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서 '매출 1000억원 SW' 지란지교 일군 오치영…이젠 '수익성'도 잡는다

오치영 지란지교그룹 창업자 겸 최고드림오피서(CDO)(코트 경기 참가자 중 맨 왼쪽 공을 들고 있는 이)가 29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사옥 1층 코트에서 직원들과 함께 농구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지란지교그룹

29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지란지교 사옥. 1층에 들어서자 퉁퉁거리는 농구공 소리와 함께 코트를 누비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취재차 많은 기업들의 사옥을 방문해봤지만 1층 로비에 농구코트가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 농구 경기에는 지란지교그룹의 창업자인 오치영 최고드림오피서(CDO·Chief Dream Officer)도 섞여있었다. 올해로 56세인 그는 한참 어린 후배들과 몸을 부딪히며 땀을 흘렸다. 국내 대표 소프트웨어(SW) 기업 지란지교를 일군 그는 SW 못지 않게 농구를 좋아하는 농구광이다. 회사가 판교에 세운 신사옥에 코트를 마련하고 매년 농구대회를 열고 있는 이유다.

삼성 SW 멤버십서 만난 대학생 4명, 대표 SW 만들다

지난 1994년 삼성 SW 멤버십을 통해 만난 세 명의 동료들과 대학생 4학년 신분으로 SW 회사 '지란지교소프트'를 세웠던 그는 30년이 지나도 열정에 가득한 모습이었다. 창립 30주년을 맞아 미디어데이를 개최한 그는 농구대회 예선전을 마치고 가벼운 반팔티를 입은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창업 당시 동료들과 함께 국내 최초의 윈도 기반 PC 통신 SW '잠들지 않는 시간'을 개발했던 것처럼 여전히 직원 개인과 회사의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그다. 주요 계열사들의 경영은 후배들에게 맡겼지만 회사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CDO를 자청했다. 글로벌 사업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의 '지란 재팬' 대표도 맡고 있다.

지란지교소프트는 잠들지 않는 시간을 비롯해 △쿨메신저 △파일세이프 △스팸스나이퍼 △웹필터 등 시장을 선도하는 SW를 선보이며 국내 대표 SW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2007년 스팸스나이퍼는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을 수상했다. 2009년은 유해물 차단 솔루션 엑스키퍼의 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해다. 엑스키퍼의 미국판인 '사이버펜스'가 소프트웨어 평가 사이트 투카우스(Tucows)에서 최고 평점을 받았다.

오치영 지란지교그룹 CDO가 지난 2007년 지란지교소프트의 메일 보안 솔루션 '스팸스나이퍼 퍼스널 에디션'으로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사진 제공=지란지교그룹

오 CDO는 이후 보안·SW·데이터 등 각각의 사업을 보다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지란지교시큐리티 △지란지교소프트 △지란지교데이터 등으로 회사를 분리했다. 각 계열사들과 협업할 수 있는 스타트업들에게 투자하기 위해 투자형 지주사 지란지교챌린지스도 세웠다. 지란지교챌린지스는 이제껏 △보안 △커머스 △웹3 등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스타트업들에게 투자해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분사 작업을 거쳐 지란지교그룹의 지배구조는 현재 사업형 지주사(지란지교소프트)와 투자형 지주사(지란지교챌린지스)로 구분됐다. 지란지교소프트 아래로는 지란지교시큐리티·지란지교데이터·SSR 등의 주요 계열사들이 위치한다. 지란지교챌린지스는 투자한 국내 스타트업을 비롯해 일본 투자 기업 등을 거느린다.

지란지교그룹 지배구조. /사진 제공=지란지교그룹

지란지교그룹은 총 22개의 법인, 700여명의 직원들로 구성됐다. 법인들이 2023년 낸 총 매출은 1000억원을 넘어섰다. 국내 SW 업계에서 연간 매출 1000억원은 상징적인 숫자다. 작은 한국의 SW 시장에서 연간 1000억원의 매출은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SW산업협회는 매년 연간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기업들을 조사해 '천억 클럽'을 발표하고 있다.

지란지교그룹은 자체적으로 키운 인력을 계열사들의 최고경영자(CEO)로 앉힌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지란지교그룹에서 평사원으로 시작해 대표이사까지 승진한 인원은 12명이다.

소프트·시큐리티·데이터 '수익성 확대' 기대

지란지교그룹은 그간 성장을 거듭했지만 수익성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지란지교소프트는 2023년 매출 492억원, 영업이익 40억원(이하 연결기준)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6.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0% 감소했다. 박승애 지란지교소프트 대표는 "판교 신사옥으로 이전하며 일시적인 비용이 발생했고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투자를 하면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며 "그간 투자한 것을 올해와 내년까지 수확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란지교데이터는 2023년 매출 143억원, 당기순이익 2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4.4% 늘었지만 당기순이익은 19% 감소했다. 지란지교데이터는 지란지교소프트의 연결자회사다. 지란지교소프트의 감사보고서를 통해 매출과 당기순손익을 공개한다. 회사는 2023년에 직원 수가 약 30명 늘면서 인건비가 증가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신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도 이어갔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에는 이제껏 투자했던 기술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면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스닥 상장사인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올해 상반기 매출 143억원, 영업손실 2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반기 대비 매출은 비슷했지만 영업손실은 43% 늘었다. 조원희 지란지교시큐리티 대표는 "상반기를 지나 발생한 매출이 다수 있고 보통 4분기에 매출이 많이 발생한다"며 "(실적에 대해)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조직과 비즈니스에 대한 구조적인 개편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란지교그룹은 글로벌에서는 일본 SW 시장을 먼저 공략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한국보다 SW 시장의 규모가 약 세 배 크다. 계열사 중 지란지교시큐리티와 SSR은 일본 시장에 진출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안대근 지란지교챌린지스 대표는 "일본 시장에 경쟁력 있는 제품을 진출시켜 성과를 낸 후 도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목표"라며 "상장에 성공하면 투자재원을 얻게 되고 이 재원을 다시 일본과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해 그것을 기반으로 지란지교그룹이 글로벌에 진출할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