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대여는 범죄입니다” 하지만···통장 개설 문턱 높인다면?
당장 “통장 대여=범죄, 인식부터 확산돼야”

대포통장은 각종 금융사기 범죄의 ‘숙주’로 지목된다. 금융·수사당국 관계자들은 “대포통장만 없앤다면 관련 범죄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통장 개설이 쉬운 현실을 고려해 통장 개설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소비자 편의와 범죄 가능성 차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당장 ‘통장 대여’가 범죄라는 인식부터 확산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보이스피싱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금감원에 신고된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1만8791건으로 피해 금액은 3801억원에 달했다. 2023년(2만1401건·1965억원)보다 피해 건수는 감소했지만 피해액이 크게 늘어났다.
보이스피싱에 악용돼 지급 정지된 계좌 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6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에서 보이스피싱에 악용돼 지급 정지된 계좌는 3만2409건으로 2023년(2만7652건)과 비교해 17% 증가했다.
그간 대포통장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2년 계좌를 만들 때 ‘통장 대여’의 불법성에 관한 설명을 의무화하고, 대포통장으로 의심되는 계좌의 정보를 은행 간 공유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2016년에는 대포통장 거래 시 ‘금융질서 문란행위자’로 지정해 최장 12년간 대출 등 은행 업무에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은행에서 단기간에 여러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걸고 있다. 계좌 하나를 만들고 20영업일이 지나야 새로운 계좌를 만들 수 있다. 즉, 한달 사이 여러개 계좌를 만들 수 없다. 급여통장 등 금융거래 목적을 증빙하지 못하면 ‘한도제한계좌’로 묶여 하루 이체 금액 등이 제한된다. 한도 제한이 있더라도 일정 거래실적 등을 충족하면 해제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 통장 개설 등 금융거래의 문턱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 계좌 유지에 필요한 별도 비용이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한 사람이 여러 계좌를 보유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들어 비대면 등 통장 개설 절차가 편리해진 것도 대포통장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를 비롯한 미국 일부 은행들은 매달 5~25달러 수준의 계좌 유지 수수료를 부과한다.
문제는 범죄를 퇴치할 목적으로 통장 개설 등의 규제를 강화하면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 2016년부터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금융거래 목적이 증빙되지 않은 계좌의 하루 이체 한도를 30만원~100만원으로 제한했다. 이 때문에 주부와 청년, 고령층 등 소득 증빙이 어려운 이들의 불편 민원이 터져 나왔고 결국 2023년 규제심판부 권고로 하루 이체 한도가 100만원~300만원으로 높아졌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통장을 어떤 용도로 만드는지 확인하기 위해 과도한 제한이 들어가면 대다수 국민이 불편을 겪게 된다”며 “은행권 계좌는 현대사회의 생필품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범죄 가능성을 걸러낼 수 있는 대책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장 대여’가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은 대가를 받고 접근매체(통장 등)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벌칙 조항 자체는 이미 강화된 상태로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통장 대여 수사 경험이 많은 일선 경찰은 “전문적으로 통장을 유통하는 업체가 아니고 초범이라면 대부분 벌금이 나온다”고 말했다. 대포통장 모집책들은 대부분 이 점을 악용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실에선 전금법상 벌칙 조항만큼 형량이 선고되진 않는다. 이전보다 강하게 처벌하는 판례가 쌓이면 통장 대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대포통장 거래가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금융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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