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평창과 강릉 일대에서 혼다 올 뉴 어코드 하이브리드를 시승했다. 안팎 디자인을 간결하게 다듬고, 덩치를 키우되 패스트백 스타일로 거듭났다.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직분사 엔진과 4세대로 거듭난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뿜는 204마력으로 앞바퀴를 굴린다. 11세대 신형은 재미를 다소 희석한 대신 역대 최고의 효율과 완성도를 뽐낸다.
강릉(강원)=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혼다코리아, 김기범
혼다의 부흥 이끈 베스트셀러

어느덧 11세대 째다. 혼다 신형 어코드(Accord) 이야기다. 지난 10월 16일, 혼다코리 아가 강원도 평창과 진부를 거쳐 대관령 옛길로 강릉까지 내려가는 구간에서 마련한 시승회를 통해 만났다. 어코드는 영어로 ‘조화’를 뜻한다. 과거 혼다는 어코드를 선보이며 “사람과 사회, 자동차 사이의 화합과 조화를 향한 열망을 반영해 고른 이름”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어코드는 혼다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1982년 오하이오 주 메리즈빌의 공장에서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일본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서 만든 첫 차종이었다. 이후 1997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차 1위를 굳건히 지켰다. 1991년과 2001년엔 동급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2020년 기준, 어코드의 전 세계 누적 판매는 1,800만 대를 넘어섰다.

1973~1974년 중동 전쟁이 촉발한 제1차 석유파동으로, 1975년 미국이 배출가스 규제법을 발표했다. 1972년 ‘CVCC(복합와류제어연소)’ 상용화로 연비 높인 혼다에게 기회가 왔다. 이 엔진 얹은 시빅은 심지어 차체 컬러가 노랑과 주황뿐인데도 불티나게 팔렸다. 1970년 5,000대 미만이던 혼다의 연간 미국 판매는 1975년 10만 대로 수직상승했다.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13년만이었다. 혼다는 상위 차종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1976년 1세대 어코드가 나왔다. 1978년 혼다의 미국 판매는 27만5,000대로 늘었다. 3년 만에 3배 가까이 폭증했다. 덕분에 조악한 차 만들던 ‘무명’에서 평론가들이 추앙하는 차 만드는 회사로 거듭났다. 딱 5년 사이 일어난 반전의 중심에 시빅과 어코드가 있었다.

한편, 1977년 혼다 직원 요시다 시게에게 ‘미국 공장 부지를 찾으라’는 특명이 내려왔다. 몇 달 간 조사 끝에 그는 오하이오 주 중부의 농촌을 점찍었다. 같은 해 10월 11일, 혼다가 공식 발표했고 1979년 완공했다. 당시 근로자는 69명. 이후 ‘오리지널 69’로 불렀다. 불과 1년 후 자동차 공장으로 확장해 1982년 11월 10일 어코드가 굴러 나오기 시작했다.
스포티한 느낌 물씬한 겉모습

첫 어코드 출시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우리나라와 어코드의 인연은 1989년 대림그룹이 수입하면서 막을 올렸다. 그러나 1994년 대우자동차가 혼다 레전드를 들여와 아카디아로 라이선스 생산할 때 관련 시설을 인수하며 겨우 4년 만에 명맥이 끊겼다. 2001년 혼다코리아 설립 이후 어코드는 다시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7세대 ‘끝물’이었다.
2008년 초, 혼다코리아는 8세대 어코드를 이전과 같은 가격에 선보였다. 같은 해 혼다코리아는 국내에서 1만2,000대를 팔았다. 연간 판매 1만 대를 넘어선 최초의 수입차 브랜드였다. 하지만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와 방청문제 이슈, 반일감정의 여파로, 현재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혼다코리아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재도약의 열쇠는 결국 제품이 쥐고 있다.

최근 각각 6세대와 11세대로 거듭난 CR-V와 어코드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혼다코리아는 시승에 앞서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상품 설명을 진행했다. 11세대 신형 어코드는 지난해 11월, 2023년형으로 데뷔했다. 신형 어코드 차체의 너비와 앞 트레드(윤거)는 각각 1,860, 1,590㎜로 이전 세대와 같다. 휠베이스도 이전처럼 2,830㎜다.
대신 차체 길이는 4,970㎜로, 65㎜ 더 늘려 이제 5m를 코앞에 뒀다. 뒤 트레드도 하이브리드 기준, 15㎜ 더 넓혔다. 혼다코리아 상품 담당자는 “어코드가 동급에서 가장 낮고 넓으며, 준대형 세단의 품격과 멋진 디자인으로 어필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최근 토요타 캠리나 현대 쏘나타, 기아 K5 디자인의 도전과 파격에 비해 겸손과 절제가 두드러진다.

앞뒤 램프와 대시보드는 수평과 직선을 테마로 빚었다. 납작한 LED 눈매와 격자 패턴의 그릴이 공격적 성향을 암시한다. 차체 표면은 굴곡과 주름을 최소화했고, 패스트백 스타일 4도어 쿠페 실루엣으로 거듭났다. 모두 어코드로선 새로운 시도다. 진지하고 스포티해졌다. 허나 시기가 한 박자 늦었다. 그 결과 어디선가 본 듯한 요소의 조합 같은 느낌은 아쉽다.
기교와 꾸밈보단 기능과 본질

“소비자 눈엔 잘 띄지 않는 개선을 해놓고도, 스스로 엄청 뿌듯해 하죠.” 혼다코리아 상품 담당자가 말하는 혼다 개발팀의 성향이다. 혼다는 ‘나만의 길(혼다 웨이)’을 통해 ‘꿈(드림)’을 좇는 회사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자동차 400만 대, 모터사이클 1,700만 대, 보트와 ATV 같은 원동기 제품과 제트기 등 2,730만 대의 엔진 관련 제품을 팔았다.
육지와 바다, 하늘에 걸친 남다른 스케일로 큰 그림 그리는 혼다답게 최신 유행과 변화에 민감한 소비자로선 의아해 할 요소도 있다. 가령 A필러 안쪽 마감을 딱딱한 회색 플라스틱으로 씌웠다. 또한, ‘바이 와이어’ 기술의 변속 버튼에서 다시 우뚝 솟은 기어 레버로 돌아왔다. 계기판은 10.2인치 디지털 방식인데, 구성은 지극히 보수적인 아날로그다.




소소한 디테일보다 본질에 가중치를 둔다면 기능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다. 우선 대시보드를 낮추는 한편 A필러를 얇게 빚고, 큼지막한 뒷유리를 끼워 시야가 시원시원하다. 뒷좌석 다리 공간도 동급 최대 수준으로 키웠다. 문도 크게 열리는데, 지붕이 낮아지면서 뒷좌석 타고 내릴 때 머리 숙이는 수고가 생겼다. 트렁크 공간도 473L로 라이벌보다 넉넉하다.
운전석에 앉으면 스티어링 휠 패드의 엠블럼을 보지 않더라도 혼다라는 확신이 든다. 수수하고 간결하되 기능적인 실내와 제도판처럼 정확하고 정교한 눈금이 두드러진 계기판 때문이다. 12.3인치의 넉넉한 센터 디스플레이를 갖췄지만, 좌우 온도와 바람세기, 볼륨 등 자주 쓰는 기능은 손으로 쥐고 돌리는 다이얼로 남겨 운전하면서 더듬어 쓰기 좋다.

스마트 폰에 ‘마이 혼다’ 앱을 깔아 쓰는 ‘혼다 커넥트’도 요긴하다. 원격 시동과 도어 잠금 및 해제, 라이트를 제어할 수 있다. 에어백이 터지면 고객 콜 센터에 통보하고, 도난 경보도 띄운다. 나아가 실시간으로 차의 상태와 위치 정보를 확인하고, 점검 및 교환 주기를 알려준다. 최초 구입일로부터 5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한다. 이후 구독료를 받을 예정이다.
최적화 거친 4세대 하이브리드

신형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4세대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는다. 엔진은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직분사 i-VTEC이다. 연료는 고압 다단계 분사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뿌린다. 또한, 압축행정 때 흡기 밸브를 늦게 닫아 피스톤이 솟아오를 때 저항을 줄인 ‘앳킨슨 사이클(정확히는 밀러 사이클)’로 40%의 열효율을 달성했다. 여기까진 경쟁사와 비슷하다.
그런데 혼다가 2014년 도입해 누적 30만 대 이상 판매한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다르다. 발전기 모터와 전기 추진 모터의 상호작용으로 감속비를 바꿔 변속기(e-CVT) 역할을 한다. 세대교체 때마다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파워와 효율은 높여 왔다. 4세대는 구성을 크게 바꿨다. 전기 추진 모터를 발전 모터가 감싼 형태에서 분리해 나란히 배치했다.

전기 추진 모터를 키울 수 있어 이전보다 1.6㎏·m 높은 동급 최고 수준의 토크를 뿜는다. 또한, 무거운 희토류 금속을 쓰지 않는 자석과 멀티 링 구조로 최고회전수를 1만4,500rpm으로 11.5% 끌어 올렸다. 그만큼 최고속도 역시 늘었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엔진이 147마력, 18.4㎏·m, 전기 모터가 184마력, 34㎏·m. 시스템 최고출력은 204마력이다.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①EV, ②하이브리드, ③엔진의 세 모드로 작동한다. EV 모트에선 전기 추진 모터가 앞바퀴를 구동하거나 회생제동으로 충전한다. 하이브리드 모드에선 엔진이 발전 모터를 돌려 충전하고, 전기 추진 모터가 앞바퀴를 굴린다. 시속 100㎞ 이상의 고속에선 유압으로 크랭크축과 구동축의 클러치를 연결해 엔진의 힘으로만 달린다.

4세대 시스템은 고속 록업 클러치를 마련했다. 덕분에 엔진 모드 때 보다 낮은 엔진회전수를 유지할 수 있다. ‘지능형 전원 장치(IPU)’는 1.06㎾h의 리튬 이온 배터리를 품었는데, 이전보다 12% 가볍고 24% 더 작은 크기로 줄였다.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두뇌 격인 ‘전력 제어 장치(PCU)’도 성능을 최적화하기 위한 전원 관리 전략으로 거듭났다.
자연스런 운전감각과 탁월한 효율

막상 어코드 하이브리드를 운전하면 이처럼 복잡한 얼개와 과정은 까맣게 잊게 된다. 모든 과정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까닭이다. 가령 전기와 엔진 모드의 단절감이 없다. 일정 속도 넘어설 때 별안간 엔진이 깨어나거나 회생제동에서 물리 제동으로 바뀌는 과정의 이질감도 거의 없다. 심지어 e-CVT는 업시프트 할 때 엔진이 숨 고르는 변속 흉내마저 낸다.
가속은 연비 최우선 모드인 ‘ECON’이 아닌 이상 시원시원하다. 신형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해외 매체 테스트 결과 7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전기 모터의 추가 성능을 쥐어짠다. 실내 스피커로 은근슬쩍 흘리는 가상 엔진 사운드도 한층 강렬해진다. 실제로 가속 땐 크랭크축 회전의 약 8배속으로 충전에 바쁜 엔진도 더 빨리 돈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윈도는 위치에 따라 비트로, 푸야오, 필킹턴 등 각기 다른 제조사의 이중접합이나 강화 등 기능성 제품이다. 전반적인 정숙성은 괜찮은데, 벨트라인 위쪽 방음에 신경 쓰면서 하부 소음이 상대적으로 더 들린다. 한편, 혼다코리아는 이번 신형 어코드 하이브리드와 관련해 ‘움직임 관리 체계(Motion Management System)’를 강조했다.
스티어링 조작에 따라 가속과 제동을 통합 제어하는 기술이다. 실제 코너링 중 제동 시 앞바퀴에 쏠리는 하중을 적절히 제어해 접지력과 자신감을 높였다. 횡G(코너링 포스)를 감지해 가속을 멈춰도 엔진을 끄지 않아 빠릿빠릿한 응답성도 챙겼다. 패들 시프터로 회생제동도 6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스포츠 모드에선 감속율을 고정해 저단 기어 유지하는 효과도 낸다.

다만 중앙 영역의 감각이 모호하고 피드백에 인색한 전기 파워 스티어링이 재미를 희석시켰다. 연비는 탁월했다. 고속 위주 주행으로도 20㎞/L를 쉽게 웃돈다. 충전 모드 덕분에 시속 100㎞로 1분 동안 달리면 1㎞ 주행할 전력도 확보한다. 신형이 역대 어코드 하이브리드 중 최고로 재밌진 않다. 대신 완성도와 효율만큼은 최고다. 가격은 5,340만 원이다.
*참고문헌
<엔진의 시대>, 폴 인그래시아
<자동차의 일생>, 스티븐 패리신
<자동차에 미치다>, 황순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