표에 반영한다. 국내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우유나 라면 같은 가격 민감도가 높은 제품은 인근 경쟁 대형 마트와 가격 비교를 한 뒤 매번 손으로 갈아끼우곤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스포츠 경기와 놀이공원도 날씨나 성수기 여부 등을 고려해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하고 있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에서 사용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 정책을 한국 프로야구 NC다이노스도 2022년부터 적용했다. 이 구단은 요일·상대 팀·순위·전적·날씨 등을 고려해 매번 다른 가격으로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레고랜드를 운영하는 영국의 멀린엔터테인먼트도 비 오는 날 등 비수기에 가격을 할인해주는 정책을 쓰고 있으며,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미국의 식당 체인 ‘피아다’는 배달 주문 고객을 대상으로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 가격을 올려 받고 있다.
◇3. 어쩌다 공연에도 적용했나
이런 다이내믹 프라이싱 정책을 공연 시장에 들여온 것은 미국 내 공연 티켓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티켓마스터였다. 티켓마스터는 당초 공연 티켓에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하면서 ‘암표 근절’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처음부터 소비자가 감당 가능한 최고 수준까지 가격을 높여 팔면 암표상 입장에선 해당 가격에 티켓을 산다고 하더라도 되팔기도 어렵고, 되판다 하더라도 차익 실현이 어려워진다는 논리였다.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돌려 티켓을 사실상 쓸어가는 전문 암표상이 공연 시장을 흐려놓는 상황에 이르자 이런 주장은 더욱 힘을 얻었다. 암표상에게 수익이 돌아가게 하느니 공연자에게 더 많은 수익이 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티켓 2차 판매 사이트가 공공연히 운영되던 영미권에선 암표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가수 채플 론은 “사기꾼들이 쓸어간 티켓을 팬들에게 돌아가게 하겠다”며 특정 사이트에서 판매된 티켓을 모두 강제 취소시키기도 했다. 16만5000원인 티켓의 암표 값이 550만원까지 뛰는 임영웅 콘서트 같은 사례가 영미권에선 수시로 일어나고 있단 뜻이다.
◇4. 무엇이 문제인가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문제는 ‘너무 올라간 가격’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티켓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접속자와 해당 가수의 영향력 등을 모두 고려해 가격이 경매처럼 결정되다 보니 실제 티켓 판매 가격이 시작 가격보다 두세배씩 오르기 일쑤였다. 이에 대중 가수의 공연이 돈 많은 사람만 갈 수 있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호주의 소비자 권리 단체 초이스는 가디언에 “미국에서 시작된 이 트렌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가가 얼마인지 모르게 혼란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며 “수요가 적을 땐 할인된 가격을 제공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런 사례를 목격한 이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희소성을 강조해서 가격 인상을 부추기는 다이내믹 프라이싱 정책으로 수수료를 먹고 사는 티켓마스터가 돈을 벌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정책을 도입하는 최대 명분이었던 암표 근절 역시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 이번 오아시스 콘서트 티켓 역시 2차 판매 시장에 나와 시세가 6000파운드까지 올랐다. 당초 정가처럼 올라왔던 가격의 40배까지 치솟은 셈이다.
◇5. 다이내믹 프라이싱 정책, 타격받을까
고가 판매 불만이 터지는 다이내믹 프라이싱 정책은 사라지거나 축소될까. 당장은 빅데이터·AI 등 발달과 함께 적용처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막을 수는 없을 전망이다. 다만 각계에선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가격 상한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오아시스의 문제는 팬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가격에 비해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는지를 몰랐던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잠재적인 가격 책정 시나리오를 미리 명시하거나 가격 상승 상한선을 두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데이비드 존스 케임브리지 경제정책 연구소 이사는 캐나다 글로브앤드메일에 “악당은 다이내믹 프라이싱 자체가 아니다. 적절한 맥락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 디지털화,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 및 AI가 발달함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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