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산다” 기후 변화에 집단 이주 결정한 인디언 ‘퀴놀트족’ [특파원리포트]
최근 허리케인 헐린이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습니다. 멕시코 유명 휴양지 칸쿤을 지날 때만 해도 열대성 폭풍이었던 헐린은 만 이틀도 되지 않아 4등급 허리케인으로 커졌습니다. 미국 플로리다에 상륙한 뒤 세력이 약화됐지만 미 대륙 깊숙한 곳까지 홍수를 일으켰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9월30일 현재, 100명 넘게 숨졌고, 약 600명이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물적 피해도 100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렇게 빨리 세력을 키우면서 큰 피해를 준 건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카리브해에서 올해 발생하는 허리케인이 역대급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기후 변화가 이젠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기후 재난은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때 북미 대륙의 주인이었던 원주민 '인디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을 전체가 통째로 이사를 가야 할 처지에 놓인 원주민들도 있습니다.
■ 사람보다 연어가 먼저인 퀴놀트족
퀴놀트 족은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 살고 있습니다.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퀴놀트 강어귀에서 연어를 잡아 파는 게 주 수입원입니다. 물론 다른 인디언 원주민처럼 카지노와 리조트 수입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연어잡이 수입이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연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퀴놀트 부족의 신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태초에 창조주가 세상을 여행하다 이곳에 도착해 참 좋은 곳이구나 생각했고, 진흙을 집어 연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사람을 만듭니다. 사람보다 연어가 세상에 먼저 창조된 겁니다.
그런데 이 연어잡이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강 상류 올림픽 산에 빙하가 있었는데, 기후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버려, 찬물이 더이상 흘러들지 않으면서 강 수온이 변했습니다.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는 연어들의 크기와 숫자가 줄었다는 게 어부들의 증언입니다.
소득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어부들은 다른 직업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연어잡이를 해온 미카 마스텐은 물리 치료를 배우기 위해 대학을 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 학교에선 쓰나미 대피 훈련…'킹타이드'가 덮쳤다
'킹 타이드'.
'한사리' 혹은 '대형 조수'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를 미 해양기상청에선 '사람들이 종종 예외적으로 높은 조수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비과학적 용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킹 타이드'는 퀴놀트 족에겐 무서운 존재입니다.
강한 바람과 겹치면 마을 앞 제방을 넘어 옵니다. 마을 저지대는 순식간에 물이 찹니다. 특히 3년 전에는 서너시간 만에 차오른 물에 오도가도 못하고, 한겨울에 일주일 이상 전기와 수도가 끊긴 채 버텨야 했습니다.
이 홍수가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 입구에는 '쓰나미 위험 지역'이라는 팻말이 서 있습니다. 2년에 한 번꼴로 대피령이 내려집니다. 학교에선 쓰나미 대피 훈련이 필수입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제방을 넘어오는 파도에 해안가 잔디밭은 잡초밭으로 변했습니다.
그 제방도 2012년 홍수 피해를 겪은 뒤, 4천500톤의 바위를 동원해 1미터 이상 높였지만, 갈수록 상승하는 해수면을 막지 못하는 겁니다. 21세기 말이면 바닷물 높이는 1미터 이상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타홀라에 사는 주민들은 자연재해 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습니다.
■ 이주 종합계획 7년 "언제 마무리될지 몰라"
결국 퀴놀트 족은 집단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잦은 홍수에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원래 살던 곳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곳으로, 해발 40m에 위치한 고지대입니다. 오랜 논의 끝에 7년 전 종합계획을 세웠고, 지난해 기반 시설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이 옮겨 살 집은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비용이 문제입니다. 집을 짓는데 이동식 주택은 20만 달러, 고정형 주택은 40만 달러 이상 듭니다. 전체 예상되는 예산은 4억 달러로, 우리 돈 5천억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생활 형편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미국 주택담보대출은 통상 30년인데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새집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지만 현실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또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바다와 강을 사랑하는 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이전부터 살던 곳을 떠나 바다와 강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특히 고령층의 경우 지금 살고 있는 너른 곳에서 좁은 집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회보장기금으로 살고 있는 고령층은 집세를 감당할 능력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 원주민 모두가 벗어나고 싶다…"그들끼리 경쟁"
문제는 퀴놀트족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미국 원주민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 서부엔 쇼울워터, 호, 마카, 뉴톡 등 여러 부족이 홍수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내륙에 있는 부족들도 가뭄이나 산불로 영향을 받습니다. 모두 위험한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산은 한정적입니다. 연방 정부가 내놓은 예산을 이들 부족끼리 경쟁해서 따내야 하는 겁니다. 비교적 일찍 집단 이주를 결정한 퀴놀트 부족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퀴놀트 부족이 확보한 예산 2천5백만 달러도, 연방정부가 내놓은 7천5백만 달러 가운데 일부를 받아낸 겁니다. 부지만 마련한 부족도 있고, 아예 부지 확보조차 못한 부족도 있습니다.
복잡한 행정절차 역시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통합된 부서가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부처가 관여돼 있습니다. 이들과 오가는 문서가 각각 수백 쪽이 넘습니다.
부처별로 규정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도로 건설 예산은 8년 동안 쓰라고 배정되는데, 주택 건설 예산은 3년 동안 쓰라고 배정됩니다. 도로도 없는 곳에 집을 지으라고 하는 격입니다.
■ "우리의 고향을 보장하라"
원주민들이 기후변화로 더 힘들어하는 건 과거 미 정부에 많은 땅을 내준 영향이 크다고 합니다. 가치가 높은 땅을 내주고 취약한 곳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적으로 취약한 원주민들이 기댈 곳은 정부 지원 외엔 없습니다.
퀴놀트족도 마찬가지입니다. 1885년 미 정부와 협약으로 땅을 내주는 대신 더 이상 옮겨 다니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원주민들은 자연에 대한 의존도 높고 교감도 깊어 고향을 떠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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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중 기자 (baika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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