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미관계 뒤흔든 ‘코리아게이트’ 핵심인물 박동선 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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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한미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운 '코리아게이트' 사건의 박동선씨가 19일 별세했다.
박씨는 이날 오후 6시 45분쯤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 씨는 1978년 미 사법당국의 수사를 거쳐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했으며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현직 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 차원에서 징계를 받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박 씨는 코리아 게이트 사건 이후로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가와 정치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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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한미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운 ‘코리아게이트’ 사건의 박동선씨가 1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박씨는 이날 오후 6시 45분쯤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박씨가 지병을 앓던 중 일주일 전쯤 상태가 악화돼 순천향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코리아게이트는 1976년 10월 24일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지가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을 90여 명의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에게 전달하는 매수공작을 벌였다’고 1면에 대서특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최대 115명의 상·하원의원들이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하워드 베이커 상원의원은 최소 50여 명이 직접적인 뇌물 수수와 연관되어 있다고 추정했다. 보도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미국 전체를 휘감는 거대한 스캔들로 발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와 국무부, 미국 법무부 등이 총동원되어 코리아게이트 관련자들을 수사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하원에서도 국제관계소위원회, 이른바 ‘프레이저 위원회’가 구성돼서 청문회가 열렸다.
박 씨는 1978년 미 사법당국의 수사를 거쳐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했으며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현직 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 차원에서 징계를 받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지난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그는 17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박 씨는 미국에서 창업했고 1965년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 박 씨는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워싱턴 정계에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로비스트로서의 길을 걸었다.
박 씨는 코리아 게이트 사건 이후로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가와 정치가로 활동했다. 박 씨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계속되던 2006년 이라크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이라크에 대한 유엔 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해 불법 로비 활동을 벌인 혐의로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박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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