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 현직 실제 조종사가 직접 말하는 김해공항의 엄청난 위험도.txt

(장문인데 항공 비전문가도 이해하기 쉽게 잘 쓰인 글이라 읽어보면 빨려들어감)
2009년 11월 어느 날.
나는 아침 일찍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오사카 간사이 공항을 찍은 후,
다시 부산 김해공항으로 돌아오는
'퀵턴(Quick Turn)’비행을 시작하였다.
그 해 8월에 기장으로 발령이 났으니
기장된지 3개월 된,
그러니까 하룻강아지 뭐 무서운 줄도 모를 때다.
처음으로 기장이 되면,
마치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근거 없는 건방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자신감에 충만한 신참 기장들도 날씨와 맞서 싸우고,
기계와 맞서 싸우고, 또 사람과 맞서 싸우다 보면
어느새 전투력은 바닥이 나 버린다.
그러고는 ‘아, 이게 모두 싸워서 될 일이 아니었구나!’하고
깨닿게 될 즈음에야 비로소 ‘훌륭한 기장’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겨우 떼게 되는 것이다.
뭐 어쨌든,
오사카까지의 임무는 흡족하게 완수되었고,
나는 열심히 부산행 비행준비를 하는 부기장에게
비행이란 이런 거니, 저런 거니 하고
떠들어대며 쉬지 않고 잘난 척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비행계획서가 조종실에 도착했고 기상상황을 보니
부산 김해공항은 구름이 끼어 실링(Ceiling:
지상으로부터 구름 바닥의 높이)이 3500피트로 예보되어 있었다.
바람은 강한 남풍이 15노트로 불어 착륙을 위해
‘서클링 접근’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말했다.
“옳지, 오랜만에 서클링 한번 하겠구나!”
‘서클링 접근’은 착륙 활주로로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의 접근 절차 중에서도,
저고도에서의 기동이 많아
특히 난이도가 높은 접근 절차이다.
김해공항은 360도 정북을 향하는 활주로인
36L가 평소 주로 사용되는 활주로인데,
이 활주로에는 정밀 접근장치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활주로인 180도 남쪽을 향한
18R는 공항 북쪽을 가로막고 있는 산들 때문에
따로 접근 절차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즉, 북풍이 불어 36L를 착륙 활주로로 사용하게 되면
장애물이 없는 바다 쪽에서부터
손쉽게 활주로에 접근, 착륙할 수 있으나,
반대로 남풍이 불어 활주로 18R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산 때문에 공항 북쪽에서부터 직접 활주로로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행기는 정풍을 받아야 착륙에 필요한
활주로 거리를 짧게 하고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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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김해에서는,
바다 쪽에서 남풍이 불어올 경우,
배풍을 받으며 바다 쪽으로부터
‘활주로 36L’를 향해 접근해 오다가,
활주로를 육안으로 식별한 상태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좁은 레이스트랙을 그리며
반대 활주로인 ‘활주로18R’로 돌아서 착륙하는데,
이 절차를 서클링 어프로치(접근)라고 한다.
특히 김해공항은 북쪽에 산이 워낙 가까이 있어
활주로로부터 2~2.5마일(nautical mile. Km로 하면4~5km) 정도의
매우 좁은 반경으로 선회하며 활주로에 착륙하여야 하는데,
정교하고 쾌적하게 착륙하기가 만만치 않다.
2002년 중국 국제 항공(Air China) 여객기의
김해 사고 역시 이 접근절차를 수행하다가 발생하였다.
사고 당시 (김해 공항의 서클링 접근 절차에 익숙하지 않았던)
조종사들은 파이널 선회 반경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북쪽 산악지형에 근접했는데,
좋지 않은 기상 상태에서 순간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자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린 채 산중턱에 충돌해 버렸던 것이다.
사고로 인해 비행기는 전파(全破)되었고,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 했었다.
뭐 과거야 어쨌든,
김해 서클링접근이 쉽지 않은 접근절차 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번 이 접근을 만족스럽게 수행하여
나름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던 나는
‘앗싸, 오늘도 뭔가 보여 주겠어!’라며 속으로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비행 서류 검토를 마치고 사인을 하는데 부기장이 충고해주었다.
“기장님, 김해에 서클링접근 할 것 같은데
연료를 좀 더 싣는 게 낫지 않을까요?”
“왜? 내가 한번에 못 내릴 까봐 걱정이야?“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하하하, 서클링은 문제 없고,
대신 여기 오사카 출발할 때 비행기가 많이 붐빌 것 같으니까,
지상대기에 대비해서 연료 1000파운드만 더 싣고 갑시다.”
“예…… 기장님.”
그러나…… 연료를 더 실었어야 했다.
부기장 말이 맞았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을 출발하여
길지 않은 시간 만에 김해공항에 근접하였다.
예상대로 서클링 접근이 실시 중에 있었는데,
이거 좀 심상치 않았다.
몇몇 비행기들이 고어라운드
(Go Around, 복행: 접근 중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상승하여 올라감)
를 하고 있었고, 36L로 배풍 착륙을 하겠다고
허가를 요청하는 신경질 적인 목소리가 무선통신으로 들려왔다.
공항 기상정보를 다시 받아 보았다.
바람은 예상과 크게 틀리지 않게 190방향에 13노트였는데,
시정이 3마일이고 구름 실링이 무려 1000피트로 떨어져 있었다.
공항주변으로 여기저기에 비구름이 몰려 있었고,
회사 무선 통신을 통해 알아보니 기상상황이
이지경이 되기 시작한지 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규정상 서클링접근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저 기상조건은 실링 1000피트와 시정 3마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때 당시의 기상이 서클링을 할 수 있는
최저 기상조건이었던 셈이다.
나는 이렇게 나쁜 날씨에 서클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먹기 보다는
'오케이 좋았어, 한번 해봐!’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김해 접근 관제사가 드디어 우리에게 접근을 허가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활주로 36L를 향해 정밀 접근 유도 장치인
'ILS’를 따라 강하하기 시작했다. 구름 속은 매우 흔들렸고
가끔씩 요란한 빗소리가 창문을 때려댔다.
접근 최저 고도인 1100피트가 되자
강하를 멈추고 수평비행을 유지하며
눈을 부릅뜨고 활주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비행기는 좀처럼 구름 속을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클링 접근’은 반드시 육안으로 활주로를 보며 실시해야 한다.
따라서 구름 속에 있는 한 접근절차를 시작할 수조차 없는 노릇이다.
기상 레이더를 보니 짙은 비 구름이 남풍을 타고
공항 쪽으로 북상하는 모양새로 보였다.
하지만 다행이 아직 비구름이 공항을 완전히 뒤덮지는 않은 상태였다.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구름이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활주로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날씨 좋은 날,
멀리서부터 여유롭게 공항 활주로를 쳐다보며
서클링 접근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구름 속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활주로는 이미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서둘러 좌선회를 하여 활주로 좌측으로 빠져나갔다.
레이스 트랙을 그리기 위해 드디어 기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평소보다 훨씬 늦게 레이스 트랙 패턴을 만들기 시작하니
안정적으로 패턴을 그릴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안정적인 패턴을 위해서는 활주로와 평행한 방향으로 가다가
180도 유턴하여 18R로 착륙할 수 있는 횡적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데, 뒤늦게 기동을 시작하게 되니
충분히 간격을 벌여 공간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패턴의 간격을 넓히기 위해
더 이상 북쪽으로 전진하면 산과 너무 가까워져 위험하다.
마지막 유턴 지점인
남해고속도로가 눈앞에 다가오자,
더 이상 공간을 넓히지 못한 채
마지막 선회와 강하를 시작하였다.
“이거 원! 급선회 해야겠는데!”
나는 비행기의 선회반경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에 경사를 허용된 최대 양까지 주었다.
급 경사를 더 주면 비행기의 선회반경은 더 줄어들 수 있겠지만
아마 승객들이 불편해 할 것이다.
물론 이들도 간혹 놀이공원에서
돈을 지불하고 일부러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오늘은 아마도 그럴 기분이 아닐 것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창문 밖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낮게 떠있던 작은 조각 구름 속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런 젠장!”
언제든 서클링접근 중에 구름 안으로 들어가면
즉시 고어라운드 해야 한다.
서클링접근이란 것이 워낙 좁은 공간에서
저고도로 기동을 하는 것이므로,
안전한 기동을 위해서는 내내 활주로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겨우 겨우 힘들게 접근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각 구름이 왠 말인가!
아쉬움과 분노가 교차하면서
쓰러스트레버(Thrust Lever: 추력 조절장치)를
밀어 넣으려는 순간, 다시 구름 바깥으로 훌쩍 나와버렸다.
“어디야? 어디? 활주로 어디 있어?!”
“저기 있습니다. 빨리 도세요! 돌아!”
우측에 희미한 활주로를 찾아내고는
다시 비행기에 최대한으로 급경사를 주었다.
구름 속에 잠시 들어간 2~3초의 순간
고어라운드를 위해 본능적으로 경사를 풀어버려
비행기를 거의 수평비행자세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안 그래도 최대한 급경사를 유지해서
선회반경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건 선회반경을 오히려 더 크게 만들어 버렸다.
“젠장! 오버슈트(Overshoot)다!
뒤늦게 다시 급 선회를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비행기는
18R 활주로 중심선을 크게 오버하여 돌고 있었다.
“기장님 고어라운드 하시죠.”
“……”
조용히 고어라운드를 실시했다.
다시 구름위로 상승해 올라가며 분을 참을 수 없었다.
부기장에게 잘난척하고 떠들던 것이 너무 창피하기도 했고,
뭐 어쨌든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비행기가 안정되자 기내 방송을 했다.
“기상악화로 접근 및 착륙을 중단하였고
실제로 기상은 계속 악화되고 있지만,
다시 한번 착륙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장님 배풍 13노트로 나오는데,
36L 로 배풍 착륙 하시죠.”
착륙이 가능한 배풍 제한수치는
젖지 않은 노면상태에서 10노트까지이다.
그러나 서클링접근이 부담스러운 김해공항의 경우만
유일하게 배풍 15노트까지 제한치를 높여 적용할 수 있도록
교통부로부터 허가되어 있다.
그러니까, 김해 공항에서는
서클링 접근보다는 배풍 15노트로 착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럽시다. 날씨가 너무 안 좋네……
36L 요청해 봅시다.”
“김해 접근관제소,
대한항공 732편 ILS 36L로 배풍 착륙을 요청합니다.”
“대한항공 732편,
출발하는 비행기들이 많아서
36로 착륙하려면 홀딩(Holding: 체공비행)해야 합니다.”
그렇다.
배풍이 13노트가 불면,
착륙 제한치는 15노트로 상향 적용하여 착륙이 가능하지만,
이륙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륙의 경우는 김해공항이라 하여도
제한치는 다른 공항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10노트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마이크 키를 잡고 관제사에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예…… 36L는 한 20분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18R으로 내리면 지금 바로 접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김해에 못 내리고 회항할 경우,
교체공항인 제주까지 가는데
약 7000파운드의 연료가 필요하고,
거기에 비상상황에 대비해 남겨두어야 하는
최저연료 7000파운드(정상 상황에서 착륙 후 남도록
계획해야 하는 최저연료 양이다.)를 더하면
최소한 14000파운드의 연료가 필요하다.
갖고 있는 연료량에서
이것을 빼면 남는 연료는 약 2500파운드였다.
오사카에서 추가한 1000파운드 연료와
비행하면서 세이브된 1500파운드의 연료였다.
이것으로는 대략 15분 정도까지 홀딩할 수 있으므로
20분간 홀딩하려면 비상상황에 대비해
남겨두어야 할 최저연료까지 일정량 사용해야 한다.
결론은 명쾌해졌다.
“예, 그러면 18R 서클링 한번 더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한항공 732편,
헤딩 030, 디센드 투 2700피트,
ILS 36L 및 서클 투 랜드(Circle-to-land)
18R 접근을 허가합니다. 활주로가 보이면 보고하세요.”
“롸져! 헤딩 030, 다운 투 2700,
클리어드 포 ILS 36L, 서클 투 18R”
한번 실패를 하고 나니
두 번째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한번 실패해서 찝찝했는데 잘 됐다.
이번에는 제대로 뭔가 보여 주마.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리얼’ 저 시정 서클링 접근이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야.
한번 멋지게 착륙해 보자고!’
공항 위에는 아직 비가 오지 않았지만,
공항 남쪽에는 벌써 엄청난 비구름들이 몰려와 있었다.
남쪽을 향해 선회하며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양의 폭우가 비행기에 퍼부어 댔다.
비행기는 요란하게 흔들렸고,
체크리스트를 읽는 부기장의 손이 무척 떨렸다.
부기장이 말했다.
“기장님, 오사카에서 연료 좀 더 많이 실었으면
좀 홀딩 하다가 ILS 탈 수 있었을 텐데……
부산 기상 예보가 영 엉터리라서 안타깝네요.
이젠 기상예보 못 믿겠어요.”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부기장의 말은, ‘부산의 기상 예보가 틀리는 바람에
추가 연료를 싣지 못한 것’을 탓하는 것이었는데,
나에게는 ‘연료를 더 싣자는 부기장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탓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리석게도 ‘기상예보’가 아니라
'나’를 탓하는 것으로 느껴진 것이다.
옹졸함이 작렬한다.
“괜찮아! 이런 날에 서클링 한번 제대로 해봐야지.
그렇게 편한 것만 찾으면 언제 기량이 늘겠어!
오늘 같은 날은 오히려 기회야!”
내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부기장은 대답이 없었다.
그때 사무장이 인터폰으로 나를 불렀다.
그 와중에 콜이 오자 나는 또 다시 짜증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객실에 승객들이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고,
인터폰을 받으면서도 속으로는 걱정이 앞서 있었다.
“예, 사무장님.”
“아, 기장님! 여기 한 승객 분이
무척 걱정하시면서 여쭤보시는데요……”
“네, 계속 말씀하세요.”
“창 밖으로 보니까 엔진 속으로
계속 엄청나게 물이 들어가고 있는데
이게 엔진 꺼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고요.
제가 직접 봐도 완전 소방차 물 뿌리듯이
엔진으로 물이 빨려 들어가고 있거든요?
저도 이런 건 처음 보는……”
사무장의 말이 길어지자 나는 가차없이 말을 잘라버렸다.
“괜찮아요! 안 꺼져요!
지금 폭우 속에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됐어요?”
“아…… 예…… 바쁜데 콜 드려서 죄송합니다.”
나는 화가 났다.
젊은 여자 사무장이었는데,
눈치도 없는 것 같았고
이거 원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ILS유도를 따라
다시 활주로 36L를 향해 접근이 시작되었고,
최저고도 1100피트에 다다르자
다시 수평비행을 하며
다시 한번 활주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지난번 접근 시 구름을 빠져 나왔던 지점을
이미 통과했는데도 아직 활주로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몇 분 사이에 비구름이
좀 더 북쪽으로 이동했나 보다.
창 밖과 계기를 번갈아 보며
활주로가 나타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네비게이션 디스플레이상 비행기는
이미 활주로 상공을 지나고 말았다.
먼저 번 접근할 때에
활주로 직전에서 선회 기동을 시작하고도
충분한 간격의 레이스 트랙 패턴을 그리지 못했는데,
이미 활주로 위를 지나버렸으니
설사 지금 활주로가 보인다 할지라도
착륙에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다시 두 번째 고어라운드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분노는 극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대한항공 732편,
여기는 김해 어프로치,
이번에는 왜 고어라운드 하셨습니까?”
관제사의 질문에
다시 신경이 곤두서서 직접 키를 잡는다.
“김해 어프로치! 활주로가 안보입니다!
지금 이거 서클링 할 수 있는 기상이 아니에요!
도대체 지금 시정이 얼마입니까?”
관제사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한다.
“현재 시정 2마일 입니다.”
난 기가 막혔다.
서클링을 할 수 있는 최저 시정은 3마일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더 이상 기다릴 수 있는 연료가 없습니다.
36L로 내려주면 접근을 다시 하고,
안되면 바로 제주로 가겠습니다.”
“대한항공 732편,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출발 항공기들이 아직 몇 대 남아있어요.”
“김해 어프로치, 못 기다린다고요!
날씨도 이렇게 안 좋은데
출발하는 항공기들은 잠시 대기시키고
일단 급한 항공기들부터 내려주시면 안되나요?
저희 이제 연료 없습니다.
지금 36L 활주로에 배풍이 13노트면 내려 줄 수 있잖아요?
지금 36L로 내려 줄 건지 말 건지 답변을 주세요.
아니면 바로 제주로 가겠습니다.”
“그러길래 아까 홀딩 하시지 그러셨어요.
홀딩 한 비행기는 36로 내렸습니다.
알겠습니다. 헤딩 200로 비행하세요, 36L로 접근 준비하세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몹시 나빴다.
이런 날씨에 서클링을 시키는 것도 화가 났고,
출발항공기 때문에 연료도 얼마 안 남은 비행기를
홀딩 시키는 것도 화가 났다.
사실 우리가 제주로 가건 말건 관제사는 알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린애처럼
마치 대단한 엄포라도 내리듯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제주로 가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었던 것이다.
“너 그거 나한테 안주면 같이 안 놀꺼야!”
뭐 이런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내 주위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다시 기내방송을 할 때에는 수치스러웠다.
난 십오 년 동안 비행을 하면서 한 비행에서
두 번 연속으로 고어라운드를 해본 적이 없었다.
승객들은 불안해 할 것이고, 사무장은 날 못 믿을 것이다.
부기장도 이제는 말이 없고,
엔진계기에 연료수치는 뚝뚝 떨어져만 갔다.
금새 접근을 시켜줄 것 같더니
생각보다 빨리 접근을 시켜주지 않는다.
관제사는 우리 비행기를 자꾸 바깥쪽으로 멀리 돌리고 있다.
아마도 몇 대의 비행기를 또 출발 시키고 있나 보다.
마음은 더 급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비상 연료를 써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몇 번의 재촉 끝에 드디어 36L ILS 접근 허가를 받았다.
이제는 거의 3000파운드의 연료를 더 소모하여
만약 이번에 또 다시 착륙에 실패하여 제주로 회항한다면,
최저연료량인 7000파운드 보다 조금 적은 연료량으로
착륙할 수 밖에 없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상황에 따라 비상연료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골치 아픈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만다.
이 모든 상황들을 예측하고 분석하여 대응하기에는
내 경력과 능력이 모자랐지만,
나는 이모든 것이 그저‘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저‘머피의 법칙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라며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남쪽에서 서서히 올라온 비구름은 더 강한 배풍을 일으켰다.
활주로 십여 마일 전방에서 배풍의 양은 무려 40노트에 이르렀다.
랜딩기어를 내리고,
스피드 브레이크를 사용했지만
배풍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00피트를 통과할 즈음에도
배풍은 아직도 무려25~30노트에 달했다.
관제사가 마지막으로 착륙허가를 내주면서 말하였다.
“대한항공 732편,
활주로 표면은 아직 배풍 15노트입니다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활주로 위에서 만약 배풍이 이보다 더 세지면
즉시 브레이크아웃(Break out: 여기서는 고어라운드를 뜻함) 하세요!
36L활주로에 착륙을 허가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착륙을 허가 받았습니다.”
미치겠다. 환장하겠다.
1000피트 미만에서15노트이하로
배풍이 줄어 들지 않으면 착륙이 위험하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세 번째 고어라운드들 하게 생겼다.
더구나 이번에 고어라운드를 하면 바로 제주로 가야 한다.
간당 간당한 연료를 가지고 똥줄 타며 말이다.
분통이 터졌다.
열심히 비행 잘하는 나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맨 처음 접근을 방해했던 작은 조각구름도 그렇고,
슬금슬금 북쪽으로 움직이는 비구름도 그렇고(왜 하필이면 북쪽이야!),
말속에 뼈가 있는듯한 부기장의 조언도 그렇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 별 생각도 없어 보이는 사무장도 그렇고,
나를 홀로 이런 힘든 곳에 보내 놓고 나 몰라라 하는 회사도 그렇고,
힘들게 착륙하는 비행기 사정도 생각 안 해주는 관제사까지……
모두가 미웠다.
내 편은 하나도 없고,
모두 나를 방해하는 방해꾼들인 것만 같았다.
나만 힘들어 죽겠는데!
나만 이렇게 열심히 비행하고 있는데!
이러다 이거 또 한번 뺑뺑이를 돌게 생겼다.
그러나, 1500피트를 통과하는데 아직도 배풍은 25노트 이다.
이제는 절망이다……
분노와 긴장감은 결국 패배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내 주변의 수많은 적들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어졌다.
전투력을 상실한 나는 연병장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나는 이제 저기 맨 뒤에서 다리를 질질 끌며
땡칠이처럼 숨을 헐떡거리는 한심한 패배자들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때,
귓가에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목소리가 맴돈다.
“신지수, 스트레스 받지마!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뛰어?”
“응? 누구지?”
“무슨 걱정이야? 너의 주변을 둘러봐.
화를 낼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
지금 너의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단 말이야.
물론 너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야!”
“나도?”
“그래. 너도 잘못 없어.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아.
도대체 저들에게 뭘 보여주고 싶은 거야?
영웅이 되고 싶은 거야? 자연과 역경을 이긴 영웅?”
“아니, 나는 그저 유능한 기장이란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
“그렇다면 일단 어린아이처럼 칭얼대지 좀 마.
그리고 제발 싸우지 좀 마! ‘유능한 기장’이란 타이틀은
싸워서 얻어내는 챔피언 벨트가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어차피 나는 패배했어! 이제 내편은 아무도 없어.”
“이런 바보야! 계속 뺑뺑이만 도니까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하는 거야?
관제사는 너를 내려주기 위해
지금 출발하는 비행기를 두 대나 세워놓고 있어!
사무장은 여자의 몸으로 불안에 떠는 승객들을
안심시키려 내내 동분서주하고 있고,
공항지점에서는 너를 빨리 착륙하게 해 달라고
관제탑에 이미 여러 번 연락을 했었어.
정비사들은 지금도 다들 널 기다리며
목 아프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
그리고 부기장! 그는 너를 좋아해.
너를 잘 도와줘서 너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단 말이야! 그리고……”
“그리고?”
“첫 번째 조각구름은 네가 무리해서
접근을 계속 하지 못하도록 너를 막아 준거야.
그러고도 또 다시 접근을 하려 하니까
두 번째에는 아예 비구름으로 활주로를 가려 버린 거야!”
“……”
순간 마음속으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이미 그것들을 전부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내 편 이었는데,
모두들 나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눈물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음속 ‘그 사람’은 내 겨드랑이에
단단한 팔뚝을 끼워 넣어 고개 숙인 나를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는 측은한 듯, 옷에 뭍은 흙을 털어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다 잘 될 거야.”
“……”
“다들 아직 너를 포기하지 않았어.
너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돼.”
1000피트가 되었다. 결심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사납게 몰아치던 바람은
어느새 분을 가라앉히고 점점 순둥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부기장은 신이 나서 바람의 세기를 불러준다.
“17노트!”
“15노트!”
“13노트!”
“11 노트! 렌웨이 인사이트(Runway Insight)!”
드디어 활주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동 조종장치를 해제하고 조종간을 가볍게 쥐었다.
“랜딩!”
착륙을 결심하고 나는 조종간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자유로웠다. 나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자유롭게 날고 있었고,
날개를 펼쳐 가볍게 땅으로 귀환하는 순간
내 주위에 있는 모두가 내 편이었다.
착륙 후 다시 땅을 밟게 된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부기장에게, 사무장에게, 그리고 관제사에게도 모두 미안했다.
게이트에 도착하여 승객들이 모두 내리고 난 후에도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 정비사가 올라와서 능글맞게 말한다.
“와! 기장님 이 날씨에 어떻게 내렸어요?
제주로 가실 줄 알았는데!”
이에 사무장이 옆에서 띄워준다.
“와 우리 기장님이 실력이 대단하시구나! 고맙습니다, 기장님.
난 공중에 비가 그렇게 많이 오는 건 또 처음 봤어요.
얼마나 무섭던지……”
거기에 부기장이 다시 받아 친다.
“ 기장님이 정말 대단하셨어요.
이런 접근과 착륙은 저도 처음이예요. 많이 배웠습니다!”
너무 미안했다.
어리석게도 그만 나는 이들을 원망했었다.
호텔에 도착한 후에도 나는 한동안 할말을 잃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잘난척하며 떠들어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내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되는지
부기장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기장님, 그런데 어디 아프세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제 다 나았어!”
Epilogue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것은 조종사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큰 공항이 이렇게 반쪽밖에 쓸 수 없는 공항이라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다. 김해공항은 일본 항공사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난이도를 가진 검열코스로도 유명하다. 많은 일본 조종사들이 김해공항에서 서클링 접근을 하면서 그들의 자격 검열에서 낙방하는 고배를 마셔왔다. 또한 김해공항은 공군과 함께 사용하는 군 공항이다. 김해 공항의 증가하는 항공 교통 수요로 인해 나라를 지키는 우리 공군의 훈련에 차질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어찌됐든 한 방향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는 김해공항의 특성은 영남지역 항공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경제성, 효율성을 따지며 백지화의 이유를 말하지만, 사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른 거대한 토목 인프라 사업들을 생각해보면 이 또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쨌거나 세계에 자랑거리인 인천공항과 전통의 김포공항 다음으로 큰 세 번째 공항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의 것으로 가질 수 있는 기회는 그만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s://m.blog.daum.net/30percentoff 
오늘 출장 다녀오는 길에 김해공항에 착륙하면서 서클링을 경험해봤는데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가 발견해서 흥미진진하게 읽어 공유 해봅니다.
공교롭게 최근에 신어산 사고 관련 다큐를 보면서 서클링의 어려움, 위험성을 알게되었는데 직접 해당 접근법을 경험해보니, 새삼 파일럿 분들의 노고에 경이로움까지 들었습니다.
직접 찍은 영상도 올려봅니다!
https://youtu.be/tOUBE0w_9D8?si=0q_RgEfyOCKyQ29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