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우라늄 농축시설 고도화, HEU 연 최대 3000㎏ 생산…핵탄두 200개 가능”[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원심분리기 방식은 구 소련이 첫 도입 사회주의권 확산…북 파키스탄 통해 P2 도입”
“북한 원심분리기 관련 설비 생산, 캐스케이드 시험, 파일럿공장 있을 것”
북한이 핵탄두 제조에 사용되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13일 전격 공개한 가운데 국내 북한핵 최고 전문가인 이춘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14일 "북한이 2010년 이전부터 HEU(고농축 우라늄)를 대량생산해왔고 영변의 농축공장이 2배로 확장됐다는 것을 반영하면 2020년경까지 연간 700∼800㎏을 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며 "강선 등의 여타 지역에도 농축공장이 있다고 가정할 때 생산량이 1400∼2400㎏으로 증가하고 중간에 개량형 원심분리기 개발에 성공했다면 3000㎏ 이상으로 추계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펴낸, ‘사회주의 핵개발 경로와 핵전술 고도화’ 부제가 붙은 저서 ‘북한의 핵패권’(인문공간)을 통해 북한의 원심분리기 및 고농축 우라늄(HEU) 개발 및 고도화 과정 등을 상세히 분석한 뒤 이같이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핵탄두 수량을 추산할 때 기술의 발전에 따라 탄두 1개당 소요되는 핵물질의 양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통상적으로 적용되는 기준량은 HEU 20∼25㎏, Pu 5∼7% 정도이지만 , 기술 진보로 이를 절반 이하로 감축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이 2020년경까지 영변 단독으로 핵탄두 약 30개, 기타 지역을 포함하면 70∼100개 , 개량형을 고려하면 200개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기폭장치와 투발수단을 고려하면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처럼 핵무기 30∼100개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저서 ‘북한의 핵패권’에 따르면 핵물질을 생산하는 방법에는 여러 경로가 있다. 초창기 미국에서는 기체확산법에 의한 우라늄 농축과 원자로에 의한 플루토늄(Pu) 생산이 주류를 이뤘다. 기폭장치도 고농축 우라늄(HEU)에는 포신형을, Pu에는 내폭형을 채택했다. 그런 곧 러시아(옛 소련)가 원심분리기에 의해 염가로 HEU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구분이 희석됐다.
러시아는 두번 째 핵실험에서 HEU에 내폭식 기폭장치를 채택해 포신형 대비 핵물질 이용률을 크게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런 방식은 사회주의 핵기술 개발경로의 일반적 추세가 됐다. 당시 중국이 원심분리기 대신에 기체확산법을 도입해 생산한 우라늄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국력을 기울여 이를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를 북한에 적용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은 거대 설비가 필요한 기체확산법을 시도하지 못했고, 원심분리기에 의한 농축도 기술 부족으로 오랫동안 시도하지 못했다"며 "따라서 최초 핵실험은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영변의 SMWe 원자로에서 생산한 Pu에 내폭식 기폭장치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 원자로의 용량이 작아 대량생산이 어려웠고 계획했던 대형 원자로들도 비핵화 협의와 국제 제재로 건설이 중단됐다. 이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원심분리기 개발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원심분리기는 좁은 공간에 설치할 수 있고 전력 소모가 적으며 은폐 시설도 용이하다. 기술 개발을 통해 원심분리기 성능을 개선하면 생산량을 10배 이상 늘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원심분리기를 러시아가 먼저 개발해 대량생산했고, 내폭식 기폭장치에 HEU를 적용해 포신형 대비 핵물질 이용률을 개선하는 방법이 사회주의 국가들에 의해 확산했다. 소련 붕괴로 관련 정보와 부품들을 입수하기도 용이했다.
북한의 원심분리기와 이를 통한 우라늄 농축 성공 시기를 외국과 비교할 수 있다. 핵무기 선진국들은 대부분 원심분리기 연구개발에서 관련 설비 생산, 캐스케이드 시험, 파일럿공장(시험생산) 등의 중간단계로 10년 이상을 소비했고, 후발국들은 15년 내지 20년이 걸렸다. 다만 원심분리기 전문가로 북한의 원심분리기 기술을 전수한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있는 파키스탄은 후발국임에도 10여 년 만에 성공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우 2002년 미국 켈리 특사의 방북 당시에 우라늄 농축 여부가 논란이 됐고 2009년 4월에 외무성 대변인 성명으로 우라늄 농축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6월에 이를 공식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후발국인 북한이 2010년에 HEU 생산 능력을 보유했다고 가정하면 그 출발점을 1990년대 또는 그 이전으로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북한 문헌에는 1980년대 말부터 우라늄 농축이 나타난다. 당시의 2번에 걸친 과학기술 발전 3개년 계획에서 독자적인 원자력 주기 완성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또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의 제처리, 폐기물 처리 등의 핵심 기술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영변을 중심으로 Pu기반 핵무기 개발이 본격화됐고 관련 기술 개발도 크게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국제과학기술 협력사에서도 관련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1990년대에 북한 과학원 기계공학연구소와 중국과학원 사이에 생물학 용도의 초고속 원심분리기 공동연구가 있었다. 다만 실험 중에 원심분리기 로터가 폭발해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협력이 중단됐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당시 기계공학연구소에 고급인력이 집중된 원심분리기 연구소가 있었으나 2000년대 초반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기초연구를 넘어 응용연구로 전환하면서 관련 조직이 국방 쪽으로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파키스탄 등이 이미 기술과 설비를 보유한 국가들과의 협력으로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도 있다. 파키스탄의 칸 박사는 P1 원심분리기 완제품 20여 개와 P2 원심분리기 설계도를 북한에 제공하고 공장 견학을 시켰다고 했다"며 "북한이 별도로 고강도 알라미늄 150t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P2 원심분리기 케이스에 사용하는 것이고 북한이 로테 재료인 마레이징강(maraging steel)은 자체로 생산하지 못할 것이 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북한이 이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현지 지도 사진이 논란이 됐다. 당시 외국 것과 비교한 결과 P2 원심분리기 로터로 판명됐다. 이어서 원심분리기 생산에 사용되는 유동성형기(flow forming machine)를 공개했다. 결국 2010년에는 영변 지역을 방문한 매국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2000여개의 P2형으로 보이는 원심분리기 농축공장을 공개했다.
중국의 주수후이 (諸旭輝) 박사는 세미나 발표에서 북한이 해커 박사에게 보여준 설비들이 상당히 현대적이고 대규모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술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대규모 공장을 건설한 전례가 없다는 분석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이미 원심분리기와 HEU 생산능력을 확보했고 영변 지역 외에 별도의 원심분리기 생산 공장과 농축기술연구소 및 다른 농축공장들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공정을 개괄하면 P2 원심분리기 로터를 제작하기 위해 품질이 우수한 마레이징강을 만들고, 이것을 해머로 두드리는 단조작업을 통해 조직을 치밀하게 해야 한다"며 "이어 구멍을 뚫고 유동성형을 통해 지름 150㎜, 두께 1㎜, 길이 500㎜ 정도의 로터를 만든다. 진동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벨로우즈(belows)는 마찰 용접으로 만든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의 원심분리기 생산 설비 보유 증거로는 김정일, 김정은의 현지지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며 "가장 핵심적 설비는 로터 가공에 사용되는 유동성형기로 이것은 고도의 전략적 수출통제 품목으로 이 설비가 있으면 원심분리기 생산능력 보유를 부인하기 어렵다. 생산능력은 구형 설비가 연간 500대, 신형 설비가 연간 1000대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사진들을 보면 북한이 적어도 2대 이상의 유동성형기를 보유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다만 이 설비가 미사일 등의 첨단무기 생산에도 사용되므로 전 시간을 원심분리기 생산에 투입하기는 어렵다"며 "구형 유동성형기가 김정일 시대에 있었으므로 그동안 가동을 통해 북한이 이미 1만대 이상의 P2 원심분리기를 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해커 박사에게 공개한 설비는 파키스탄이 북한에 설계도를 제공했다고 하는 P2원심분리기로 추정했다. 파키스탄형 P1,P2는 유럽의 유렌코에서 지페(Zippe) 기술을 개량해 개발한 원심분기기를 모태로 한다.P2 원심분리기 2000대를 가동하면 연간 8000∼1만㎏SWU/y의 분리능력이 되고, 이를 통해 연간 2∼2.5t 3.5% LEU(저농축 우라늄) 또는 40∼50㎏ HEU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2013년의 제3차 핵실험 이후부터 우라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대규모 농축공장의 정상 가동은 그 이전 단계인 농축기술연구소와 중간시험공장, 대규모 원심분리기 생산 공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아울러 원심분리기는 러터 회전속도가 빠를수록, 길이가 길수록, 상하 온도 차이 등의 기술적 조치가 좋을수록 분리 효율이 높아지므로 북한의 원심분리 능력을 무한정 P2 수준으로 고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로터를 탄소섬유로 교체해 속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몇 배 정도 생산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며 "북한이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계획으로 탄소섬유를 개발해왔으므로 이의 적용 여부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주의를 촉구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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