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5만’ 뉴질랜드…인종 차별 없고 한국 태생 장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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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하면 흔히 수려한 자연환경과 양떼, 그리고 인기 영화 촬영 장소를 떠올린다. 한국인에게는 아름다운 섬, 관광지의 이미지가 대부분이지만 뉴질랜드는 빼어난 자연환경만큼이나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국가다.
뉴질랜드는 1642년 네덜란드 항해사 아벌 타스만이 최초로 발견한 뒤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인의 정착이 시작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농산물 수출로 경제적 황금기를 누렸다. 당시 뉴질랜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최상위권 국가 중 하나였는데, 세계 5위에 오르기도 했다. 비록 인구가 500만 명인 뉴질랜드의 전체 GDP 규모는 2534억달러(2023년)에 지나지 않지만, 국민 1인당 소득은 2023년 기준 4만8527달러로, 거의 5만달러에 근접한다.
낙농업이 제1의 산업
경제구조를 조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제스프리, 폰테라 같은 세계적 기업을 배출한 낙농업이 제1의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낙농업, 임업 등 관련 산업은 전체 수출의 80.9%를 차지하며, 관광업도 전체 GDP의 6.2%로 뉴질랜드 경제를 이끈다.
뉴질랜드가 짧은 역사 속에서 이룬 이러한 성과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뉴질랜드는 외딴 섬나라이며, 이조차 두 개의 섬으로 나누어져 있어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하다. 참고로 뉴질랜드는 지리적으로 고립돼 뱀, 사자 등의 포식자가 없다. 국조인 키위도 천적이 없어 나는 능력을 잃은 새로, 유일하게 부리 끝에 콧구멍이 있는 조류다.
어찌 됐든 외딴 섬나라에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로 경제 규모도 제한돼 있다. 이에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독과점화돼 있고 물류비용도 매우 높다. 실제로 최근 뉴질랜드 뉴스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화두 중 하나가 유통기업의 독과점 문제다. 독과점화된 유통시장이 뉴질랜드의 고물가를 부채질한다는 여론이 있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불리한 뉴질랜드가 어떻게 오랜 시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관광업, 그리고 농업·임업으로 대표되는 1차 산업의 발전 등을 요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충분한 자원과 자본은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수많은 자원 부국이 실제로 빈곤에 허덕이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빛나는 뉴질랜드의 자산은 다양성의 인정과 화합을 향한 노력이다. 뉴질랜드는 역사적으로 정착민인 마오리족과 유럽계 이민자들인 파케하가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정치적으로 화합을 이끌어왔다. 물론 그들에게도 갈등의 시간이 있었다. 1840년 와이탕이에서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으로 마오리 족장들은 영국 여왕에게 통치권을 양도하고, 마오리족은 그들의 땅 등 소유물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유럽인과 마오리족 간의 긴장은 불가피했고 1860년대에는 뉴질랜드 전역에서 전쟁이 발발한다. 이후에도 갈등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로 공존하는 법을 터득했고 화합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물론 평등 혹은 화합이 완전하게 실현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적 불평등이나 여러 사회적 문제가 뉴질랜드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화합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그 흔적은 생활 속에서 쉽게 관찰된다. 마오리어는 공용어로 지정됐는데,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관광객을 끌려는 목적이 아니다. 뉴질랜드 공항 입국장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마오리식 인사말과 마오리 문양이며, 국가 내 지명은 대부분 마오리 언어다. 여기에 생소한 관광객들은 지명을 기억하기 어려워하거나 발음에 애를 먹기 일쑤다.
마오리 민족과의 화합 노력
또한 뉴질랜드인의 이메일은 ‘Kia ora Whanau’(안녕하세요, 여러분)로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Nga mihi’(감사합니다)로 끝난다. 현지 학교에 새로 전학생이 오면 마오리 전통춤으로 환영해준다. 마오리 전통춤인 하카(HAKA)는 직접 뉴질랜드에 방문하지 않아도 한 번쯤은 각종 매체를 통해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마오리 문화는 뉴질랜드인의 생활 속에 실제로 함께 있고, 그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자랑스럽게 여긴다.
다양성 존중과 평등을 향한 뉴질랜드의 가치 추구는 마오리 민족과의 화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 노동자 등 소수자 배려 정책은 세계를 선도해왔다. 여성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은 1893년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통과됐다. 또한 이듬해인 1894년에는 최저임금제를 최초로 도입해 노동자가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이후 다른 나라에도 이러한 법이 도입됐다. 현재 뉴질랜드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23.15뉴질랜드달러(약 1만9천원)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그 외에 1938년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복지국가 시스템을 도입해 연금과 실업보험, 건강관리 등을 포함하는 복지를 국가 차원에서 보장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더 나아가 유럽계와 마오리뿐만 아니라 인근 태평양 국가들과 아시아 이민자의 증가로 이들은 다원주의적 조화를 이루며 함께 발전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뉴질랜드 인구는 유럽인(67.8%), 마오리(17.8%), 아시아인(17.3%), 태평양 도서국(8.9%)으로 구성돼 있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뿐만 아니라 많은 아시아인은 어느 서구 국가보다도 인종차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이를 느낄 수 없는 나라가 뉴질랜드라는 점에 공감한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뉴질랜드에서도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의 가치를 지키고 이어가는 부분에서 때로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985년 미국 군함의 뉴질랜드 입국 금지 사건은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단편적 일화다. 당시 미국은 핵무기 탑재 군함의 뉴질랜드 방문을 요청했으나, 뉴질랜드는 이를 거절했고 더 나아가 세계 최초로 핵무기금지법(1897년)을 제정해 자국 영토 내에서 핵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금지했다. 이에 미국은 뉴질랜드와의 동맹국 지위를 격하시켰으나, 뉴질랜드는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비핵화 정책을 고수했다.
한국 기업이 뉴질랜드로 제품을 수출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통관이다. 뉴질랜드는 자국의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바이오 시큐리티’(Bio-Security)에 매우 엄격하고, 예외가 없다. 이는 수출뿐만 아니라 입국 시에도 적용된다. 면세점 혹은 비행기에서 먹다 남은 음식(사과 조각조차)을 무심코 들고 오다가는 벌금을 물기 쉽다. 여기에 타협의 여지는 없다. 엄격한 통관 절차를 불평하기보다는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뉴질랜드에 관련 제품을 수출할 때는 1차산업부(Ministry for Primary Industries)가 제시하는 조건을 꼼꼼히 따져보고, 경험 있는 바이어와 통관업체를 통해야 한다.
또한 뉴질랜드를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두 나라는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물론 비즈니스는 호주와 매우 강하게 연결돼 있다. 뉴질랜드 금융업의 절대다수를 호주계 은행이 차지하며, 거의 모든 산업 공급망이 호주와 연결돼 있다. 실제로 호주는 뉴질랜드의 제2위 수입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뉴질랜드인과 이야기할 때 뉴질랜드가 호주의 일부분인 것처럼 말하면 매우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이 이웃나라 사이에는 강한 애증이 있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교민 네트워크 발달
뉴질랜드와 비즈니스를 하려는 우리 기업인이나 취업 희망자 등에게 교민 네트워크는 매우 유용하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인적 교류가 경제적 교류보다 더욱 활발하다. 역사적으로 뉴질랜드는 한국전쟁 참전국으로 군인 4천여 명을 파병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 〈연가〉도 전쟁에 참전한 뉴질랜드 군인들이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부른 마오리 노래 〈포카레카레 아나〉(Pōkarekare An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 수는 연간 약 10만 명이며, 교민은 3만5천 명으로 추산된다. 뉴질랜드 전체 인구가 500만 명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다. 교민들의 이민 역사는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그리 길지 않으나,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멜리사 리 장관은 6선 국회의원이자 현재 경제개발부 장관과 소수민족부 장관을 겸임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동포로 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또한 얼마 전 뉴질랜드 국가대표팀으로 올림픽 금메달 획득과 동시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프로골프 선수 리디아 고도 빼놓을 수 없는 뉴질랜드 스포츠 스타이자 영웅이다. 이렇게 사회 전반의 주류에 포진한 한인동포 네트워크는 현지 진출에 큰 힘이 된다.
뉴질랜드는 개방된 사회이며 투명한 사회다. 지리적으로 고립돼 보이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은 결코 고립돼 있지 않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화합하는 방법을 깨달았으며, 이를 통해 발전을 이룬다. 또한 각계각층에 포진한 교민 네트워크의 힘은 큰 무기다. 이를 잘 활용하고 관심을 가지면 남반구 끝 나라 뉴질랜드에서도 더욱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열릴 것이다.
임재걸 KOTRA 오클랜드 무역관장 jaelim@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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