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역사 논란, 보수 결집은 없었다 [2024 신뢰도 조사]
역사는 뜨거운 현안이다. 발단은 지난 7월27일 유네스코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현장인데 일본의 전시 시설에는 ‘강제노동’이라는 문구가 빠졌다. 일본 언론은 한·일 정부가 사전 합의한 결과라고 보도했고, 한국 외교부는 ‘요구했으나 일본이 수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8월6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임명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김 관장은 과거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고 백선엽을 옹호한 이력이 있다. 김 관장뿐만 아니라 근래 임명된 정부 산하 역사 연구기관 기관장들 역시 ‘뉴라이트’ 성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들은 이에 반발하며, 올해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기념식에 불참했다.
역사관 논란의 여진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8월26일 인사청문회에서 “일제 치하 (우리나라 국민) 국적은 일본이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정식 정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8월30일에는 새 교육과정에 따라 내년부터 쓰일 한국사 교과서 내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위안부’ 관련 기술을 축소하고 이승만 ‘독재’를 명시하지 않은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9월3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새) 교과서는 모두 검정심사를 통과한 것들”이라며 “다양한 역사관을 존중할 줄 아는 것 또한 역사교육에서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2024 신뢰도 조사의 한 문항으로, 윤석열 정부의 한·일 역사 문제 대응에 관한 신뢰도를 물었다. 역사 관련 정부 대응의 신뢰도를 0점(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부터 10점(매우 신뢰한다)까지 점수로 표기했다. 신뢰한다는 응답(6~10점)은 13.1%, 불신 응답(0~4점)은 그 5배가 넘는 67.8%다. 전체 응답자의 평균 신뢰도 점수는 2.42점이다. 진보 성향(0.64점), 더불어민주당 지지(0.95점) 응답자들의 신뢰도가 특히 낮았다. 40대(1.51점), 광주·전라(1.87점) 응답자 신뢰도 역시 낮았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나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신뢰도 역시 낮다.
중도층 69.8% 역사 문제 대응 불신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 보수 정권 지지층으로 꼽히는 이들의 평가다. 이들의 윤석열 정부 한·일 역사 문제 대응 신뢰도는 다른 응답군보다 확실히 높다. 예를 들어,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20대부터 40대까지 모두 한 자릿수에 그치고 50대는 10.6%인 반면, 70세 이상 응답자의 신뢰 비율은 28.0%이다. 평균 신뢰도 점수는 4.48점이다. 지역 간 차이도 눈에 띈다. 대구·경북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신뢰 응답이 20% 이상(22.3%)인 곳이다. 2위 부산·울산·경남(15.5%)과도 격차가 있다. 이 밖에 국민의힘 지지, 보수 응답자 역시 다른 응답자들 대비 신뢰 응답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이 결과는 정부의 ‘보수세력 결집’이 성공했다는 의미일까.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 논쟁을 의도하거나, 최소한 불사한다고 본다. 전통적 보수 정부 지지층을 흡수하는 수단으로 역사를 꺼내 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보수층 지지는 과거 보수 대통령들에 비해 견고하지 않다. 윤 대통령은 과거 박근혜 게이트를 수사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원죄’가 있다. 최근 사도광산 등재와 뉴라이트 인사 외에도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홍범도 흉상 이전 시도, 3·1절과 광복절 축사 논란 등 무리할 정도의 이념 강공을 감행한 바 있다. ‘보수세력의 지지를 끌어모으기 위해 친일 논란을 감수하고 반공을 강조하는 전략’이라는 평가가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러나 신뢰도 조사 결과를 뜯어보면 역사를 이용한 이념 공세 전략이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윤 정부의 역사 대응에 긍정적인 이들이 전통적 보수층에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보수적인 집단 내에서도 비토는 엿보인다. 정부의 역사 대응에 대한 신뢰도 응답을 불신·보통·신뢰로 나누었을 때 ‘신뢰 비율이 가장 높은 응답군’은 국민의힘 지지자(35.2%)밖에 없다. 70세 이상, 대구·경북, 보수 응답자마저 불신 비율이 신뢰 비율보다 높다(〈그림〉 참조). 상대적 차이만 있을 뿐 역사 문제에서 여론 양극화는 발견하기 어렵다. 즉 ‘노년층은 정부 신뢰, 젊은 층은 불신’ ‘보수는 정부 신뢰, 진보는 불신’이라는 설명은 딱 떨어지는 사실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수층마저 정부의 역사 문제 대응을 불신한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보수층은 정부의 한·일 역사 문제 외 다른 이슈 대응에서도 윤석열 정부에 비슷한 정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나 보수층이 역사 문제에 대한 ‘우클릭’을, ‘실정’에 가까운 다른 사회 현안 대응과 비슷하게 평가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이념을 앞세운 전통적 지지층 집결이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에게 역사 논쟁은 불리한 사안이다. 특히 중도층의 이탈을 주목할 만하다. 역사 문제 대응에 대한 중도 응답자 답변 69.8%가 불신 구간에 있다. 신뢰 응답은 9.1%다. 중도 응답자들의 평균 신뢰도 점수는 2.12점이다.
■ 이렇게 조사했다
- 조사 의뢰: 〈시사IN〉
- 조사 기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조사 일시: 2024년 8월25~27일
- 조사 대상: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 조사 방법: 가구 유선전화 RDD 및 휴대전화 RDD를 병행한 전화면접조사(CATI)
- 응답률: 6.6%(무선 7.2%, 유선 3.8%)
- 가중치 부여 방식: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2024년 7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인구 기준)
- 표본 크기: 1008명
- 표본 오차: ±3.1%포인트(95% 신뢰 수준)
*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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