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웃고 맛있는 것도 먹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밥값 몇만 원이 아까운 것도 아니고 크게 다툰 일도 없다. 그런데 만남이 반복될수록 그 찜찜한 기분이 조금씩 쌓여간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서운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애매하다. 괜히 쪼잔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이번에도 그냥 넘어간다. 그렇게 넘어간 마음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1. 계산할 때마다 슬쩍 뒤로 빠진다
메뉴를 고를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가 계산할 때가 되면 갑자기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있다. 한두 번이면 우연이라 넘길 수 있지만, 같은 장면이 다섯 번 여섯 번 반복되면 더는 우연이 아니다. 다음에는 자기가 사겠다는 말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남이 카드를 꺼내길 기다린다.
이런 태도는 밥값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약속 장소를 정하는 일, 여행 예약을 챙기는 일, 일정이 꼬였을 때 수습하는 일까지 늘 남에게 맡겨두고 좋은 것만 함께 누리려 한다. 작은 계산 앞에서 매번 빠지는 사람은 더 큰 책임 앞에서도 똑같이 한 발 물러서기 마련이다.

2. 받은 호의를 당연하게 여긴다
처음 밥을 얻어먹을 때는 미안해하며 다음엔 꼭 사겠다고 말하던 사람도, 같은 일이 몇 년 이어지면 어느새 태도가 달라진다. 고맙다는 인사가 줄고, 계산을 기다리는 모습이 점점 익숙해진다. 형편이 더 나은 쪽이 사는 게 맞지 않느냐는 말을 농담처럼 던지기도 한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 할 건 얼마나 받았느냐가 아니라 받은 뒤의 태도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라도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커피 한 잔이든 집에서 키운 채소 한 봉지든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주려 한다. 반대로 고마움이 사라진 사람은 내가 한 번 덜 챙겨주는 순간부터 오히려 서운한 기색을 드러낸다.

3. 줄 게 없어지면 연락도 끊는다
내가 밥을 사고 여행 경비를 더 내던 시절에는 한 달에 몇 번씩 연락이 오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퇴직하고 형편이 빠듯해져 예전처럼 챙기지 못하게 되자 연락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몇 달 만에 걸려온 전화가 안부가 아니라 부탁이라면 그때 비로소 관계의 실체가 보인다.
이런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연락하지 말고, 먼저 계산하지 말고, 한 번쯤은 오늘은 각자 내자고 말해보는 것이다. 그 작은 선 하나에 갑자기 표정이 굳거나 연락이 뜸해진다면, 그 사람이 소중히 여긴 건 내가 아니라 내가 해주던 것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곁에 두지 말아야 할 사람은 돈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한쪽으로만 흐르는 사람이다. 형편이 어려워도 받은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은 오래 만나도 지치지 않는다.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여전히 안부를 묻는 사람, 그 사람만 남겨도 노년의 관계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