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샌프란시스코는 기대되는 팀 중 하나였다.

스토브리그 선수 영입에 총 3억2400만 달러를 투자했다.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준 이정후를 비롯해 블레이크 스넬(2년 6200만)과 맷 채프먼(3년 5400만) 등을 붙잡았다. 당장의 우승은 힘들어도 우승에 한 걸음 나아가는 전력으로 예상됐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직전 시즌보다 단 1승만 추가했다. 포스트시즌은커녕 5할 승률도 넘지 못했다. 2021년 107승을 거둔 이후 3년 연속 제자리걸음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성적 변화
2022 : 81승81패 .500 <지구 3위>
2023 : 79승83패 .488 <지구 4위>
2024 : 80승82패 .494 <지구 4위>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난 7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이 6차례 불발된 샌프란시스코는 후폭풍이 거셌다. 매서운 칼바람이 들이닥쳤다. 구단이 전권을 부여하며 힘을 실어줬던 파르한 자이디 사장이 경질됐다. 피트 푸틸라 단장도 자리에서 내려왔다. 2010년대 짝수해 신화를 뒤로하고 싶었던 이들은,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귀환
자이디는 실패했다. 특정 분야에 심취한 나머지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 데이터 야구를 지나치게 신봉했고, 과거의 스카우트 방식을 그저 구시대적 산물로 여겼다.
자이디는 클럽하우스에서 유의미한 공간도 정리했다. 클럽하우스 곳곳이 연구 개발 부서(R&D departments)로 가득찼다. 팀의 전통과 문화를 등한시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의하면 자이디는 클럽하우스에 붙여진 샌프란시스코의 영광이 담긴 사진과 포스터들도 떼도록 지시했다. 이 장면들을 지켜본 샌프란시스코 담당 기자는 "매우, 매우 이상하다"고 꼬집었다(“just very, very weird,” as one longtime beat writer noted).

자이디는 불명예 퇴진했다. 그 자리엔 버스터 포지가 취임했다. 포지는 샌프란시스코 역사상 최고의 포수다. 201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짝수해 왕조를 이끈 장본인이다.
자이언츠 포수 승리기여도 (레퍼런스)
44.8 - 버스터 포지
33.2 - 벅 유윙
21.6 - 잭 마이어스
19.0 - 해리 대닝
13.3 - 밥 브렌리
포지는 변화를 예고했다. 통계 분석이 구단 운영의 전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과거 스카우트들의 평가 방식도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구장 상황이나 선수들의 상호작용처럼 정량화할 수 없는 부분을 스카우트들은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There’s probably subtleties that they pick up, whether it’s on-field stuff or interactions that they see with the player and their parents or a player and their friends that maybe they can’t even articulate).
포지가 자이디와 차별화를 선언한 건 색다르지 않았다. 원래 새로운 수뇌부가 출범하면 기존 수뇌부와 선을 긋는다. 행적을 지우는 작업이다. 또 포지는 자이디와 달리 선수 출신이다. 자기가 보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구단의 재도약을 준비할 것이 당연했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선수 출신 구단 사장이 늘어나고 있다. 텍사스 크리스 영과 보스턴 크렉 브리슬로에 이어 샌프란시스코도 포지가 전면에 나섰다. 포지는 둘보다 선수로서 큰 족적을 남겼지만, 포수 출신답게 넓은 시야가 강점이다. 자신을 가둬두는 스스로의 한계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행보
바뀐 샌프란시스코는 빠르고 과감했다. 스토브리그 초반에 유격수 윌리 아다메스와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7년 1억8200만 달러는 팀 역사상 최대 규모다.
샌프란시스코가 아다메스를 노리는 건 비밀이 아니었다. 하지만 퀄리파잉 오퍼를 받은 아다메스를 영입하려면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해 사치세를 부과한 9팀 중 한 팀인 샌프란시스코는 퀄리파잉 오퍼 선수를 데려오면 이듬해 드래프트 지명권 두 장(2순위, 5순위)과 국제 유망주 계약금 100만 달러가 소멸된다. 이에 샌프란시스코가 퀄리파잉 오퍼 선수에 한해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이러한 예상을 깨고 아다메스 계약을 속전속결로 마무리했다. 이 계약을 추진한 포지 사장은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아다메스가 공격 강화와 더불어 내야 수비도 안정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아다메스는 샌프란시스코에게 꼭 필요한 타자였다. 161경기 32홈런 112타점을 기록했다. 30홈런 100타점 시즌을 만들어낸 샌프란시스코 타자는 2004년 배리 본즈 이후 나오지 않고 있다. 유격수는 뉴욕 자이언츠 시절을 포함해도 없었다. 아다메스의 홈런 파워는 현 유격수 중 최정상급이었다.
2021-24 유격수 최다 홈런
112 - 윌리 아다메스
112 - 코리 시거
110 - 프란시스코 린도어
96 - 트레이 터너
90 - 댄스비 스완슨
아다메스 영입은 샌프란시스코의 선전포고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 샌프란시스코는 더 이상 큰 돈을 쓰지 않았다. 투수 최대어 코빈 번스 영입설이 나돌았지만, 번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결국 번스는 같은 지구 라이벌 애리조나에게 뺏겼다.
샌프란시스코가 번스 대신 선택한 투수는 저스틴 벌랜더였다(1년 1500만). 올해 20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벌랜더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투수다. 지난해 17경기 5승6패 평균자책점 5.48에 그치면서 은퇴 위기에 직면했는데, 샌프란시스코는 벌랜더가 허용한 타구의 질을 보고 반등 요소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된 평균자책점(xERA) 3.78은 실제 평균자책점보다 확실히 낮았다. 타구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추가 영입이 어려웠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오늘보다 내일, 올해보다 내년이 적기에 가깝다. 하지만 선수들은 계약 기간 동안 FA 시장에 한 번 더 나갈 수 있는 옵트아웃을 넣고 싶어한다. 구단의 방향성과 계약의 유행이 어긋나면서 타협점을 찾기 힘들었다.
기대로 시작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스토브리그는 아쉬움으로 끝났다. 점점 멀어져 가는 라이벌 다저스의 스토브리그가 오히려 뜨거웠다. 두 팀의 온도 차이가 더 분명해졌다.
목표
선수 두 명으로 팀이 크게 바뀌긴 힘들다. 아다메스는 공수에서 기여할 수 있는 선수지만, 벌랜더는 건강하게 풀타임 시즌을 소화할지도 의문이다. 아무리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하다고 해도 세월 앞에 장사가 없는 법이다. 은퇴를 앞둔 42세 투수에게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참고로 벌랜더는 포지 사장보다 4살 더 많다.
예측 프로그램도 샌프란시스코의 현실을 대변한다. 2003년 네이트 실버가 고안한 <PECOTA>는 올해 샌프란시스코의 성적을 78승84패로 합계했다. 5할 승률이 되지 않았고,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도 13.2%였다. <팬그래프>가 제공하는 예측 프로그램도 81승81패였다. 두 기관 모두 지구 4위로 둔 것이 공통점이다.
이처럼 샌프란시스코는 올해 우승 전력이 아니다. 포스트시즌도 반전이 일어나야 노려볼 수 있다. 올해는 내부 성장을 도모하면서 또 다른 황금기를 향한 교두보가 돼야 한다.
밥 멜빈 감독도 '우승'을 강요하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첫 날 팀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We talked about what our identity is, what kind of team are we).

멜빈 감독은 우선 우리가 어떤 팀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홈구장 오라클파크 특성상 다득점 경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인 플레이를 잘 수행해야 접전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포지 사장은 작년 9월 연장 계약을 안겨준 맷 채프먼과 이번에 영입한 아다메스가 팀의 구심점이 되길 바라고 있다. 아다메스를 '함께 뛰고 싶게 만드는 선수'라고 표현했다. 아다메스는 마이너리거 시절에도 동료들 사이에서 리더로 불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이미 후배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포지 사장이 신경을 쓴 부분은 신구 조화다. 2009년 선수로서 처음 메이저리그에 올라왔을 때 은퇴를 앞둔 랜디 존슨이 있었다. 야수진에도 리치 오릴리아와 랜디 윈, 벤지 몰리나 등 노련한 선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 받은 젊은 세대가 2010년대 짝수해 왕조 중심으로 거듭났다.
올해 포지 사장이 꿈꾸는 것도 2009년 샌프란시스코처럼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정후
이정후도 중요한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37경기 타율 .262 2홈런, OPS 0.641을 기록한 이정후는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메이저리그 적응력을 높여야 하는 시기가 부상에 가로막혔다. 이정후에겐 시련의 계절이었다.
지난해 이정후는 초반에 승승장구했다. 데뷔 첫 안타와 첫 홈런, 첫 멀티히트 경기가 빨리 나왔다. 그러자 이정후의 타격 능력을 간파한 상대 투수들이 전력 피칭을 이어갔다. 이정후도 메이저리그의 '진짜 대응'에 주춤했다.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기 전 17경기 타율은 .226에 그쳤다. 67타석 동안 장타가 단 하나였고, OPS도 0.526에 불과했다.

물론 이정후가 그대로 주저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정후는 서서히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5월13일 부상으로 쓰러지기 전, 5월7일 멀티히트 경기, 5월8일 3안타 경기, 5월9일은 오랜만에 장타(2루타)를 터뜨렸다. 시행착오 끝에 타격감을 되찾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 사이 샌프란시스코는 격변기에 접어들었다. 이정후 영입을 주도했던 수뇌부가 해체됐다. 보장 계약이 큰 선수라서 곧바로 입지가 흔들릴 일은 없지만, 새로운 수뇌부에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적응기를 제대로 보내지 않은 측면에서 부담스럽다. 올해부터는 연봉도 1600만 달러로 오르고, 내년부터는 2200만 달러를 수령한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의 타순 조정을 귀띔했다. 지난해 출루율이 높았던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를 리드오프, 이정후는 3번타순에 배치할 것을 구상했다. 아직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실제로 이정후는 시범경기에서 3번타자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고민은 득점권 성적이었다. 득점권 타율이 내셔널리그 13위에 머물렀다. 3할도 안 되는 득점권 출루율 .299는 리그 최하위였다. 주자가 득점권에 있을 때 성적이 더 떨어지면서 점수를 뽑는 데 애를 먹었다.
2024 NL 득점권 팀 타율 하위
.244 - 컵스
.234 - 샌프란시스코 (13위)
.230 - 피츠버그
.229 - 세인트루이스
3번타순에 들어설 이정후는 이 고민을 해결해줘야 한다. 단순히 팀 타율을 높여야 될 뿐만 아니라, 득점과 직결되는 타율까지 개선하는 것이 이정후의 역할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이정후의 천재성이 발휘돼야 한다.
이정후는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타순도 어디든 상관없다는 반응이다. 어제 시범경기에서는 첫 홈런도 때려냈다. 콜로라도 최고 유망주 투수 체이스 돌랜더의 97마일 빠른공을 받아쳤다.
이정후는 달라지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역시 우리가 아는 이정후로 돌아와야 과거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다. 여전히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의 현재이자 미래다. 그리고 또 여전히 이정후의 숙명이, 샌프란시스코의 운명을 쥐고 있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