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9단들이 망가진 '태권도' 걱정…"어린이집 전락"
"태권도에서 중요한 정신인 '도(道)' 빠지고 태권만 남아…오래 가지 못할 것"
110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 사범들 모여 함께 고민, "우리가 무도로서의 태권도 지키자"
준 리씨(한국 이름 이준혁)가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 다닐 때였다. 1980년대 초반이었다. 체구가 작았던 동양인은 구석이 편했다.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렸을 때 배운 '태권도'가 있었다. 동네 형들과 친척들에게 배웠었다. 준 리씨의 형은 미국에서 태권도 도장을 하고 있었다. 새삼 그게 멋있어 보였다. 수많은 제자들이 보내는 존경, 갖추는 예의 같은 게.
'대학에서 태권도 동아리를 만들어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대학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 학생들이 태권도를 굉장히 좋아하고 인기가 많았어요. 그때부터 학교 다니는 게 많이 편해지더라고요. 태권도 사범과 결혼하는 걸 자랑스레 생각하게 하는 나라가 미국이구나. 한국에선 그렇지 않았거든요.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지요."
차츰 태권도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궁금한 게 늘어났다. 사범님은 왜 손이 여기 올라갈까, 왜 이 동작을 할 때 여길 보지 않을까. 질문이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답이 막혔다. 그 답을 하고 싶어서 태권도 사범이 되기로 했다.
삶이 곧 태권도가 된 청년은, 40여 년 동안 태권도에 모든 걸 걸었다. 학교 이외의 모든 시간을 도장에서 보냈다. 사범은 물론, 태권도로 오를 수 있는 정점인 9단까지 땄다.
'티셔츠'에 '반바지' 입고 겨루기…태권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해준 태권도가 이리 변질이 될 줄은 몰랐다.
4년 전에 본 광경이었다. 태권도장을 인수한 뒤 준 리씨를 놀라게 한 장면이 이랬다.
"다음 수업이 '겨루기'였거든요. 흑인 사범이 안에 들어가더니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 거예요. 이제 집에 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겨루기 수업이라서 복장을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달라진 태권도장의 풍경. 사범님 대신에 코치님이라 부르고, 제자 대신에 선수고, 맨발이 아닌 운동화를 신고.
태권도 도장은 대부분 아이들만 배우는 곳으로 전락했다. 전문 선수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면.
"태권도가 어느 정도 자리 잡혔다는 미국에서도, 요샌 방과 후에 어린이들 돌보는 '탁아소' 개념이 상당이 크고요. 생일 케이크도 잘라주고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준 리 사범이 내 앞에 앉아 있는 이유가 그랬다. 현재 태권도의 위기가 어떤지 알리고 싶다고 했다. 전통을 지키고 싶단다. 진심이 느껴졌다. 하얀 태권도복에 검은 띠를 매고, 정자세로 앉아 차분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그런 기운이 담겨 있었다. 1시간 반의 대화가 이어지도록 달라지지 않았다. 왼편 가슴에 크게 쓰여 있는 '도(道)'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태권도'가 아니라 '태권'…'도(道)'가 사라졌다
태권도의 앞날을 걱정하던 건 준 리씨뿐만이 아녔다. 그가 외국 태권도 사범(9단)들과 대화를 나누니,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들이 모여 만든 게 글로벌 태권도 연맹. 준 리씨가 총재를 맡았다.
구체적으로 위기라 느끼는 게 어떤 부분일까. 무엇이 변질돼 전통을 흐리게 한단 걸까. 준 리씨가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태권도에서 '도(道)'가 빠지고 '태권'만 남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태권도에서 태는 발이고, 권은 주먹이자 몸이고, 도는 내 머리인데요.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수련하는 겁니다. 명상과 예절, 스승에 대한 존경, 그런 것들을 참 중시하는데, 지금 태권도는 모든 게 '경기'에만 맞춰져 있어요."
이를 '무도 태권도'라 명명했다. 동양에서 강조한 정신과 사상. 예를 들면, 사범으로서 준 리씨가 하는 도장에선 제자들에게 10가지 도훈을 항상 암기하도록 한단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친구들을 돕고, 약한 이들을 이용하지 않는 등. 눈을 감고 계속해서 반복하게 한단다. 몸과 마음을 함께 수양하는 거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련 분위기가 그랬단다. 성인들도 많았다. 태권도장 구석에서 정말 땀을 풀풀 흘려가며, 쏟아가며, 발차기를 5000개씩 해가며, 나는 누구인가 찾으려는 이들이 있었다. 서로 존경하고 존중했다. 그러다 쓰러지는 순간에도 그걸 극복하며 애쓰는 과정이 있었다고.
그게 어떤 효과가 있는 걸까. 준 리씨는 제자 이야길 꺼냈다.
"2주 전이었습니다. 누군가 도장 밖에서 계속 기다리더라고요.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요. 나가봤더니 7살에 제게 태권도를 배운 제자였어요. 교육 컨설팅 일을 한다며 제게 그러더라고요. '사범님께 운동을 배운 뒤 32년 전에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모든 게 달라졌어요.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게 태권도입니다.' 텍사스에 사는 제자가, 운전 거리로 25시간인데 스승을 보러 온 거지요. 서로 손잡고 울었습니다. 10가지 도훈을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올림픽 태권도가 원인…수련생들 격투기, 요가로 다 뺏겨
이 같은 '무도 태권도'는 1980년대 중반부터 흔들리고 90년대 중반까지 명맥을 잇다가, 이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동양의 신비한 무술과 명상과 호신을, 심신을 수련하고 싶어하던 이들이 도장에서 대거 빠져나갔단다. 합기도로, 격투기로, 요가로 다 빠져나갔다고.
대체 원인이 뭐였을까. 준 리씨 생각이 어떤지 궁금했다.
"한국에 있는 분들(태권도인)은 눈치 보느라 말 못 해요. 하지만 전 얘기할 수 있죠. 올림픽이 문제에요."
그 역시, 올림픽에 태권도가 들어올 무렵엔 많은 기대를 했었단다. 도장도 더 활성화가 될 거라고. 근데 결과가 반대로 가고 있단다. 그 이유는 또 뭘까.
"제도권에서 컨트롤을 하다 보니, 거기에 포함되지 않으면 도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는 거지요. 제도권에 몸 담고 발을 들여놓고 왔다갔다 하고. 올림픽 룰대로만 품새를 하고, 겨루기를 하고요. 운동하는 이들 대다수가 무도 수련 목적으로 오는데, 소수인 경기 태권도 그늘에 있는 셈이 됐지요."
어린이들이 하는 도장 아니면, 전문 선수를 양성하는 곳. 그사이에 연령대도 다양했던, 평범히 무도로서 수련하려던 이들이 다 빠져나갔다는 것.
그러느라 변질된 모습이 다양하다고 했다. 태권도가 공중 곡예처럼 보인다거나 무대 위 연극을 하고. 올림픽 태권도는 '발 펜싱'을 보는 느낌이라고. 앞발로 점수를 따는데, 맞았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도 3점씩 준다고.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단다.
"외국에 있는 태권도 도장들을 봤어요. 예를 들면, 온두라스 태권도 도장이라 하면, 온두라스기와 태극기가 함께 걸려 있어야 하거든요. 그게 태권도 정신이라 가르쳐 왔는데, 태극기를 내리고 있어요. 왜 걸어야 하는지 모르고요. 그게 현 주소인데, 아무도 그걸 막지 못하는 겁니다. 이러다 돌이킬 수 없는 문화가 생기겠다, 누군가 나서서 방향을 바꿔야겠다, 그런 생각이 든 겁니다."
독일 제자가 새벽에 전화왔다, "한국이 금메달 따서 기쁩니다"
준 리씨가 그런 결심을 했을 때, 외국인 태권도 사범(9단) 6명이 있었다. 생각보다 함께해줄 이들이 많단 걸 알게 됐다. 태권도를 사랑하는 외국인 사범들이었다. 이는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했다. 준 리씨가 말했다.
"태권도 월드컵 때였어요. 결승에서 독일과 한국이 붙었습니다. 제 제자가 독일인인데요. 새벽 2시에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사범님, 코리아(한국)가 이겼습니다'라고요. 축하한다고요. 제자가 이리 말했어요. 독일이 이기는 게 당연히 좋지만, 한국한테 져서 더 좋다고요."
태권도를 좋아하고, 태권도의 모국마저 아끼는 이들. 그들에게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지키자고 제안했을 때, 132개 나라의 사범들이 사비까지 써가며 오겠다고 신청했다. 5대양 6대주에 태권도인이 다 있다고 했다. 의사, 변호사, 교수, 고위 공무원 등 대다수는 자기 직업이 따로 있단다.
태권도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이들이라고. 한국 제품만 쓰는 이들도 많다고. 그러니 한국이 모범이 돼야 한다고 했다. 5박6일 동안 행사(무도 태권도를 계승하기 위한)를 개최했는데, 오려고 애쓰는 과정만 봐도 뭉클했다고.
"1000km를 운전해서 비자 받으려고 움직이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아루바라는 섬나라 친구는 파나마로 가서, 거기서 터키로, 터키에서 한국으로 오는 긴 여정을 거쳤어요. 한국 대사관이 없는 나라에서도 왔다갔다 하며 한국에 오려 애쓰는 걸 보며, 뭉클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바꾸려는 태권도의 미래. 가까스로 이어보려는 노력들이 없다면, 앞으로 태권도는 어떻게 될까. 준 리씨가 끝으로 이리 말했다.
"철학이 없는 태권도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언젠가 끝이 있다고 봅니다. 가치를 계속 강조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영영 사라집니다. 그걸 지키려고, 태권도의 사명을 갖고 계신 분들이 그 멀리서 오시는 거예요. 이것만큼은 한국 국민들에게 꼭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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