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헛의 몰락…판도 바뀐 피자 프랜차이즈
국내에서 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와 함께 3대 피자 브랜드로 꼽혔던 피자헛이 지난 1985년 한국 진출 이후 40여년 만에 기업회생절차를 밟는다. 가맹점주들에게 물어줘야 하는 210억원의 채무를 떠안은 뒤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결과다. 1세대 미국 피자 프랜차이즈가 어려움을 겪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토종 브랜드 반올림피자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 회사는 2021년 말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인수된 후 볼트온(동종기업 추가 인수) 전략으로 급격히 몸집을 불리고 있다.
17일 한국피자헛에 따르면 이 회사는 전날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 개시명령을 받았다. 이에 채무변제 및 경영정상화 방안 등을 담은 회생계획안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법원이 한국피자헛의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회사는 파산하게 된다.
한국피자헛의 위기는 차액가맹금을 둘러싼 가맹점주들과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차액가맹금은 본사가 가맹점에 공급하는 상품 원재료 및 부재료 가격에 이익을 붙인 것으로, 일종의 '유통마진'이다. 가맹점주 94명은 한국피자헛이 이를 사전합의 없이 부과했다면서 2020년 부당이득금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6월 진행된 1심에 이어 올해 9월 열린 2심에서도 법원은 가맹점주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본사가 가맹점주의 동의 없이 차액가맹금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해 약 21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국피자헛은 이에 불복했다. 유통마진을 취하는 것은 프랜차이즈 사업의 본질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채권단이 계좌를 압류해 경영에 차질이 생기자 한국피자헛은 지난달 회생절차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한 달간 자율구조조정지원(ARS) 프로그램을 통한 채권자와의 합의에도 실패해 최종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한국피자헛 관계자는 “지난 한 달간 ARS 프로그램을 통해 법원의 중재로 채권자들과의 원만하고 신속한 합의에 도달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가시적 성과를 얻지 못했다”며 “결국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게 된 것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적법한 절차와 회생법원의 감독 하에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책임 있는 자세로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자헛 압도하는 토종브랜드 반올림
1985년 서울 이태원동에 1호점을 열며 한국에 피자를 소개한 피자헛이 초유의 홍역을 치르는 사이 2011년 대구 수성구에서 배달전문으로 시작한 반올림피자가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 나온다. 지난해 기준 한국피자헛 점포 수(직영·가맹 포함)는 359개, 반올림피자는 358개였다.
그런데 반올림피자가 지난달 27일 또 다른 프랜차이즈 브랜드 오구쌀피자를 운영하는 ㈜오구본가 주식 전량을 100억원대에 사들이며 몸집을 2배 이상 불렸다. 이번 인수로 반올림피자의 가맹점만 730곳으로 늘어났다. 국내 단일법인 기준 피자 프랜차이즈 순위 1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가맹점 평균 매출을 총매출로 환산해 집계한 시장점유율은 2020년 기준 한국피자헛이 11.5%, 반올림피자가 7.5%였다. 그러나 2022년에는 한국피자헛이 7.5%, 반올림피자가 7.9%로 집계되며 뒤집혔다.
반올림피자의 대주주는 지분 88.3%를 가진 오케스트라프라이빗에쿼티다. 앞서 2021년 말 약 600억원을 들여 반올림피자를 인수한 뒤 운영하고 있다. 최근 3년간 반올림피자의 연평균 매출성장률은 59.2%에 달하는 등 기세도 좋다. 매출은 △2021년 190억원 △2022년 338억원 △2023년 538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 역시 50억원으로 전년의 31억원보다 61.3% 증가했다. 이는 2022년 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한 후 그 규모가 지난해 45억원까지 불어난 한국피자헛과 상반되는 지점이다.
한국피자헛과 반올림피자가 이처럼 엇갈린 흐름을 보인 데는 국내 소비자의 세분화된 입맛에 맞춘 메뉴 출점 전략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오케스트라PE가 인수 이듬해 반올림피자와 협력관계를 이어오던 식자재 업체 정성푸드를 인수하며 구매, 물류 기능 내재화를 꾀한 것이 효과를 봤다. 반죽부터 소스까지 피자의 원부재료를 자체 공장에서 생산, 공급해 맛과 메뉴, 가격까지 차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반올림피자의 메뉴는 변화무쌍하다. 지난달 로코노미 트렌드의 일환으로 내놓은 영암 무화과 고르곤졸라피자를 비롯해 레드올림 고구마피자, 베사메 나초피자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프랜차이즈의 본질인 가맹점주들과의 관계는 회사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며 “피자헛의 쇠락은 점주들과의 갈등이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돼온 탓이 크다”고 꼬집었다. 이어 “반면 반올림피자 등 젊은 브랜드는 점주들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MZ세대를 공략하는 다변화된 메뉴들로 실속을 챙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