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는 사랑, 뱅크시 & 키스 해링 전시회

안녕, 에디터U다. 혹시 어린 시절 거실 벽지나 책상에 낙서해 본 적이 있을까? 그렇다면 예술가가 될 재목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 그래피티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두 사람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뱅크시와 키스 해링. 두 예술가의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앤 키스 해링》이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고 있다. 태어난 곳도, 활동 시기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묶어준 키워드는 바로 ‘사랑’. 에로스적인 사랑을 넘어 인류애적 관점의 사랑부터 모성애, 동성애 등 모든 종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뱅크시와 키스 해링에게 잘 어울리는 주제다.

이번 전시에서는 뱅크시의 대표 작품 19점, 키스 해링의 대표 작품 13점을 만나볼 수 있다. 뱅크시를 대표하는 문제작 <사랑은 쓰레기통에>를 비롯한 일부 작품이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특별한 자리이니 꼭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사전 예약은 여기((https://bit.ly/3LQibGi))서 할 수 있다.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예습은 필수다. 아무것도 모르고 전시장에 갔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작품에 대한 1차원적인 감상평만 남게 된다. 하지만 약간의 공부를 선행하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품 뒷면의 세계까지 이해할 수 있다. 미리 공부하고 간 작품을 봤을 때 내적 친밀감이 있는 지인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까지 하니, 당연히 기억에도 더 오래 남는다. 만족스러운 전시 관람을 위해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를 준비했다. 미술 시장에 ‘테러’에 가까운 작품을 투척하는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와 1980년대 뉴욕을 휩쓸며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 간 예술가 키스 해링. 그들에 대해 함께 알아보자.

  • 전시 기간 : 9월 5일 ~ 11월 5일
  • 전시 장소 :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해안남로321번길 186, 파라다이스시티

거리 위의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Banksy

뱅크시는 누구인가.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화가이자 그래피티 아티스트, 사회운동가이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수십 가지이지만, 뱅크시는 자신을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 불법을 개의치 않고 전 세계 곳곳에 사회를 비판하는 파격적인 작품을 남긴 후 홀연히 사라지니, 이를 단속해야 하는 당국 입장에서는 테러가 맞기도 하겠다. 뱅크시는 자칭 테러리스트답게 정체를 꽁꽁 감추고 있다. 출신지는 어디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다만 초기 활동 지역과 시기, 그를 실제로 만났다는 극소수의 증언으로 유추하건대 1974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백인 남성으로 ‘추정’될 뿐이다. 어떻게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아티스트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정체를 숨길 수 있었을까?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뱅크시에게 엄청난 뒷배가 있을 것이며 뱅크시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는 둥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마일드 마일드 웨스트, 1999>

뱅크시가 처음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낸 건 1999년, 영국 브리스톨 시내 상가에 그린 벽화가 알려지면서부터다. 귀여운 테디 베어가 경찰들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그림은 1998년 브리스톨에서 일어난 무허가 파티 과잉 진압 사건을 직접적으로 꼬집었다. 이 벽화 덕분에 뱅크시는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아티스트가 된 건 비단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팩햄 바위, 2005>

뱅크시는 미술계를 들썩이는 이단아적 행보를 보였다. 일례로는 대영박물관에 쇼핑 카트를 미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을 몰래 진열하는 이른바 ‘도둑 전시’를 행한 적 있다. 실제로 그 박물관이 내건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함께 걸려있는 작품의 특징과 그림이 담긴 액자, 캡션을 완벽하게 흉내 냈다. 그 결과 대영박물관에 전시한 돌은 3일 동안 발각되지 않았다. 마치 ‘박물관에 내 그림 몰래 걸고 튐’ 이라는 제목의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 소재 같은 이 퍼포먼스는 예술을 겉치레로만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뱅크시는 2003년 런던 테이트 박물관에서 시작해 2004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런던 국립 역사 박물관, 2005년 런던 대영박물관, 그리고 MoMA, 메트로폴리탄 등 뉴욕 박물관 4곳까지, 약 2년에 걸쳐 8군데에서 도둑 전시를 선보였다. 당시 유명 박물관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단속을 강화했다고 알려졌지만, 막상 도둑 전시의 피해자가 된 브루클린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은 범행을 발각한 후에도 얼마간 작품을 철거하지 않고 유지했다. 심지어 대영박물관은 뱅크시가 전시한 돌을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뱅크시는 이 일로 붙잡히거나 어떠한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그가 들키지 않고 범죄이자 예술을 지속할 수 있는 ‘뒷배’는 어쩌면 따로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풍선과 소녀, 2006>

정작 뱅크시가 미술계를 충격에 빠트린 가장 큰 사건은 따로 있다. 때는 2018년 10월, 뱅크시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가 처음으로 경매장에 나왔다. 작품이 104만 파운드(약 16억 원)에 낙찰되는 순간 뱅크시는 액자 내부에 몰래 장착해 둔 파쇄기를 원격으로 가동했고, 낙찰된 그림의 절반이 갈려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뱅크시는 작품에 <사랑은 쓰레기통에>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사전에 파쇄기를 설치하고 리허설에서 그림이 완전히 갈려 나가는 모습,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후 경매장의 혼란스러운 모습까지도 고스란히 담겼다. 마치 그가 연출한 한 편의 코미디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특히 사회자의 밝은 얼굴과 당혹스러운 얼굴 사이로 파쇄 버튼을 누르는 영상을 교차로 편집해 넣은 장면에서는 바라던 대로 ‘테러’에 성공한 뱅크시의 희열이 느껴진다.

이렇게 뱅크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술 시장의 상업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비하인드는 그림이 절반만 파쇄된 게 기계 오작동으로 인한 실수였다는 거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3년이 지난 2021년, <사랑은 쓰레기통에>가 다시금 경매에 나왔고 가격이 18배 뛰어 무려 1,850만 파운드(약 301억 원)에 낙찰됐다. 작품을 ‘파괴’하려던 뱅크시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경매 도중에 작품을 ‘완성’하는 모양새가 된 거다. 게다가 미술 시장의 상업성을 공격할수록 뱅크시의 상업적 가치는 미친 듯이 치솟으니 이보다 더 모순된 상황이 있을까.

<풍선 없는 소녀, 2021>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앤 키스 해링》전에서는 이 희대의 문제작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최초로 공개하며, 작품에 붙인 새로운 이름도 공개했다. <풍선과 소녀>, <사랑의 쓰레기통에>를 뒤로 한 세 번째 이름은 바로 <풍선 없는 소녀>다.


<사랑은 공중에, 2006>

뱅크시의 예술 세계에서 아이러니와 해학은 중요한 요소다. 뱅크시는 이를 도구 삼아 권위, 폭력, 전쟁에 대항하는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사랑은 공중에>도 그중 하나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은 모자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폭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건 화염병이 아닌 꽃. 이 아이러니를 통해 뱅크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랑과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벽화 중심의 작업을 선보이는 뱅크시는 ‘스텐실’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미리 만들어 둔 틀 위에 물감을 칠하거나 잉크를 분사해 찍어내듯 빠르게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래피티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인 데다가 뱅크시는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니, 작업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 작품에도 스텐실 기법이 사용됐다. 독특한 점은 인물은 기계적인 스텐실 기법으로 그려졌지만, 손에 쥔 꽃만큼은 유화 기법으로 공들여 표현했다는 것. 이 강렬한 대비를 통해 뱅크시가 그림에 담은 메시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꽃의 힘> by Bernie Boston

<사랑은 공중에>는 1967년 반전 시위 도중 자신에게 겨눠진 경찰의 총구에 꽃을 꽂는 청년의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폭력에 대항하는 무기로 꽃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때문에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 반대를 위해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플라워 파워’ 운동에 대한 헌사로 해석되기도 한다.


<무기를 고르시오, 2009>

뱅크시 전시 구역에 입장하면 자연스럽게 이 그림에 시선이 사로잡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넓은 벽 한쪽을 혼자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를 고르시오>는 뱅크시보다 먼저 거리에 나와 그래피티를 예술의 영역에 들여놓은 키스 해링의 대표 아이콘 ‘짖는 개’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이 그림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림이 공개된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위협적인 개를 무기로 삼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던 ‘무기견’ 이슈에 대한 비판이라는 해석도 있고, 개성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풀이도 존재한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에 얼굴을 가린 채 등장했던 뱅크시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정체를 숨긴 그림 속의 남자는 어쩌면 ‘짖는 개’를 그린 키스 해링처럼 예술을 무기로 삼는 뱅크시 본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예술은 대중을 위한 것이다”
키스 해링Keith Haring

앞서 이야기했듯 키스 해링은 뱅크시보다 일찍이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키스 해링은 그래피티 아트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하위 문화로 낙인찍힌 장르를 예술로 인정받게 하고 뉴욕 미술계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인물이다.

1958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키스 해링이 뉴욕에 처음 발을 딛은 건 1978년 예술 학교에 입학하면서다. 뉴욕 거리 곳곳에 그려진 낙서를 보고 감명받은 그는 자신의 그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길 바라며 지하철역의 빈 광고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공공시설물 훼손 혐의로 경찰에게 잡혀간 적도 여러 번이지만, 이는 사람들에게 키스 해링을 알리고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Keith Haring 재단

건물의 벽, 거리, 지하철역, 클럽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던 키스 해링은 1982년 토니 샤프라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미술계의 스타로 거듭났다. 키스 해링은 부와 명성을 얻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딜레마에 빠졌다.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꿨던 그의 작품이 대중과 멀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시금 대중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기 위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바로 ‘팝 숍(Pop Shop)’이라는 이름의 굿즈샵. 1986년 뉴욕 소호 거리에 팝 숍을 열어 자신의 그림이 담긴 티셔츠, 스티커, 포스터, 장난감 등 굿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팝 숍은 누구나 마음껏 작품을 감상하고 일상 속에서 예술품을 소장할 수 있길 바라는 그의 가치관이 담긴 공간이었다. 뱅크시가 소수의 컬렉터만이 향유하는 예술을 비판하고자 작품을 파괴했다면, 키스 해링은 다수에게 예술을 선물하기 위해 더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마약은 인생을 망친다, 1986>
© Keith Haring 재단

키스 해링은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소외와 배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다. 개인 작품 속에 이런 신념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자선 단체, 병원, 보육원 등 복지 시설을 위한 공공 작품에도 자주 참여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마약을 경고하기 위해 그려진 벽화. 주황색 바탕 위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Crack is Wack(마약은 인생을 망친다)’이라는 글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당시 키스 해링은 이 벽화를 그린 후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벽화는 철거되기는커녕 이후 뉴욕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고, 2019년에는 복원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키스 해링은 1988년 에이즈 진단을 받고 2년 뒤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약 10년여 간의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나는 가능한 한 오래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리겠다”는 그의 다짐처럼 광고판과 앨범 아트 등의 상업 예술부터 50개 이상의 공공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고급 미술을 대중 미술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던 그의 작품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사랑 받으며 팝 아트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무제, 1985>
© Keith Haring 재단


뱅크시 존을 먼저 둘러본 후 키스 해링 전시 구역으로 들어오면 선글라스를 벗은 것처럼 갑자기 시야가 환해진다. 검은 색을 주로 사용하는 뱅크시와 달리 키스 해링은 밝고 강렬한 색채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굵은 선과 직관적인 묘사가 더해져 키스 해링의 작품은 한 번만 봐도 뇌리에 깊게 남는다.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만화처럼 단순한 표현 뒤에는 폭력, 전쟁, 섹슈얼리티, 차별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숨어있다.

키스 해링은 대부분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는데, 예술의 해석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는 굳은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5년에 제작된 이 대형 작품 역시 무제(無題)다. 제목이 없어도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가로 599cm, 세로 229cm의 대형 캔버스 위 그려진 두 손과 붉은 하트, 그리고 지구의 이미지는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제목을 붙이자면 ‘지구 평화’ 정도가 되지 않을까.


<무제, 1984>

키스 해링은 정해진 재료만을 사용하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벽이나 전통적 캔버스는 물론이고 종이 박스, 나무 합판 등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곳이 그에게는 도화지였다. 1984년 제작된 이 작품은 가로, 세로 각각 213cm의 커다란 공업용 비닐 방수포 위에 그려졌다.

키스 해링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작품 속에 아이와 임신한 여성을 자주 등장시켰다. 아이는 생명의 원초적 이미지이자 순수함을, 임신한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고귀한 존재를 상징한다. 아이와 여성의 모티브는 여기서도 등장한다. 양 쪽에 서있는 임신한 여성은 손을 굳건히 맞잡고 있고, 그 사이에는 성별과 나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위쪽에는 빛을 내뿜는 아이가 그려져 있다. 가장자리에 그려진 정자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창조를 상징한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인간의 몸에 대한 찬사를 축제처럼 생동감 넘치게 표현했다.


위에서 소개한 작품들을 비롯해 총 32점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는 오는 11월 5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국내에선 보기 힘든 작품들도 있으니 꼭 방문해보자. 이 기사가 전시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한몫했길!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앤 키스 해링》

  • 기간 : 9월 5일 ~ 11월 5일
  • 장소 :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해안남로321번길 186, 파라다이스시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