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직원, 부정 투구 코치가 만들어낸 커쇼의 ‘마구(魔球)’

커쇼 3000K 달성의 1등 공신, 슬라이더의 탄생 설화

LA 다저스 SNS 캡처

감독실에서 열린 심각한 회의

2009년 5월의 일이다. 다저스 감독실에 몇 명이 모였다. 참석자 4명의 명단이다.

감독 = 조 토레
타격코치 = 돈 매팅리
투수코치 = 릭 허니컷

이들과 마주한 것은 ML 2년 차 투수였다. 21살의 앳된 클레이튼 커쇼다.

감독이 말을 꺼낸다.

“이봐 돈(매팅리), 자네가 타자라면 커시(커쇼)를 어떻게 상대하겠나?”

통산 2153개의 안타를 친 MVP 출신 타격코치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일단 홈 플레이트를 반으로 나누죠. 그래서 바깥쪽은 버릴 거예요. 저 친구는 무조건 안쪽으로만 승부하거든요. 그리고 커브는 쳐다보지도 않겠죠. 오로지 직구만 노릴 거예요. 그럼 확률이 꽤 높아지겠죠.”

듣는 21살짜리는 숨을 씩씩거린다. 이렇게 대놓고 먹인다고? 대들듯이 반박한다.

“알아요, 알았어요.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어요. 그걸 연습하면 돼요.”
하지만 정답이 아니다. 감독은 고개를 젓는다.

“그래 좋아. 그런데 100% 옳은 방식은 아니야. 안정적인 커브를 던지려면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할 거야. 빠른 볼은 아주 괜찮아. 커브와 조합도 나쁘지는 않아.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여기서 버틸 수 없지. 다른 게 하나 더 필요해.”

그러면서 체인지업을 제안한다. “좌투수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데 당사자의 반응이 별로다.

“해 봤어요. 스프링 캠프 때부터 열심히 던져봤는데, 저랑은 잘 안 맞더라구요. 직구나 커브는 자연스러운 손목 각도가 나오는데, 체인지업은 다른 방향으로 꺾어야 해요. 그걸 잘 모르겠더라구요.”

LA 다저스 SNS 캡처

슬라이더에 미친 코치

잠시 회의가 방향을 잃는다. 결국 투수코치 쪽을 보게 된다. 감독이 묻는다. “릭은 어떻게 생각해?”

허니컷은 좌완투수였다. 그리고 평생 슬라이더를 연구한 장인이었다.

어느 정도였냐. 마운드에서 나쁜 짓도 했다. 압정으로 슬쩍 ‘장난질’을 친 것이다. 공 표면에 흠집을 내서 회전을 더 강력하게 만들려는 시도였다. 그게 적발돼 징계도 받았다. 벌금 500달러를 물었다. 10경기 출장 정지 처분도 뒤따랐다. 1980년 시애틀 시절의 일이다.

“커시의 커브는 분명히 매력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강하게만 던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슬라이더가 더 어울리죠.”

사실 그 역시 다저스 시절을 잊지 못한다. 텍사스에서 트레이드된 1984년이다. 스프링캠프 때의 경험이 떠오른다.

“코치가 론 페라노스키였고, 데이브 윌리스가 마이너 팀 감독이었어요. 가끔 샌디 쿠팩스가 가르치기도 했구요. 그들 틈에서 3~4주 지낸 것이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죠. 제대로 된 슬라이더도 그때 배웠어요.”

그러니까 대물림인 셈이다. 일타강사의 족집게 과외가 시작됐다. 어린 제자를 향해 기본 개념부터 가르친다.

“커브는 정말로 타자들이 손도 못 댈 정도라는 느낌으로 던지지. 하지만 슬라이더는 달라. 그냥 스트라이크를 위해 가볍게 변화시킨다는 마음으로 해야 돼.”

그러면서 정확한 감각을 가르친다. 쿠팩스에게 배운 그대로를 전수한다.

“가운데 손가락을 실밥 깊숙이 걸고, 꺾는 지점은 여기서 이렇게…. 공을 옆으로 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래로 당기는 느낌으로….”

사진 제공 = OSEN

낙하산 직원의 도움

여기서 인물이 추가된다. 마이크 보첼로라는 이름이다. 훈련 스태프, 우리 식으로 하면 불펜 포수다. 커쇼가 연습 투구할 때 공을 받아주는 역할이다.

잠깐 그의 이력을 살펴야 한다. 감독과 특수 관계다. 조 토레가 대부(god-father)였다. 그러니까 트럭 운전을 하던 절친의 아들을 데려와 취직까지 시켜준 셈이다.

부적절한 취업 청탁? 혹은 비리? 시각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양키스 시절(1996~2006년)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역시 대부가 감독을 할 때였다. 까탈스러운 투수가 있었다. 연습 때 자꾸 공을 바꿔 달라고 한다. “이상하게 옆으로 삐져 나간다”는 이유였다.

보첼로는 손을 젓는다. “아닌데. 이 공 어디서 배운 거야? 기가 막힌데? 다시 한번 던져봐.”

까탈스러운 투수의 이름은 마리아노 리베라였다(당시 28세). 자꾸 삐져 나간다며 불만스러웠던 공은 바로 커터였다. 사상 최고의 마무리가 탄생하던 순간인 셈이다.

그렇게 투수 보는 안목, 공 보는 눈이 특출한 인재였다. 그런 보첼로가 커쇼의 슬라이더 학습 과정을 함께 했다.

몇 주가 지났다. 리글리 원정 때였다. 둘은 다시 불펜으로 들어간다. 우선 빠른 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슬라이더를 요구한다. “방금 던진 직구와 같은 타점, 같은 리듬, 같은 스윙으로.”

그때 경험을 보첼로는 이렇게 기억한다.
“글러브에 들어올 때까지는 패스트볼과 비슷했어요(피치 터널이 그만큼 완벽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다른 투수의 슬라이더와는 전혀 달랐어요. 수평 이동은 거의 없었죠. 꼭 스플리터처럼 바닥을 향해 급격하게 떨어지더라구요.”

그리고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죠.”

LA 다저스 SNS 캡처
LA 다저스 SNS 캡처

3000K의 핵심 무기

허니컷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커쇼가 처음 다저스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커브의 명인) 샌디 쿠팩스가 재림했다고 흥분했죠. 그런데 그의 영혼 속에는 또 다른 위대한 투수가 깃들어 있었죠.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졌던 스티브 칼튼이에요.” (쿠팩스와 칼튼 모두 좌완투수다.)

그가 위대한 여정에 도달했다. 3000개의 탈삼진을 채운 것이다.

이 클럽에 가입한 20번째 투수다. 한 팀에서 이런 기록을 세운 사람은 많지 않다. 월터 존슨(세네터즈), 밥 깁슨(카디널스) 이후 세 번째다.

그는 다저스에서 3명의 감독을 겪었다. 조 토레 체제에서 497개, 돈 매팅리 때 1249개, 데이브 로버츠 시절에 1254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브랜든 벨트다. 통산 30개를 당했다. 역시 같은 지구의 라이벌에 희생자가 많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413개의 K를 기록했다.

핵심 무기는 슬라이더였다. 이걸 결정구로 1314개의 타자를 돌려세웠다. 3000번째 대기록의 위닝샷 역시 비니 카프라를 상대로 던진 슬라이더였다. 그다음은 포심 패스트볼(899개)과 커브(743개)다.

에필로그

릭 허니컷은 오클랜드 시절 불펜에서 활약했다. 마무리 데니스 에커슬리가 나오기 직전인 8회를 막는 프라이머리 셋업이었다. 투수코치로는 다저스에서만 일했다.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4시즌을 책임졌다. 류현진의 스승으로도 우리와 친숙하다.

마이크 보첼로는 양키스, 다저스에서 불펜 포수 역할을 맡았다. 2012년에는 시카고 컵스로 옮겨 포수 인스트럭터, 피칭 보조코치 등의 위치에서 활약했다. 현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스카우트로 일한다.

LA 다저스 SN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