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칼럼] 올림픽공원의 중도 헌법공동체
침해된 참정권 ‘재투표’로 복원할 것 주장
사태 본질과 정치 구별하는 집단지성 발휘
이 대통령 “주권 감수성 부족 반성” 본질

더불어민주당은 핼쑥해졌고 정치 평론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가 그 정도로 절묘했다. 국민은 전국 선거에서 예상대로 국민의힘을 심판했다. 하지만 독립 선거구 곳곳에서 민주당 후보들을 족집게처럼 골라 낙선시켰다. 마치 전국민 배심원단이 대배심으로 국민의힘에 철퇴를 내리고, 소배심으로 민주당과 범여권의 독주와 오만에 태형을 가한 듯한 결과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결과를 추동한 실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투표의 결과이니 실체를 드러낼 방법이 없다. 여론조사의 통계적 방증과 전문가의 추론이 난무할 뿐이다. 가장 합리적 분석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중도층의 개입인데, 이 또한 실체 확인은 불가능하다. 모든 선거의 최종 결론이 ‘국민은 현명하고 무섭다’는 추상적 클리셰로 마침표를 찍는 이유다.
놀랍다. 중앙선관위 투표지 부족 사태가 중도 심판자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냈다.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집회가 오늘로 닷새째다. 집회의 주력인 20~30대 청년들은 재앙적 부실로 침해된 참정권을 ‘재투표’로 복원할 것을 주장한다. 근거 없는 부정선거론은 입에도 담지 않는다. 사태의 본질과 정치를 구별하는 집단이성을 발휘한다. 이들의 재투표 주장은 민주주의 상식과 헌법의 정신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참정권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 권리다. 단 한 명의 투표권도 다수의 양해로 사장할 수 없다. 그런데 이를 실행할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투표지 부족으로 참정권을 침해하고, 개표 강행으로 참정권 박탈을 확정했다. 사태의 본질이다. 정부·여당은 선관위의 부실만 질타했지, 사장된 국민의 불가역적 권리엔 둔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패배의 책임을 모면하고 당권 유지를 위한 빌미로 활용하려 기회주의적 행태에 급급했다. 오직 깨어있는 국민들만이 올림픽공원에 정치적 금줄을 치고 헌법공동체를 세워 민주주의의 가치와 헌법의 정신을 합창한다.
올림픽공원 헌법공동체를 보자니 6·3선거 결과를 주도한 상식적인 중도 대중의 실체를 알겠다. 선거 결과의 원인이 환해졌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거쳐간 지역은 모두 불모지가 됐다. 내란의 심연에 갇힌 퇴행을 중도 대중이 힘을 모아 심판한 결과다. 선거전 기세등등했던 민주당의 지지가 공소취소특검으로 한풀 꺾이고, 대통령의 스타벅스 저격이 찻잔 속 태풍으로 소멸했다. 중도 대중의 민주주의 감수성을 간과했다.
드루킹 여론조작으로 유죄를 받은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가 낙선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신성한 선거를 훼손한 범죄전력을 무시한 공천이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선 장동혁의 지원을 거부하고 배수진을 친 오세훈이 역전승을 거뒀다. 민주당의 정원오는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지우면 평범했다. 평택을에선 조국이 김용남을 이전투구로 떨구었지만 본인도 조만대장경의 무게에 무릎을 꿇어, 평택 사람 유의동이 당선됐다. 민주당의 도시 안산에선 국민의힘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100만 특례시 성남과 용인에서도 국민의힘 현역의원이 살아남았다. 지역마다 인물과 정책이 달랐지만, 중도 대중은 섬세한 기준으로 구도에서 벗어나 붙일 사람은 붙이고 거를 사람은 걸렀다. 한동훈의 부산북갑 기적도 중도층이 대거 참여한 최고 투표율 덕분에 가능했다.
여야 지지층 사이에서 조용히 잠복한 채 선거 때마다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여야의 경중을 가렸던 중도 대중이, 선관위 사태에 분노해 광장에 나섰다. 정치적 오염을 거부한 채 국민주권의 복구를 외친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년 기자회견에서 “주권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반성이 들었다”며 사태의 본질을 꿰뚫었다. 생각이 많아질 테고 국정의 변화를 고민할 것이다. 여야의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모두 대통령과 같은 심정이어야 한다. 존재를 증명한 중도대중으로 인해 “국민은 언제나 위대하다”는 선거 격언이 추상이 아닌 실체가 됐다. 정치에 희망이 생겼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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